이 날은 고 주필도 불려왔고 김상만 사장과 이동욱 씨등도 불려왔다. 다음날 아침 5시까지 심문이 계속되었고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가 아침 8시에 자진해서 또 그곳으로 출두하였다. 8월1일 고 주필과 함께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으니까 저녁 5시경에 분실장이 와서 그간 대단히 미안하게 됐습니다. 위에서 지시가 내려 왔으니 그냥 댁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였다. 이리하여 이날 밤은 집에 돌아와 안심하고 휴식을 취하였다.
8월 2일 십여 명의 친구들로부터 위로와 축하의 전화가 걸려왔고 또 방문객도 줄을 이었다. 그러자 오후 2시가 되어 아내는 볼일 보러 외출한 사이에 정보부의 김 형사가 다시 찾아왔다. 미심한 점이 있으니 잠깐만 와 달라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곧 다녀올 터이니 안심하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일러놓고는 다시 무교동 정보부 분실로 갔다. 거기에는 고 주필도 와 있었다.
둘이서 나란히 앉아 기다리고 있으니까 저녁 5시에 분실장이 와서 뜻밖의 일이 생겼다고 말하고는 유태흥 판사의 이름으로 된 구속영장을 낭독하였다. 허위사실 유포죄(특례법3조의3)와 반공법의 이적죄가 죄목이라는 것이며 영장에는 구속 장소로서 중부경찰서가 지정되었으나 경찰서의 유치장보다 형무소가 더 좋으니 그 쪽으로 변경한다고 말하면서 곧 마포교도소로 데리고 갔다.
교도소 사무실에서 수의로 갈아입고 나는 5사 9방에 그리고 고 주필은 11방에 수감되었다. 퍼런 옷을 입은 고 주필의 모습이 하도 처량하기 때문에 ʻ제가 붓 끝을 잘못 놀려서 연로하신 선생님을 이처럼 욕보여 드려서 죄송합니다.ʼ라고 몇 번이나 사과하였다. 그때마다 고 주필은 별 말씀이라고 대답하시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형무소에서 잠을 잤다. 침구라는 것이 있기는 하였으나 너무나 더럽기 때문에 그냥 목침만을 베고 맨바닥 마루에서 잤다. 처음에는 변기 냄새가 코를 찔렀으나 얼마 후에는 무감각이 되었다.
장마철에 접어든 탓인지 비는 억수로 쏟아졌고 습기는 방에 꽉 차 있었다. 그러나 여러 날을 시달린 탓인지 곧 잠이 들었으며 아침 8시의 기상 시간까지 계속 잤다.
8월 3일은 하루 종일 감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도 습기가 차 있는 것이 괴로웠다. 형무소의 규칙이 낮에는 누어있을 수가 없었으므로 벽에 기대어 앉아 집안 걱정만을 하고 있었다. 저녁 8시에는 취침을 해야 하는데 목침을 베고서 잠을 청하고 있을 무렵 감방문이 열리더니 헌병이 나오라고 말한다. 역시 검은색 자가용 지프차에 몸을 싣고 무교동에 끌려와 보니 형사들이 웃으며 맞아 주었다. 나도 말동무가 생겨서 반가웠다.
분실장은 나의 요청으로 부근의 음식점에서 일본식 도시락을 사다가 주었고 파고다 담배 한 갑과 커피까지 갖다 주었다. 또한 나는 그들이 주는 전기면도기로 면도까지 하였다. 이때에 나는 난생 처음으로 전기면도기를 사용해 보았다. 그리고 나서 정보부 수사국 제2과장인 김병설 검사의 취조를 받았다. 한때 최인규 장관의 비서로 있다가 5.16 이후에 최 씨에게 사형을 구형한 것으로 유명해진 검사였지만 그래도 정식으로 법학을 공부한 검사의 취조를 받는 것이 퍽이나 안심이 되었다. 그도 역시 내가 쓴 책으로 법학공부를 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허위사실 유포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1) 정부를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하고 또한 2) 허위 사실을 유포한다는 인식 즉 고의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형법의 기초상식에 속하는 것이다. 나는 정부를 비방할 목적이 없었고 또한 허위사실을 유포 한다는 고의도 없었으며, 다만 피로로 인하여 적절한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였을 뿐이라고 진술하였고 김 검사는 나의 이러한 진술을 아무런 의의도 없이 그대로 받아쓰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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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재욱 주필과 필자의 구속 기사 (동아일보 1962. 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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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을 가지고 매일 매일 사무를 보고 있는 검사와 형법을 전공하고 있는 교수와의 사이에 이 정도의 말이 오갔어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충분히 양해가 되는 것이었다. 허위사실 유포죄에 있어서는 과실범 처벌에 관한 규정이 없다는 것을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검사는 나로부터 죄가 될 만한 사실을 끄집어 내지 못하였던 것이다. 당시의 나의 인상으로는 이때의 김 검사는 일부러 그처럼 관대한 태도를 취하였던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8월 4일 아침 6시에 심문을 끝내고 마포 형무소로 돌아왔다. 나의 감방을 향해 걸어가는데 수의를 입은 일단의 사람들이 내가 접근하자 간수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등을 돌려 벽을 향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 곳을 지나가자 그들은 다시 어디론가 걸어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때 그 집단 속에는 전 재무부장관 김영선 씨가 끼어 있었는데 그와 내가 그런 몰골로 만나는 것을 피하도록 하기 위하여 간수가 그런 조치를 취하였을 것이라는 김 장관의 말이었다. 김영선 씨는 나의 대학 1년 후배인 친지로 그 후 그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발탁되어 장관, 주일 대사, 상공회의소회장을 지낸 다음에 1987년 69세에 고혈압으로 세상을 떴다.
그 날도 하루 종일 감방에서 지냈다. 역시 형무소의 규칙으로 낮에는 잘 수가 없었다. 밤새도록 문초를 받았고 그리고 낮에도 앉아 있어야 했으니 본격적으로 피로가 오기 시작 하였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밤9시 경에 다시 정보부에 불려 나갔다. 역시 이번에도 분실장이 와서 담배 한 갑과 커피를 주었는데 식사는 냉면을 시켜다 주었다. 그러나 몸은 짜증이 날 정도로 피곤하고 괴로웠다. 어제의 심문에서 김 검사가 죄가 될 만한 단서를 잡아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마 심문의 방법을 바꾸기로 방침을 세웠는지 오늘은 김 형사가 조서를 꾸몄다. 문제가 된 7월 28일자 사설에 조국이라는 글자가 자주 나오는데 공산당원들이 즐겨 쓰는 이 용어를 어째서 썼는가, 북괴에 동조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이런 식으로 그는 추궁하였고 이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조국이라는 말은 엄연한 우리의 말인데 우리나라를 조국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이런 문답이 오갔다는 것은 참으로 창피스러운 일이지만 실제로 김 형사는 끈질기게 이점을 추궁하였다.
다음에 김 형사가 힘을 주어 물어본 것은 유엔에서 대한민국을 승인했는데 어째서 우리나라가 아직 유엔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국가로서 승인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한다라고 썼느냐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이 나의 일관된 답변이었다.
“우리나라는 유엔 안에서 정부로서의 활동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나 유엔 총회에서 회원국으로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유엔 본부에 가 보아도 회원국의 국기가 전부 걸려있는데 우리 태극기는 발견할 수가 없다. 이렇게 보는 것은 나의 견해이다. 그래서 사설에서도 논평 끝에 ʻ의미한다ʻ 라는 말을 써서 나의 의견을 말하였을 뿐이므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볼 수 없으며 다만 표현이 부족하여 그런 오해를 사게 되었다면 나의 본의는 아니지만 미안하게 생각한다.”
국제법상 국가승인과 정부승인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있지만 이에 관한 법이론을 일개의 조사 형사와 토론하기란 참으로 힘 드는 일이었다. 밤이 새도록 실랑이는 계속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