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감방생활 (71회)
  제11장 영어(囹圄)의 생활

형무소 정문에서 차를 내려 줄줄이 안으로 들어갔다. 문 밖에는 어떤 가족들이 모여 있다가 혹시 자기가 아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우리 쪽을 처다 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우선 노끈과 손목에 채웠던 수갑을 풀고 이병철 담당을 따라 가니 우리 감방의 담당이 나를 인수하며 좋은 소식이 있는지 안부를 물으면서 수감방의 문을 열어준다.

방으로 들어서자 담당은 곧 밖으로 문을 잠그면서 나온 밥이 식었을 것 같다고 말하고 다른 방으로 가버렸다. 점심에 맛있는 설렁탕과 커피까지 맛본 입이라 꼿꼿하게 굳어버린 형무소 밥이 목에 넘어갈리 없었지만 이제 먹어두지 않으면 내일 아침까지 굶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억지로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어 두었다.

8월 17일 처음으로 형무소에서 가족과 면회를 하였다. 8월 2일에 가족과 헤어진 이후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내가 흰 옷을 입고 면회실로 들어서자 미리 그 방에 와서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은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들 이러느냐고 꾸짖고는 부모님과 애들의 안부를 물었다. 늙으신 부모님께 이런 꼴을 당하여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것이 장남으로서 무엇보다 가슴 아팠던 것이다.

또한 어린아이들이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애태울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 하였다. 나는 여기서 몸 편히 있으니 걱정할 것은 없고 도리어 당신이 밖에서 고생이 많을 거라고 말하면서 아내를 위로하고 그간 밖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물론 옆에 있던 담당의 저지로 자세한 말은 주고받을 수가 없었으나 이번 사건에 관하여 일반 여론이 아주 나쁘기 때문에 9월초의 신학기까지는 석방되리라는 것이 가족들의 전망이었다.

ʻ곧 나오게 될 터이니 절대로 상심하지 마시고 무엇보다도 건강에 조심해야 합니다. 바깥일은 조금도 걱정하지 마세요ʼ 라며 아내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8월 27일 출정하여 유 대위를 만났다. 중앙정보부의 지시대로 부득이 기소하게 되었음을 나에게 알려 주었고 죄목은 특별범죄 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 제3조의 3항 위반 허위사실 유포죄라고 일러주었다.

변호사로서는 동아일보사에서 김치열씨를 선임해 주었고 가족이 추가로 유무형씨를 위촉하였으며 안이준 씨가 자진해서 변호인으로 나섰다. 안희경 씨의 아들인 안명기 군도 자진해서 변론하겠다고 찾아 왔지만 몸도 불편한데 무리하지 말라고 사퇴시켰다.

형무소에 들어 온지도 한 달이 넘었고 9월에 접어들자 대학에서는 제2학기 강의가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가족들이 찾아와 며칠만 참어라, 일주일만 더 있으면 된다고 위로해 주었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풀려날 것 같은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 동안에도 여러 차례 가족 면회가 있었고 또 출정이라는 형식으로 검찰부에 끌려 나가 바람을 쏘이기도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그 중의 한 노인이 나에게 이렇게 충고를 하였다. ʻ황 교수님의 사건은 정치적으로 꾸며진 것이니까 시일이 좀 걸리더라도 반드시 무사히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일은 신체적으로 져서는 안 되는 것인데 아무래도 추운 겨울을 여기서 나야 할 테니 건포마찰 같은 것을 감방에서 하는 것이 좋을 것 입니다.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겨울을 여기서 나야 한다면 앞으로 몇 달을 더 고생하라는 말인가 생각하니 기분 나쁘기 그지없었으나 감방 안에서라도 건강법을 써야한다는 충고만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 하였다. 이리하여 9월 15일을 기해서 냉수마찰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일반 재소자들은 아침 6시가 되어야 일어나는데 나는 4시가 되어 통금해제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옷을 벗은 다음 수건을 물에 적셔 몸을 문지르기 시작한다. 전신이 빨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문지르고는 내의를 입은 다음에 라디오 체조를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하는 체조를 잘 몰라서 과거에 일본 사람으로 부터 배운 라디오 체조를 했다.

몸이 화끈해지면 창문을 닫고 옷을 입은 다음에 정좌를 하고 어느 정도 숨결이 가라앉은 다음에 합장을 하고 천수경을 외운다. 그리고 여기에 곁들여 기도까지 한다. 다음에는 반야심경을 암송하고 나서 금강경을 독송한다. 면회하러 오셨던 이청담 스님이 금강경 독송을 권하시었고 또 백성욱 전 동국대 총장님도 매일 금강경 7편을 독송하라고 말씀하셨던 터이므로 금강경 독송에는 상당한 정성을 드렸다. 금강경을 한번 독송하는 데에는 약 30분이 걸렸다. 다 읽고 나면 계속해서 또 한 번 읽었다. 이리 하여 2편을 다 읽고 나서는 그대로 정좌하여 참선을 하였고 그 자세로 아침 점검이 있을 때까지 계속하였다.
 
▲ 백성욱 전 동국대 총장(白性郁, 1897.-1981.) 승려 겸 대학교수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종일토록 앉아있는 동안에 주로 하는 것이 금강경을 독송하는 일이다. 백 총장님의 말씀대로 하루에 일곱 번은 꼭 읽었다. 독송용으로 신소천 스님이 편찬한 포켙판 천심 금강경을 사용하였고 때로는 동국대학교에서 간행한 <금강반야바라밀 오가해>를 뒤적거리면서 옛 선사들의 주해를 음미하기도 하였다.

저녁을 먹은 다음에도 또 다시 천수경과 반야심경을 암송하고 그리고는 금강경 한편을 마지막으로 독송하고 난 다음에야 자리에 누었다. 천수경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경이지만 그 내용이 참으로 잘 되어있기 때문에 기도용으로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었다.

신라시대에 스님들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부처님 앞에서 기도를 올림에 있어서 갖추어 져야 할 모든 구절과 주문 및 발원문이 남김없이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별도로 자기식의 기도문을 만들 필요가 없이 그저 천수경 하나만 외우기만 하면 그것으로써 훌륭한 기도가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독교의 주기도문과 같다고나 할까.

그 후 나는 출감한 뒤에도 아침에 일어나서 냉수마찰을 하고 천수경, 반야심경, 금강경을 독송하며 저녁에 자기 전에도 천수경과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일과를 상당한 기간 동안 계속하였다. 세속업무에 바쁘게 돌아다니기 때문에 금강경 일곱 번 독송은 할 수 없고 그저 아침에 한번을 읽을 뿐이지만 아무리 술에 취하여 집에 돌아와도 자기 전에 천수경과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과업을 빼지 않았고 또 영하 20도의 추운 겨울일지라도 옷을 벗고 냉수마찰을 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러한 일과를 매일 계속한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러한 습성을 키운 것은 바로 내가 가장 비참하게 형무소 생활을 하던 때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있은 지 25년이 지나 내 나이 70을 넘기게 되자 나는 이처럼 고된 일과를 계속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 냉수마찰을 하고 그리고 불당 앞에 서서 향을 피우고 금강경 한편을 독송하는 일만은 계속하고 있다. 이것은 나의 변함없는 일과이다.
 
이런 생활을 계속하는 가운데 9월 한 달이 지나갔다. 그러나 가족들의 위로의 말과는 반대로 바깥 공기는 좀처럼 완화된 것 같지가 않았다. 헌법심의 위원회에서는 새로운 헌법의 요강을 작성해 놓고 심의위원들이 서울과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공청회라는 이름으로 계몽을 하였으며 곧 뒤이어 조문작성에 착수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또한 대학교수 188명과 동국대학교 학생 600명이 최고회의 의장인 박정희 장군에게 석방건의 하는 진정서를 제출하였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이러한 진정이 있었다는 사실은 군법회의 심판부에서 숨기고 있다가 나중에 10월 29일이 되어서야 발표되었지만 박정권의 성격상 이런 종류의 진정은 언제나 그대로 묵살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군법회의 검찰부 (70회)
  공판정에서 있은 일들_1 (7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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