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피안 (74회)
  제11장 영어(囹圄)의 생활

마포에서 서대문으로 옮겨온 이후 처음에는 곧 출감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내 자신 양심에 비추어 죄의식을 가질 수 없었고 국내적 국제적으로도 여론이 나빴기 때문에 아무리 권력에 도취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무고한 사람을 그토록 오래 붙들어 두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사실 처음에는 약 한달 정도 구속해 두었다가 가을에 들어 새 학기가 시작되면 적당한 구실을 붙여서 내보낼 것이라는 것이 일반의 관측이었고 가족들도 그렇게 전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9월이 되어 새 학기가 시작되어도 최고회의 공기는 조금도 움직이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중앙정보부장 김종필 씨를 만났더니 이렇게 말하더라, 또는 최고회의의 법사위원장 이석제 대령을 찾아가 부탁을 하니 그 반응이 좋더라는 등의 소식이 들어오기는 하였지만 그러나 바로 그 기일이 지나도 석방된다는 기별은 여전히 감감하였다.

중간에 나서서 알아보아 준다는 사람들이 가져다준 정보라는 것은 최고회의나 정보부 안의 대체적인 공기를 전해주는 정도가 고작이고 정확히 언제 석방된다는 것을 알려 주지는 못하였다. 돈도 많이 낭비 하였고 애도 무척 써보았지만, 9월 한 달이 다 지나가도 사태가 호전될 것 같은 징조는 보이지 않았다. 면회시간에 만나는 가족들의 표정에도 어딘가 초조한 빛이 감추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만 하였다.

기대한대로 사태가 진행되어 주지 않고 실망만 되풀이하게 되자 나는 점점 깊은 좌절감에 빠지게 되었다. 밖에서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물론 칠전팔기하는 불굴의 의지를 가지라고 격려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자유를 빼앗기고 영어의 몸이 된 사람에게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좌절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것은 별로 큰 효과를 가져 오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10월에 들어서면서 부터 나는 점점 짜증을 내기 시작하였다. 가족들은 여전히 희망적인 새 소식을 가지고 왔으나 그 때마다 나는 화를 내면서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고함을 지르기까지 하였다. 무슨 말을 하여도 이제는 고지 들리지 않았다.

특히 10월 8일 제1회 공판이 있은 다음부터는 지금까지 내가 40여년 간 쌓아올린 인생의 모든 토대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군인들의 정체가 생각했던 것보다 지독하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나는 6.25 당시 경험했던 것과 비슷한 허탈상태에 빠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전쟁이 터지고 3일 만에 국군이 물러가고 의기양양한 인민군이 서울거리를 누비고 다닐 때 다락방에 숨어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외로운 사막에 혼자 던져진 것과 같은 두려움에 쌓였었다. 이들의 세상이 되면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인생의 자산은 아무 소용없게 되고 아무런 힘도 없이 그 지독하고 무서운 폭력 앞에 홀로 서야만 하는 아찔했던 심정 때문에 행복했던 나의 지난날의 모습이 아득히 멀리 사라져 가는 것만 같았다. 이런 절망감을 나는 옥중에서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것이다.

처음에 내가 구속될 당시에는 사회여론과 친구들은 모두 나의 편을 들어 주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가고 두 달이 지나가자 나는 사회로부터 완전히 망각된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제 남은 것은 가족들뿐인데 아마도 내가 형무소에 한 10년 정도 갇혀있다면 가족들도 지금의 모습 그대로 갈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사라졌고 그리고 모든 것이 끝장이다. 이러한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마다 나는 형언할 수 없는 비참한 심정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이 비참해지면 그것은 아마 곧 그대로 얼굴에 나타나는 모양이다. 나의 심정이 이처럼 흔들리기 시작하자 가족들은 나의 표정이 달라졌다고 걱정하기 시작하였다. 얼굴 전체에 흑기가 감돌고 어딘가 비굴한 인상을 주었던 모양인데 이것을 보고 아내는 점점 죄수의 얼굴과 같아져 간다고 표현하였다.
 
▲ 아내(대법선) 학위수여식에서 / 구속 1년 여 후인 1963년이다

“당신이 이 형무소에서 빠져 나오려면 마음부터 빠져나와야 하지 않겠어요. 부처님과 직결될 수 있는 당신의 마음이 조그마한 감방에 갇혀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어떻게 몸이 빠져 나올 수 있겠나요. 당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마음이 되어 있으면 누구도 감히 당신을 잡아두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의 얼굴이 점점 죄수의 얼굴과 같이 되어가는 것은 당신의 마음속에 아직 박정희 장군을 미워하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을 미워하면 반드시 그 사람으로부터 해를 받는다는 것을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남이 나를 석방시켜 주려니 생각하지 말고 당신이 스스로 여기서 석방되어 나오시요. 그렇게 되려면 당신 마음속에서 나는 형무소에 갇혀있다라는 생각이 없어져야 할 것이고 군인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져야 할 것이 아니겠어요.”

아내는 보다 못해 이러한 충고를 하였다. 그의 말 속에는 참으로 깊은 뜻이 숨어 있었고 나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내 표정이 어떠냐고 말하면서 슬쩍 피해버릴 뿐이었다.

마음부터 형무소에서 빠져나와야 몸도 빠져나올 수 있다는 아내의 말은 가슴으로는 실감나게 느껴지지 않았다. 감방 안에서 한시가 바쁘게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있는 사람에게 마음부터 바로 잡으라는 충고는 도무지 먹혀들지가 않았다. 아무리 부부 사이지만 자기 몸이 형무소 안에 들어와 있지 않으니까 남의 속도 모른다고 불평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11월이 되었다. 교도소에서는 매달 초하루가 되면 새달의 달력을 감방마다 배부해 주었다. 그리고 11월에는 박정희 장군의 초상이 그려져 있는 달력이 배부되었는데 이것을 받는 순간 나의 눈에서는 불이 번쩍 나는 것 같았다. 나를 형무소에 가두고 이 고생을 시키는 바로 그 장본인이 눈앞에 그려져 있다는 생각에 내 머리는 아찔하였고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박정희 장군과 군인들을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라고 충고한 아내의 말을 생각하였다.

이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져야만 내가 이곳을 벗어날 수가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 달력을 보리 밥알로 앉은 키 높이의 벽에다가 붙여놓고는 나도 모르게 그 앞에 정좌하였다. 그리고는 박 장군의 얼굴을 뚫어져라 하고 마주보면서 염불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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