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이선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2월 13일부터 심장병, 빈혈, 저혈압으로 고통을 받기 시작하더니 4월15일 부터는 관절염까지 생겨 매 일요일마다 하던 산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랜 치료 끝에 10월 23일 부터는 성대 뒷산에 오르는 아침 산책은 할 수 있게 되었고, 12월 16일 부터는 조심스럽게 일요산행도 해보았다. 심장과 혈압은 그런대로 정상으로 돌아왔으나 다리 관절은 완전하지 못하였고 그리고 치질로 인한 고통이 심하였다.
누상동에 있는 용운탕에 가서 한증도 하고 침도 맞으면서 간신히 건강을 유지하는 형편이었다. 이해의 일 년은 그에게 있어서 고통의 한 해였다.
3월 31일부터 부모님께서는 장수원에 있는 원각사에 가 계셨다. 매달 이만 사천원의 입주료를 내드렸다. 그러나 식사가 불편하시다고 한 달 후에는 그 위에 있는 쌍용사로 옮기셨다. 나는 일요산행 때마다 등산 코스를 되도록 망월사 쪽으로 잡아 일행들과 같이 쌍용사에 들려 부모님을 문안하였다.
작년에 사 두었던 고가를 4월 20일에서 4월 23일 사이에 철거하고 5월 6일부터는 신축공사에 들어갔다. 아내가 다리 병으로 행동이 부자유스러워 둘째 처남 황기봉이가 공사 총감독의 일을 맡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당시에 수유리에 자기 집을 짓고 있어 우리의 일을 보아주는데 불성실하였다. 성질이 급한 아내가 기봉의 부부를 불러 야단을 쳤다. 그러는 과정에서 상호 의견충돌이 생겨 크게 소동이 벌어졌다. 부득이 이때부터 공사 감독은 아내와 무궁화가 직접 맡아서 하게 되었다.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6월 18일에는 상량식을 가졌고 드디어 9월 2일에 새 집으로 이사하였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공사 감독을 하였기 때문에 건축허가는 69평을 맡았으나 실제로는 85.4평의 집을 지었다. 그래서 준공검사에 시일이 걸려 우여곡절 끝에 12월 14일이 되어서야 보존등기가 완료되어 영준의 명의로 권리증을 받아왔다.
새 집은 소위 미니 3층이라고 부르는 백색 철근 콘크리트 양옥으로 지하에는 화실, 옷방, 서고, 보일러실, 차고, 기사방, 세탁장이 있고 1층에는 내실, 거실, 화장실, 식당, 그리고 부엌이 있으며 2층에는 서제, 무궁화방, 남채방, 옥채방, 불당과 화장실이 있고 옥상에 물 탱크실이 있다. 이 집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집이다.
작년부터 시작한 출판사의 일은 잘 되어 새해부터는 심심치 않게 수입이 들어왔다. 4월 19일부터 법철학강의(3정판)의 집필을 시작하여 6월 22일에 탈고하였고 형법총론(6정판)의 개필을 시작하여 8월 11일에 끝냈다. 그러나 이 두 원고가 출판된 것은 1974년도가 된다.
9월 18일에 부모님께서 오랜 만에 명륜동의 새 집으로 오셔서 집 구경을 하시고 매우 기뻐하셨다. 흡족한 마음으로 온 가족의 융숭한 대접을 받으신 두 분은 다시 쌍용사로 돌아 가셨다.
그런데 9월 26일 아침에 의정부에서 시외 전화가 걸려 왔다. 간밤에 두 분께서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의식이 없으시다는 것이다. 아내와 같이 다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쌍룡사로 갔다. 다행스럽게도 아버님은 의식이 회복되어 앉아 계셨으나 어머님은 용태가 중하여 서울대 병원으로 옮기셨다는 것이다. 나는 그 길로 서울대 병원으로 갔다. 산소탱크 치료를 받고 의식이 회복되어 9월 29일에 퇴원하셨지만 한 번 더 고비가 올 것이란 주치의의 예고대로 11월 7일 어머님은 다시 의식을 잃으셨다.
다음날 아내는 송광사로 내려가 3일간 어머님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어머님의 용태는 변동이 없었다. 11월 26일 부터는 음식을 끊으셨다.
끝내 11월 30일(음력11월6일) 아침 6시 25분 숨을 거두셨다. 춘추 77세. 누구보다 아버님의 애통하심이 대단하였다. 12월 2일 발인하여 삼청동 칠보사에서 강석주 스님의 집전으로 영결식, 벽제 화장장에서 유골을 모시고 다시 칠보사로 가서 환혼식, 오후 5시 광장동 근처의 한강에 나가 어류와 자라를 방생하고 그 후 49일 동안 절에서 49제를 올리는 등 불교식으로 엄숙히 정성 드려 영결행사를 마쳤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 10월 12일 나는 아내와 함께 불국사에 다녀온 적이 있다. 어머님께서도 불국사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머님을 모시고 구경시켜 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죄송스러워 평생의 한이 되고 말았다.
12월 21일 나는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장의 직책을 맡게 되었고 이에 따라 12월 31일 변호사 폐업계를 제출하였다.
나의 어릴 적 친구였던 김봉관 군이 11월 18일에 간병으로 죽었다.(57세) 이 밖에 다음과 같은 사람이 세상을 떴다. 1월 23일 전 미국 대통령 존슨. 4월 9일 피카소(91세). 4월 19일 나의 스승 켈젠선생이 양노원에서 혼자 쓸쓸히 돌아가셨다 (93세).
* 1974년(58세) 1월 5일에 법철학강의(3정판), 1월 30일에 형법총론(6정판)이 각각 방문사에서 출판되었다. 나는 대학원장실에서 펑유란의 중국철학사, 신원도 등을 공부하는 것으로 일과를 삼았다. 반면에 중국철학에 관한 고전을 대만에서 구입하여 상당한 분량이 되었다. 4월 27일에 전국 대학원장 협의회의 일로 잠시 광주를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오직 펑유란만을 상대로 씨름하였다.
그런데 7월 16일에 박동묘 성균관대학 총장은 재단 측과의 마찰로 돌연 사임하였다. 이리하여 나는 총장직무 대행으로 총장 업무를 보다가 8월 2일에는 성균관대학교 제10대 총장으로 임명되었다. 본래 사립대학교의 총장은 문교부 장관의 승인이 있어야 임명될 수 있었다.
그런데 성균관 대학교 재단이사장인 이병철 씨 명의로 나를 총장에 임명하고 싶다는 제안이 올라오자 당시의 문교부장관 민관식 씨는 크게 당황하였다. 내가 지난날 필화사건으로 인하여 박 대통령에 의해 구속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다 못해 민 장관은 청와대에 올라가 문의를 하자 박 대통령은 뜻밖의 말을 하였다고 한다. “이 사람이 아직도 건재하였구만. 지난날 황산덕 씨에게 참으로 미안한일을 하였는데 이렇게 건재하여 참으로 반가운 일이니 어서 승인해 드리라”고 하여 나에 대한 총장임명 승인은 내려졌다고 한다.
이것은 내가 민관식 씨로 부터 직접 들은 말이다. 그리고 이 일이 있은 다음부터 사립대학교 총장임명 승인을 할 때는 대통령의 사전재가를 받아야 하는 전통이 생겨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8월 20일에 학생회관 강당에서 총장취임식을 가졌다. 그러나 총장이 된 나는 그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이병철 씨의 대학운영방침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동시에 박 대통령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27년 동안 몸담아 왔던 대학 재직생활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