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은 9월 18일. 나는 제 시간에 대학에 출근하여 사무 처리를 하고 또 법철학 강의도 하였다. 그리고 오후 3시에 총리실로 갔다. 여기에서 새로이 장관이 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그리고는 청와대로 가서 대통령으로 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지금까지 내가 그처럼 싫어하던 사람들과 같이 일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내 기분은 마치 돼지비계를 씹는 것과 같았다.
이날 나와 함께 임명장을 받은 사람은 다음과 같다.
부총리 남덕우, 재무 김용환, 문교 유기춘, 보사 고재필, 교통 최경록, 문공 이원경, 체신 장승태 그리고 통일원 신도성씨 등이다. 임명장을 받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오니 김종경 법무부 차관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날의 등청에 관한 일을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다음날 종합청사 6층에 있는 법무부로 등청하여 이봉성 전 장관과 함께 이취임식을 가지고 뒤이어 법무부 국장들과 검찰간부의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는 시내 각 신문사를 찾아 취임인사를 하였다. 한 달쯤 전에 대학교 총장으로서 인사를 다녔는데 이제 또 장관이 되어 같은 인사를 다녔다.
(9월 분 : 성균관대 봉급 : 385,000원, 장관 봉급 : 74,479원, 정보비:400,000원)
1974년 8. 15 광복절 축하행사가 국립극장에서 있었고 이때 대통령을 시해하려고 문세광이 발사한 총탄이 옆에 있던 영부인의 머리에 맞아 결국 육영수여사는 사망하였다. 문세광은 그후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고 있었으나 내가 법무부장관에 취임하자 그 사건을 서울지방 검찰청으로 송치해왔다. 나는 그 사건을 정치근 부장검사에게 배당시켰다.
공화당 사람들은 나를 찾아와 국모를 시해한 사람에게 무슨 재판이 필요하며 만일 일본의 적군파나 중동의 아랍 게릴라가 해외에 있는 우리 공관을 점령하고 문세광과 바꾸자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등의 압력을 가해왔다. 그리고 이 사건에 관해 박 대통령은 무표정이었다.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고 그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어디까지나 재판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다만 진행을 빨리하는 일에 대해서만 신경을 썼다.
장관의 태도가 확고하자 공화당 사람들도 더 이상 간섭은 하지 않았다. 나는 송명관 씨를 불러 국선변호를 부탁하면서 여러 가지 정부의 사정을 알려 주었다. 문세광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서 송 변호사가 그 때에 베풀어 준 협력에 대하여 나는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
10월 17일 제1심의 1회 공판이 있었고 모든 절차가 급속도로 진행되어 제2심을 거쳐 12월 17일에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다. 71일 동안에 필요한 모든 법적절차를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밟은 것이다.
대법원에서 판결이 선고되자 나는 모든 세부사항을 김 차관에게 일임하고는 곧 서정각 검찰국장을 대동하여 지방순시를 떠났다. 부산, 울산, 경주, 포항, 대구를 거쳐, 다음날 서울로 올라 왔는데 그 간에 김 차관은 모든 절차를 다 갖추어 문세광의 사형집행에 대한 법무부장관의 집행명령 결재만을 준비해 놓았다.(사실 나는 이 집행명령을 내 손으로 직접 하기가 싫어서 지방순시에 떠났던 것이다.)
서울에 돌아 온 나는 문세광의 집행시간을 아침 7시로 정하였다. 그러나 김치열 검찰총장은 관례대로 아침 10시에 집행하자고 말하였다. 나는 “내가 지난 날 5개월 동안 서울 구치소에 있어 보아 그 안의 구조를 잘 알고 있는데 만일 문세광이 집행 장소로 끌려가면서 눈치를 채고 난동이라도 부리면 다른 감방에서 많은 죄수들이 그 광경을 내다 볼 것이고 이것은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요. 다른 죄수들이 다 자고 있을 때에 끌고 나오는 것이 좋을 것이요.” 라고 설명하고 그 시간에 집행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12월 20일 아침 나는 장관실에 앉아서 진행과정을 수시로 보고 받았고 7시 5분에 사형집행이 끝났다는 보고를 받은 후에 나는 곧 동작동 국립묘지로 갔다. 육영수 여사의 묘소에 분향하고 배례하면서 “제가 여사님의 원수를 갚았읍니다.”라고 보고 하였다. 그리고 분향소로 내려와 방명록에 ‘문세광 사형집행보고 차 법무부장관 황산덕’이라고 쓰자 옆에서 지켜보던 직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아!’라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다시 시내로 들어오는데 그때 차안에서 라디오로 집행소식을 들었다. 보도진에게 미리 알리면 기밀이 새어나가 혹시 공산주의자들의 난동이나 있지 않을까 해서 일체 비밀리에 진행했던 것이다.
오후에 집행 당시의 광경을 녹음한 테이프가 왔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청와대로 갔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박 대통령에게 들려주지 않았다. 너무도 잔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송명관 변호사의 설득으로 문세광은 모든 것을 순순히 자백하였지만 그러나 비록 사형 판결이 확정되었어도 집행은 되지 않으리라고 그는 믿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집행실에 들어서자 그는 놀란 목소리로 일본말로 “집행합니까.” 라고 묻더니, “영부인의 명복을 빕니다. 박 대통령에게 큰 죄를 지었습니다. 일본에 있는 아내가 불쌍합니다.”라는 말을 일본어로 수없이 반복하였던 것이다.
내가 들어도 마음이 좋지 않은데 대통령이 들으면 어떨까 해서 그것을 들려주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나왔다.
나는 다만 대통령 앞에서 문세광의 집행경과를 형식적으로만 보고하였다. 박 대통령은 수고 했다고 치하하고는 어째서 집행 시간을 아침 7시로 했는가를 물었다. 김치열 씨가 알려드린 모양이다.
“전일에 제가 서울 구치소를 직접 가보았는데 문세광이 있던 방에서 사형집행실로 가려면 기결수들이 있는 건물들 사이로 가야 합니다. 문세광은 집행은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집행실로 가는 줄을 알게 되면 필시 소리 내어 발광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감방 안에 있는 죄수들이 내다보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수들이 모두 자고 있는 시간에 끌어내도록 한 것입니다.”
“어째서 문세광이가 집행은 안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까?”
“송명관 변호사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야만 배후관계를 순순히 털어 놓으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 그랬습니까.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보고는 끝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