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주기 검찰간부회의 (92회)
  제13장 공직생활1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글이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2.1. / 특기사항 없음. 현재까지 경미한 사범 10건이 있었을 뿐.
2.2. / 청와대에서 있은 대책회의에서 대통령은 1) 현재의 평온한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라. 2) 표가 적어도 좋으니, 투개표만은 깨끗하게 하라. 후유증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3) 선심행정은 일체하지 마라라고 지시 하였다. 이것은 나의 의견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일요일이지만 등산은 하지 못하고, 윤상과 경화를 데리고 드라이브하였다.
2.3. / 특기사항 없음. 경미한 사범 16건. 오글 목사가 미국 TV에 나와 한국에는 종교탄압이 없다고 증언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인천에 가서 소년 교도소와 출입국 관리사무소를 순시하였다.
2.4. / 특기사항 없음. 경미한 사범 19건. 의정부 교도소순시.
2.5. /  9시에 국무회의. 투표일 공고. 수원 연수원, 수원 교도소, 안양 교도소 순시. 4시에 대책회의. 경미사범 1건 증가.
2.6. / 8시 반에 대책회의. 특기 사항 없음. 춘천 교도소. 춘천 소년원 순시.
2.7. / 특기사항 없음. 경미사범 총 21건. 대전 소년원 순시.>

조용한 가운데에 일주일이 지나갔다. 사범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훈방으로 끝낼 수 있는 경미한 것이 20건 정도 생겨났을 뿐이다. 앞으로 2, 3일만 무사히 보내면 투표일이 되므로 나로서는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이 된다. 그리고 2월 8일에 청와대에서 대책회의가 있을 때까지만 해도 별 특기사항은 없었다. 그간 간통 사건으로 구속되어 있던 원로 변호사 이병린 씨를 석방하기로 하였다.

모든 것이 평온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날 김영삼, 김대중 씨의 공동선언이 있었다. 앞으로 대대적인 국민투표 거부운동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이것을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저녁에 집에서 식사를 하고 쉬고 있었는데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만일 대대적인 거부 운동이 벌어진다면 그것을 벌하지 않겠다고 주장한 나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미 시간은 밤 10시 30분쯤 되었지만 나는 즉시 검찰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곧 검찰간부 전원을 검찰총장실로 부르시요.”
“불러서 무었을 합니까?”
“그저 안에서 문을 잠그고 약 1시간 가량 담배나 피우고 커피나 마시다가 모두들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가게 하시요. 기자들이 물어보아도 묵묵부답하라고 특별히 이르시요.”
 
▲ 검사장회의 주재

김 총장은 내 뜻을 파악하고 하라는 대로 하였다. 이것을 보고 기자들은 무엇인가 있을 것으로 보고 다음날(일요일) 아침 검찰비상에 관한 대대적인 추측기사를 발표하였다. 이것은 재야 극렬분자들의 행동을 견제하는 효과를 노린 작전이었다. 정치면 톱기사로 이 비상회의를 신문에서 본 대통령은 크게 놀랜 모양이었다. 곧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 신문이 굉장한데, 무슨 일이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만 어제 밤에 검찰간부들을 모이게 한 것은 단순한 겁주기 작전에 불과하였습니다.”

조금 후에 김종필 총리가 전화를 걸어왔다.

이리하여 2월 9일(일요일)도 조용히 지나갔다. 아침 9시에 청와대에서 대책회의가 열렸으나 모든 것이 평온하여 특기할만한 사항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처와 함께 자동차로 시내의 몇 군데를 둘러보았다.

그날 저녁 나는 검찰총장에게 어제와 같은 일을 다시 한 번 반복하되 경우에 따라서는 기자들을 이쪽에서 불러 성명을 발표해도 좋다고 하였다. 그날 밤 김 총장은 기자들 앞에서 투표사범에 대한 엄중경고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곧 라디오로 방송되었으나 월요일에는 조간신문이 없었으므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자세한 내막을 알 수가 없어서 일반국민에게 많은 궁금증을 안겨다 주었다. 이에 따라 겁주기 작전의 효과는 배가 되었다. 나의 예측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었고 보이콧 운동은 완전히 잠잠해졌다.

다음 날인 2월 11일은 구정 날 이어서 전 시민은 집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고 그리고 2월 12일은 투표일이다. 거부운동을 처벌하지 않겠다는 나의 방침에 대하여 중정 측에서는 심하게 압력을 가해 왔고 그리고 김영삼 씨 밑에 있는 이택돈 의원이 특히 나를 무척 괴롭혔지만 이제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조용히 끝나게 될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을 놓게 되었다.

2월 11일. 구정 날 아침. 10시에 청와대 대책회의에서 그 간의 정세에 대한 마지막 점검이 있었다. 78% 투표에 76% 찬성이 되리라는 전망이었다. 오후 3시에 중앙청에서 국무회의가 있었다. 그러나 그저 모였을 뿐 별다른 안건은 없었다.

다음날은 기다리던 투표일. 당시의 일기를 그대로 적어본다.
 
2.12 / 투표일. 투표안이 공고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그리고 김영삼, 김대중, 윤형중, 양일동 등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한명의 구속자도 없이 지극히 평온하고 공정한 분위기가 유지된 채 진행되고 있다. 그간에 나는 그들을 구속하라는 압력을 수 없이 받아 왔지만 단호히 그것을 막아 왔던 것인데 만일 내가 그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구속 사태를 일으켰다면 오늘의 투표에서 비록 승리를 거둔다 할지라도 정부는 면목이 없어졌을 것이 아닌가.

밤을 새워가면서 개표가 진행되고 있고 대체로 80% 투표에 72% 찬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어제 청와대에서 전망한 것과 비교해 보면 투표는 2% 높아지고 찬성은 3% 낮아진 것인데 여기에는 동아일보 사태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작년 말에 중정이 동아일보를 건드렸기 때문에 많은 소란이 일어나 정부가 궁지에 몰리게 되었는데 이번 국민 투표에 있어서도 만일 내가 그들의 말을 따랐더라면 제2의 동아일보 사태 비슷한 우를 범했을 것이 뻔하다.
 
2.13 / 국민투표 결과는 투표 80% 찬성 73% 로 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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