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속에 위치한 평안남도 양덕의 옛 마을, 교회 안 살림집에서 1917년 6월 18일 (음력 4월 25일) 아침 해 뜰 무렵에 어머니는 나를 낳으시었다. 출산을 돌보아 준 사람은 일본인 산파였다. 이 해의 10월에는 러시아에서 레닌이 공산혁명을 일으켰다.
무슨 근거인지는 잘 모르지만 한국 사람들은 태몽에 대하여 특이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어머님이 꾸신 나의 태몽은 다음과 같다. 어머니가 산에 올라갔는데 산이 온통 금반지로 덮혀 있었고, 황홀해서 바라보고 있는데 호랑이가 갑자기 뛰어와 덤벼 들기에 무서워서 금반지 하나를 손에 들고 황급하게 집으로 도망왔다. 이것이 나에 대한 태몽이라 하면서 어머님은 매년 가을이 되면 나를 위해 산신기도를 올려 주시었다. 토속신앙에서는 호랑이를 산신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겸해서 자식들의 태몽을 적어 둔다.
영준 : 일본의 황태자가 와서 그의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영채 : 엄마가 홍능(민비의 능)을 지나가고 있는데 제단석 밑에 있던 큰 구렁이가 나타나 엄마의 치마 밑으로 들어가 발꿈치를 꽉 물었다.
인록 : 외할머니가 엄마의 꿈속에 나타난 것을 보고 애 엄마는 평양에 계시던 친정 어머니가 돌아가신 줄 알았다. 동시에 이 꿈을 근거로 아내는 친정 어머니가 인록의 몸으로 환생되었다고 믿게 되었다.
남채 : 캄캄한 밤에 대동강 건너 선교리에서 어린애 하나를 업고 왔다. 그 애는 나를 보고 방긋 웃었다.
옥채 : 고려대 차락훈교수와 함께 공원을 거닐고 있었는데 우주인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내가 그 우주복의 지퍼를 열어 젖혔으므로 그는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가 없게 되었다.
1917년 정사년에는 많은 인물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의 케네디대통령, 이집트의 나세르대통령, 인도의 인디라 간디 여수상, 필리핀의 마르코스대통령, 그리고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과 정일권, 김정렬, 홍진기, 이용희, 이한기, 조영준, 심종섭 등이 모두 정사생이다.
3살때 나는 어머니와 함께 평양으로 옮겨와 대성학교 앞에 있는 할아버지 댁에서 살게 되었다. 평양 감옥에서 풀려나신 선친이 나를 업고서 이문리 교회에 있는 유치원으로 데리고 가셨던 일이 기억난다. 이것이 내가 5살 때의 일이고 그 이전의 일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이 유치원에 오래 다니지 못하였다. 교회 안에 들어가 여기 저기 다니며 장난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쫓겨난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평양에 오기까지는 고모네 딸 전경록이가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었으나 내가 나타난 후로는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나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맘대로 뛰어다니며 으시대었다. 집안의 장손이요 장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만 7세가 되어야 학교에 입학 할 수 있는데도 나는 하도 장난이 심해서 집에 그냥 둘 수가 없어 6살밖에 안되었지만 사립학교인 대성보통학교에 편법으로 입학시켰다. 상수구리 77번지로 이사 간 다음의 일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 평양 사람들은 참으로 많이 먹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주부들은 매일 시장을 보았다. 어머니는 아침마다 바구니를 들고 가까운 시장에 나가셨는데 나는 번번이 따라 나섰다. 먼저 육고(정육점)에서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사셨는데 육고집 주인은 나를 보면 으레 삶아 논 돼지고기 한 점을 칼로 베서 주셨다. 나는 그 고기를 먹으면서 시장 안에서 어머님의 뒤만 따라 다녔다.
집에 돌아와서는 시장에서 사온 묵물과 떡을 식구들과 함께 먹고 나중에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는 아침을 먹었다. 점심까지 먹고 나서 오후 4시경이 되면 행상이 소 발통(족발)을 팔러온다. 쇠고기의 족발이나 힘줄 같은 것을 삶은 것인데 그것을 잘게 썰어 초간장에 찍어서 온 식구가 함께 먹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에 저녁을 먹고 밤 10시가 되면 냉면을 먹었다. 당시의 평양 사람들은 이와 같이 하루에 6번이나 식사를 하였다. 서울 사람들은 입어서 망하고 평양 사람들은 먹어서 망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광성학교 1학년 때 나는 신장에 벗어놓은 친구의 가죽구두가 탐이 나서 그대로 신고 집으로 왔다. 곧장 집으로 오지 않고 친구와 어울려 어깨동무를 하고 거리를 누비고 다니면서 독일 잠수함 엠덴(Emden)호의 노래를 부르면서 신나게 걸었다.
저녁에 아버님이 그 구두를 보시고는 매우 안타까워하는 눈치였지만 그러나 별로 꾸짖지는 않으셨다. 꾸지람을 듣지는 않았지만 선친의 표정으로 보아 나는 내가 잘못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날 나는 구두를 가지고 학교에 갔고 담임인 송 선생에게 불려가 벌을 섰다. 두 팔을 올리고 그대로 서 있는 것이 벌이었는데 얼마 후에 어머니가 오셔서 나는 곧 풀려났다.
어머니는 오는 길에 학당골 시장에서 녹두 고명찰떡을 사오셔서 맛있게 먹었다. 저녁에 집에 와 보니 선친께서 가죽으로 만든 예쁜 편상화를 한컬레 사오셨다. 나는 신이 나서 그 구두를 신고 길을 가는데 마른 곳은 가지 않고 물이 있는 데로만 골라서 다녔다. 구두 속으로 물이 스며들지 않는 것이 신통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구두는 두 달이 못가서 신을 수 없게 되었다.
광성학교 2학년(7살)에 나는 담임선생님으로 부터 심하게 매를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온 몸이 피멍이 들었었는데 너무 장난이 심해서 그렇게 때렸다는 것이다. 그날 밤 선친께서 나를 데리고 그 선생의 집을 찾아가 크게 항의하셨다. 그 선생은 아주 잔인히게 생긴 사람이었다. 담임선생의 미움을 샀기 때문에 2학년의 성적은 좋지 않아 학급 반에서 겨우 22등을 하였다.
3학년 때에는(8살) 독립군의 흉내를 내면서 친구들이랑 몰려 다녔다. 2층에서 뛰어 내리기도 하고 바지 속에 모래를 가득 넣고서 뛰기도 하였다. 대님을 풀어서 모래를 쏟아 버리면 몸이 가벼워져 뛰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반복하였다. 안창호, 안창남 같은 사람이 당시 우리에게는 우상과 같은 인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