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글(George E. Ogle) 목사 추방...

그러는 동안에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왔다. 장준하 씨의 독기도 조금씩 가시기 시작하였고 반면에 그는 건강을 위하여 등산을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산에서 추락하여 생명을 잃고 말았다. 의정부 검찰지청에 있는 서돈양 검사의 보고에 의하면 급경사 된 비탈길을 내려 가면서 잡은 나무가 부러져 추락사하였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믿지 않으려고 하는 재야의 사람들은 기관원이 일행에 잠복하여 있다가 장 씨를 밀어서 떨어지게 한 것이라고 떠들어 댔다. 그러나 너무도 조작된 말이기 때문에 이러한 말들은 곧 잠잠해졌다. 나중에 장 씨의 측근들로부터 들은 말에 의하면 그 때에 장 씨가 잡았던 나무는 작은 소나무였고 그 나무는 부러져 있다는 것이다.

장 씨를 석방시킨 이후 나는 장 씨로부터 전화 한번 받은 일이 없었다. 박 대통령 밑에서 장관을 하고 있으니 다 같은 패라고 생각했을런지 모른다. 나는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 친구로서의 의리를 가지고 일을 힘들게 역어냈는데 그는 정치적인 반발심이 강한 나머지 친구로서의 정마저 거부한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 후에도 장 씨의 유가족에 대하여 가능한 모든 편의를 보아 주었다.

▲ 1965년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 강연장에서의 장준하 [출처 : 장준하기념사업회]

법무부는 큰 부처는 아니다. 그러나 장관으로서 부하를 통솔하는 일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부하 직원에게 일정한 과업을 지시하고 나면 그것을 곧 수첩에 적어둔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하면 그 수첩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그런 다음에 그 직원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지난번에 지시한 일이 있는데 어떻게 되었냐고 물으면 그 직원은 놀라며 다음부터는 틀림없이 자기 업무를 완수하였다. 그만큼 법무부 직원들은 대개가 우수하고 과연 수재들의 집단 같이 업무수행 능력도 탁월하였다.

미국인 목사 오글이 해방신학을 가지고 와서 국내에 퍼뜨려 도시산업 선교회 등을 지도하면서 많은 소란을 피웠다. 이리하여 그의 이름이 연일 신문에 보도되었고 따라서 정부에서도 차차 그를 위험인물로 보기 시작하였다. 도산이 침투한 기업체는 도산하고야 만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흘러 다녔던 것이다.

12월 12일 아침에 성균관대학교의 탁희준 교수가 나를 찾아와 오글(George E. Ogle) 목사는 한국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니 정부에서도 오해를 풀어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러나 그때까지 나는 오글 목사의 정체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어 그저 알겠다고만 대답하고 탁 교수를 돌려보냈다.

그날 오후 늦게 청와대에서 시국대책 비밀회의가 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오글 목사의 말이 나왔다. 그 때에 나는 무심코 오늘 아침에 성균대의 탁희준 교수가 나를 찾아와 하는 말이 오글 목사는 참으로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중앙정보부장 신직수씨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들고는 그때까지 조사한 오글 목사의 비행을 열거해 내려갔다. 듣고 보니 그는 별로 좋은 사람 같지 않다. 옆에서 듣고 있던 김종필 총리는 “오글 목산지 무언지 오그라지면 좋겠다.”라는 말까지 하였다.

나는 즉시 태도를 바꾸어 대통령을 향해 말하였다.

“저는 오글 목사가 이처럼 고약한 사람인줄 몰랐습니다. 그러면 제가 이 사람을 추방할까 하는데 그렇게 해도 대미관계에 지장은 없겠습니까?”


▲ 경향신문 (1974. 12. 14.)

이에 대하여 대통령은 무방할 것이라고 대답하였고 김 총리는 빨리 조치를 취해 달라고 말하였다.

나는 오글 목사를 수일 내에 국외로 추방하겠다고 말하고는 법무부로 돌아왔다. 이미 밤은 늦었지만 법무부의 주요 검사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김유후 검사를 불러 오글을 추방하기 위한 절차를 밟으라고 지시하였다. 김 검사는 참으로 유능한 검사였으므로 그날 밤부터 그는 오글을 불러 필요한 절차를 밟아 나갔다.

출입국관리법에 의하면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에 대하여 우리 정부가 달갑지 않은 인물(Persona non grata)이라는 판정을 내리면 일정한 절차를 밟아서 그를 추방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김 검사는 바로 그러한 절차를 법의 규정에 따라 신속하게 밟아나간 것이다.

이리하여 12월 13일에 모든 법적절차를 끝내고 오글을 일단 귀가시켰다가 12월 14일에는 법무부장관의 이름으로 그에 대한 추방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대한항공에 부탁하여 그날 밤 동경으로 가는 비행기에 좌석을 하나 예약하고는 김 검사가 오글을 그의 집에서 데리고 나와 김포에서 비행기에 태워 미국으로 보냈다.

청와대에서 추방하기로 방침이 정해진 이후 만 2일 만에 국외추방이 이루어진 것이다. 동경에 내린 오글은 수일간 그곳에 머물면서 우리 정부를 맹렬히 비난하였고 그 후 미국에 돌아가서도 계속해서 반한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잠잠해졌고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름은 들리지 않고 있다.

이렇게 추방된 사람은 5년 이내에는 다시 입국할 수 없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다.

1979년에 박 대통령이 시해되고 또한 그 5년의 기간이 경과하자 오글은 다시 우리나라로 들어오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그가 추방된지 15년 이상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가 아직 한국에 돌아오지 못한 것을 보면 그에 대한 입국사증을 우리 정부가 내주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오글 목사 건을 처리해버리자 대통령은 무척 흡족해하면서 국무회의 석상에서 두고두고 치하를 하면서 다른 부처의 장관들에게도 귀감이 되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 당시 대통령 특별보좌관이던 최규하 씨도 나에게 걸음걸이는 느린데 일하는 것은 날쌔다고 칭찬해 주었다.

나는 법무부장관이 된 후에 우선 법무부 각 실국의 실정을 파악하고 그리고 대검찰청으로 가서 서울에 있는 검찰의 보고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