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 ㅡ 겁주기 작전 (90회)
  제13장 공직생활1

1975년 1월 15일에 통일당의 당수인 양일동씨가 기자들 앞에서 6.23선언에 반대하면서 대민족회의를 주장하여 결과적으로 김일성의 주장과 동일한 내용의 발언을 하였다. 그래서 그날 나는 서울지검 공안부장 정치근 검사를 불러서 조사해 보라고 지시하였다.

그런데 다음날 김종필 총리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면서 양일동 씨의 구속만은 피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1월 20일쯤 되면 여러 국무위원들에게도 알리겠지만 유신헌법에 대하여 대통령이 항상 꺼름직하게 생각하는 점은 비상계엄 하에서 국민투표를 실시해서 확정시켰기 때문인데 이제 2월12일에 또다시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국민의 신임을 묻고 만일 부결되면 대통령 자리에서도 물러난다는 각오로 1월 20일에 공고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찬반대론의 회수도 정하는 식으로 해서 평온리에 신임을 묻기로 하였는데 법무부 장관만은 미리 알아야 하겠으므로 알려 드립니다.” 이렇게 총리는 말하였다.
 
▲ 양일동이 이끄는 통일당은 신민당과 함께 박정희 독재정권과 투쟁한 대표적인 야당이었다

그런데 이 일이 실제로 거론된 것은 1월 22일의 일이었다. 이날 아침 8시 30분에 시작된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헌법 제49조에 의한 국민투표안을 공고하기로 결의하였고 그리고 9시 30분에 문화공보부의 상황실에 미리 소집해 놓은 각 신문 편집국장들 앞에 나아가 나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1) 투표를 보이콧 하라는 운동은 처벌하지 않겠다.
2) 과반수 투표에 과반수 지지가 있어야 국민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하겠다.

이러한 발언이 보도되어 나가자 뜻밖의 물의가 터져 나왔다. 첫째로 내가 과반수 투표, 과반수 지지라고 발언한데 대하여 중앙정보부 측에서는 즉각적으로 유효투표의 과반수 지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1,600만 유권자 중에서 적어도 400만 이상의 지지투표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고(정치적 이유), 기권자가 많아질 것을 감안하여 가령 100만 명이 투표하여 50만 이상이 지지하여도 좋도록 하자는 것이 정보부의 의견이었다(법률적 해석).

국민투표법의 내용이 불충분하여 정보부측의 주장대로 해석이 가능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순전히 정치적인 견지에서 위와 같이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관한 대통령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50만 명이 찬성한 것을 가지고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고 볼 것인가. 나는 법무부장관의 의견을 따르겠다."

이리하여 나의 주장대로 중앙선거 관리위원회에서 규정을 만들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나의 발언의 요지 2)는 해결되었으나 요지 1)은 계속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그때 내가 편집국장들 앞에서 발표한 내용은 신문사에서 거두절미하고 왜곡보도 되었으며 이에 따라 야당 측에서는 범국민적인 보이콧 운동을 벌일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1월 23일에 나는 대변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해명기사를 내도록 하였다.

국민투표를 보이콧 하도록 운동을 벌이는 것은 반대투표를 하도록 선동하는 것과 다름없는 효과를 가져 오므로 단속대상이 된다고 보는 것이 법무부 장관의 발언의 진의였었다고 발표하였다. 물론 대통령과 나 사이에는 국민투표 보이콧 운동을 처벌하지 않기로 내막적으로 합의된 바가 있었다. 대체로 보아 청와대 측과 법무부 측은 이번의 국민투표에 관하여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정측은 지나치게 예민하여 처벌 일변도로 나가려는 경향을 엿보이고 있었다.
 
▲ <희박한 투표거부의 논거>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사설 (1975. 1. 25.)

이리하여 국민투표 보이콧 운동자들을 가차 없이 구속할 방침을 세우고 있는 것 같아 불필요하게 사람들을 다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나는 위와 같은 경고조의 해명기사를 내도록 하였던 것이다. 나의 이러한 심정을 대통령과 유혁인 정무수석과는 뜻을 같이 하였지만 신직수 중정부장, 김영관 판기국장 그리고 김기춘 제5국장은 강경일변도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문에서는 이러한 보이콧 운동에 관한 기사가 연일 보도되었다. 이에 대하여 정보부 측에서는 법무부는 무얼 하는 것이냐 라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할 수 없이 1월 24일에 김치열 검찰총장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보이콧 운동을 보도한 언론기관을 처벌해서는 절대로 안 되지만 검토해 보겠다는 정도로 흘려보내라. 이 보이콧 운동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나의 마음을 참으로 무겁게 만들었다.

1월 22일 아침의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을 지적하여 국민투표에 있어서의 찬반 토론은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 지금까지 1년 반 이상이나 유신헌법에 관하여 시끄럽게 떠들어 왔으니 이제는 더 들을 필요가 없다.
2)이번의 국민투표는 분렬된 국론을 통일하기 위한 것이므로 더 이상의 찬반논의는 불필요하다.

이러한 나의 주장에 대하여 대통령은 거의 절대적으로 찬동하였다. 또한 나는 대통령에게 국민투표를 보이콧하는 운동을 처벌할 수 없다고 말하였고 대통령도 그것이 좋다고 하였다.

그 후 나는 문공부장관실로 나와 편집국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정족수에 관하여 과반수 투표에 과반수찬성의 이론을 내세웠다. 그러나 중정 측에서는 유효투표의 과반수 찬성론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대통령은 또 나의 편을 들었다. 그래서 중정 측은 더욱 초조해 지게 되었다. 그러나 1월 22일 저녁부터 반정부인사들이 국민투표 보이콧 주장을 하고 나서기 시작하였고 1월 23일 부터는 평양측이 또한 그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리하여 중정 측은 나에게 압력을 넣기 시작하였다. 불참자가 많아져 과반수 투표가 못되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것이다. 이러한 공격을 슬기롭게 받아 넘기기 위하여 1월23일 밤에 나는 해명기사를 내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참으로 잘 한 일이라는 것이 청와대 측의 평가였다.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 질수록 다른 부처의 시샘과 견제가 있기 마련인데 이것을 아슬아슬하게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부처님의 가피지력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앞으로 국민투표 기간 동안 나는 그저 지성과 침묵으로 일관하며 지켜볼 것이다.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이다.

 
  불탄일을 공휴일로 (89회)
  정부와 김대중 김영삼 양 김씨와의 갈등 (91회)
  |11||12||13||14||15||16||17||18||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