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가 무사히 끝났으므로 정부는 승자의 아량을 보이기 위하여 대대적인 선심을 쓰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긴급조치 1호와 4호 위반으로 구속된 203명 중에서 인혁당 관계자와 공산주의자를 제외하고 형이 확정된 자는 형집행정지로, 그리고 법원에 계류 중인 자는 대법원에 부탁하여 법관의 형집행 정지결정을 받아 모두 석방하기로 하였다.
다만 학생의 신분을 가진 자와 일본인 2명은 무조건 석방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3월 11일에 제 91회 임시국회를 열었다.
그런데 이번에 석방된 자들 중에는 지난날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가 있었고 그것 때문에 국회에서 주로 나를 상대로 공격을 퍼부었다. 우선 3월 18일에 신민당 최병우 의원이 국부가 불구가 됐다고 하면서 2년 반전에 그가 당한 고문 사실을 들추어 가면서 주로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질문하였다. 이렇게 내가 심한 고문을 당했는데 법무부 장관은 어째서 그 수사관을 처벌하지 않는가 라는 것이었다.
내가 취임하기 전에 있은 일이므로 나는 그 사건의 내용을 도무지 알 수 가 없었다. 그렇지만 장관으로서는 어떤 답변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형법 제125조를 들어가면서 그가 당했다는 것은 고문이 아니고 또 2년 반 전이라면 비상계엄하가 되는데 이때 군수사기관이 행한 것은 법무장관의 소관 밖이라고도 말하였다. 내가 형법조문을 들어가면서 대학 강의조로 답변하니 모든 의원들은 최면술에 걸린 사람 모양 재미없는 얼굴 표정으로 그냥 숙연히 앉아 있었다.
답변을 끝내고 밖에 나와 잠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통일당의 박병배 의원이 나에게 왔다. “자네 오늘 최병우를 멋지게 해 치웠어. 그 녀석 야당 국회의원으로 있으면서도 남산의 끄나풀로 일해 왔는데 여기저기 불고 다니다가 남산에 불려가 얻어터진 거야. 그걸 가지고 고문당했다고 떠들어댄 것이니 오늘 자네 참 잘했어.”라고 말한다.
나는 박 군의 말의 진위를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이때부터 야당의원들에 대한 나의 신뢰는 없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제 91차 임시국회에서는 지난 72년의 계엄 하에서 제 8대 신민당의원 10여명이 당한 고문을 문제로 삼고서 법무부 장관을 굴복시키려고 신민당의 두뇌들이 총동원되어 나왔으나 결국 그들은 당해내지 못하고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3월 20일에 있었던 쌍방의 공방전 개요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김명윤 의원 질문 - 2월 15일에 석방된 사람들이 고문당했다고 주장하는데 황 법무는 어째서 고문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논리적 심증이 간다고 말했는가.
답변 - 작년에 긴급조치 위반으로 체포된 사람은 1,464명이었다. 1차 조사 후에 1,200명 가량이 석방되었으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입에서 고문당했다는 말은 나오지 않고 있다. 203명이 입건되었다가 2.15조치로 인혁당 관련자 35명만 남겨두고 모두 풀려 나왔다. 풀려나온 168명의 대부분이 고문당했다고 말하지 않고 있으며 지학순, 김지하, 김동길, 김찬국 등은 적극적으로 고문당한 일이 없다고까지 해명하고 있다.
|
|
| ▲ 경향신문 1면의 임시국회 의원들의 질의에 대한 필자의 답변 기사 (1975. 2. 24.) |
|
다만 그 중에서 나병식 등 5명만이 고문당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들은 자기 때문에 배후 조직이 폭로되었고 또 자금을 공작비에 쓰지 않고 사적으로 쎴기 때문에 동지들의 비난 보복이 두려워 고문당했다고 허위로 말하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된다 (예: 김일성 만세 사건). 그리고 인혁당 관계자에게도 고문은 없었던 것으로 보고 받았다 (예: 하재완의 탈장건).
이북에서 이남 사람을 다루는 정도로 이남에서도 이북 공산주의자를 다룰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인혁당 사건에 관해서는 그 정도의 일도 하지 않고 아주 신사적으로 대한 것으로 보고 받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나는 고문이 없었다고 하는 논리적 심증이 간다고 말했던 것이다.
|
|
| ▲ 인혁당 사건을 발표하고 있는 필자(1975. 3.4.) |
|
2) 박한상 의원 질문 - 오글 목사를 추방하여 국위를 손상시켰다. 왜 그랬는가.
답변 - 오글을 불러다가 신문에 보도된 것과 동아방송에서 방송된 것을 모니터한 것 등을 보이면서 이렇게 말한 사실이 있는가를 물었더니 그는 그렇다고 시인하였다. 그러면 당신의 언동이 우리나라 출입국관리법에 위반되고 따라서 법에 의한 강제 퇴거사유에 해당된다는 것을 아는가라고 물었더니 안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그러지 말 것을 요구하자 자기는 하느님 법을 따를 뿐이요 대한민국의 법에는 복종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추방하겠다고 말하자 추방하지는 말아달라고 빌었다.
오글은 이중성격자인 것 같았다. 추방당하기 싫으면 앞으로는 안하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했더니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미국사람인 자기를 감히 어떻게 할 것이냐는 고자세의 태도였다. 주권국가의 공무원으로서 더 이상 모욕을 참을 수 없었으므로 법적절차를 밟아서 추방하였는데 이것이 어째서 국위손상이요. (내가 이렇게 답변하자 박한상, 김명윤, 김인기 의원 등은 이구동성으로 아주 잘 했다고 큰소리로 칭찬했다.)
3) 김명윤 의원의 질문 - 2.12 국민투표는 부정투성이었는데 법무부장관은 왜 그것을 단속하지 않았는가.
답변 - 이번 국민투표에서 전국의 투표소는 10,644 개소였는데 검찰에 접수된 사건은 29건이었고 그 중에서 허위 투표로 문제가 된 것은 15건 346매에 불과하다. 유권자 1,600여만 명 중에서 346은 0.002%에 밖에 되지 않는다.
야당 의원들끼리도 사석에서는 이번 국민투표야 말로 정부수립 이후 가장 평온하고 공정한 것이었다고 말들을 하고 있다는데 정말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