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문사
17세가 되자 나는 4학년으로 진급하였다. 당시의 학제는 4학년을 마치면 고등학교나 대학예과에 들어갈 수 있었으므로 이때부터 학생들은 상급학교에 입학하기 위하여 시험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리하여 나는 4학년이 되면서 시험준비를 위한 참고서를 사다가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일본 동경에 있는 구문사(歐文社)의 첨삭회(添削會)에도 가입하였다. 이 단체의 회원이 되면 한 달에 3번씩 문제가 우송되어 오는데 그에 대한 답을 써서 보내면 빨간 글씨로 첨가 또는 삭제되고 또한 채점까지 되어 되돌아오는 것이다. 회원은 전 일본에 약 5, 6천 명이 되었고 그때마다 순위가 먹여져서 그것이 회보에 게재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학생들의 경쟁심을 불러 일으켜 공부하는 데에 큰 자극제가 되었다.
나도 이 회에 가입하고는 열심히 공부하였는데, 전 일본에서 1등을 한 적이 한번 있었고 5등 이내에 들은 적도 몇 번 있었다. 은컵을 상으로 받기도 하였고 메달도 몇 차례 받았다. 그리고는 ‘귀하는 일본에 있는 어떤 학교에 가서 입학시험을 치러도 반드시 합격할 것을 보장합니다’라는 판정을 내려 주기도 하였다.
담배
17세 되던 해 겨울 어느 날 나는 김원찬, 김봉관과 같이 만수대로 올라갔다. 이것은 우리들이 늘 하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원찬이가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피워 보라고 권하였다. Macow라는 10개들이 5전짜리 싸구려 담배였다. 봉관이가 그까짓 싸구려 담배는 안 피운다고 거절하였기 때문에 원찬이는 끈질기게 나에게 권하는 것이었다.
나는 호기심에서 한대 피워 보았다. 담배 연기를 들여 마시는 순간 기침이 나면서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고 머리는 어질어질하여 쓰러질 것만 같아서 곧 담배를 꺼 버리고 말았다. 그 다음부터 원찬이는 만날 적마다 나에게 담배를 권하였다. 이리하여 얼마 후에는 나도 제법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되었다. 내 돈으로 직접 담배를 사서 피우기까지 하였는데, 대개는 피죤이라는 10개들이 10전짜리 담배를 사서 피웠다. 이 담배는 상당히 고급에 속하는 것이다.
집에서 담배 생각이 나면 나는 변소에 가서 피웠다. 그러던 어느 날 역시 변소에 갔다 나오는데 어머니께서 부리나케 변소에 가보고 오시더니 담배 피우냐고 묻는 것이었다. 목사의 따님으로 태어나 담배를 피우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가르침을 받아오신 어머니인지라 당시의 어머니의 표정은 아주 당황해 하시는 모습이었다. 한참 있다가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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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시대 당시 담배인 macaw와 pig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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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아버지도 안 피우시는데 담배 피우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이제 끊을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때에 어머니는 하늘이 꺼지듯 한숨을 지으면서 낙담하셨는데 그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후 어머님이 아버님께 어떻게 말씀드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해서는 선친으로 부터 한 번도 꾸중들은 일이 없었다. 다만 마지막까지 나는 선친 앞에서 담배피우는 모습만은 보여 드리지 않았다.
그 후부터 나는 담배를 참으로 많이 피웠다. 특히 공부하러 서울로 올라와서 부터는 언제나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다. 대학예과 때에도 나에 대한 평은 언제나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친구라는 말이 내 귀에 들려올 정도로 담배 골초가 되어 있었다. 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담배를 아주 많이 피우며 하루에 두 갑 정도 피운다. 몸에 좋지 않은 줄 알면서도 줄이든가 끊을 수가 없다.
담배에 대해서는 선친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사람이 말로 절대로 안한 다든지 죽어도 안한다고 맹세하는 것은 소인배들이나 하는 말투이며 대개는 그것을 지키지 못한다. 그래서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일에 대해서도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맹세는 하지 않고 다만 40세가 되기까지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하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과연 선친께서는 40세에 들어서면서 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셨다. 나는 17세부터 담배를 피웠으므로 선친보다 23년이나 빠른 셈이 된다. 선친은 담배를 늦게 배우셨지만 나중에는 담배를 무척 즐기셨다. 돌아가실 때에도 의식을 잃기 전까지 담배를 피우셨다.
안경
3학년 당시 우리 교실은 동쪽으로 향해 있어 아침에는 햇빛이 들어오지만 오후에는 교실 안이 어두워서 칠판에 쓴 글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 눈은 아주 나빠졌고 시력이 뚝 떨어졌다. 시력이 1.2라고 자랑하였던 것이 0.2로 갑작스럽게 나빠진 것이다. 이런 시력 감퇴는 4학년이 되면서부터 더 많은 고통이 되기에 나는 선친께 여러 번 호소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선친과 함께 영화 구경을 가게 되었다. 모로코(Morocco)라는 영화였는데 게리 쿠퍼와 마르린 디트리히가 주연으로 나왔다. 여자가 자기방의 거울에 크게 글을 써놓고서 영영 떠나버리는 장면이 나왔는데 내가 그 글씨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선친께서 직접 목격 하시고는 다음날 독일제 안경(Zeiss Punktal)을 당장 맞춰 주었다.
이때 내 나이는 17세였고 그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의 눈에서는 안경이 떠나지 않고 있는데, 지금 나의 시력은 왼쪽이 0.1이고 오른쪽이 0.2이다. 다소 난시 기운이 있으나 크게 문제 되지는 않는다. 다만 40대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안경을 낀 채로 원시가 되었다. 그래서 밖에 나갈 때에는 근시 안경을 끼고 다니지만 책이나 신문을 보든가 글을 쓸 때에는 안경을 벗고서 보기도 한다. 원시 안경을 안 끼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을 보고 나의 친구들은 모두 부러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