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당 정권이 말기현상을 보이면서 국회의장 이기붕 씨를 중심으로 온갖 비리가 연출되었다. 이때 나는 갑자기 볼일 때문에 미국으로 떠나신 고려대학교 유진오 총장을 대신하여 국방대학원에 가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강의 제목은 한국의 정부조직이었는데 헌법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된다고 유 선생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는 그대로 강의를 하였다.
학생은 100명 정도인데 그 중에는 한직으로 밀려나 정부에 대하여 불만을 갖고 이 대학원에 배치된 장도영, 강문봉, 이한림, 송요찬 등 4명의 육군중장도 끼어 있었다. 아침 9시에 시작하여 쉬지 않고 11시 50분까지 강의를 계속하고는 학생들에게 질문이 있으면 하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뒷줄 끝에서 손이 올라가며 “육군 준장 강문봉 질문있습니다. 황 교수가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무엇 때문에 수색의 이 먼 곳까지 와서 3시간 동안이나 거짓말을 하였는지 대답하시요.”라고 했다.
순간 장내는 조용해졌다. 그 자리에 학생으로 와있던 문상익 검사의 표정도 강 장군의 무례해 보이는 질문에 놀라는 표정이었다. 내가 웃으면서 “대답하지요. 강 중장이 만일 중학교를 나왔다면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것입니다.”고 하자 장내는 순간 웃음바다로 변하면서 분위기는 많이 부드러워졌다.
“중학교에 가면 문리라는 과목을 가르치는데 가령 온도를 설명할 때면 선생님이 온도계를 가지고 나와 온도가 올라가면 수은주가 올라가고 온도가 내려가면 수은주가 내려간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때에 그 선생님이 가지고 나온 온도계는 고장이 난 것입니까, 안 난 것입니까?”
이때 강 중장이 “그거야 물론 고장이 안 난 것이겠지요” 라고 해서, 내가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의 정부조직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고장이 안 난 정부라는 전제하에 이렇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 것 뿐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강 중장은 옆의 별석에 앉아있던 박임항 소장을 가리키면서 “여보 원장, 황 교수 기분이 좋으니 강사료를 배로 드리시요.”라고 했다. 그런데 또 다른 손이 올라갔다.
“육군중장 송요찬 질문 있습니다. 국회의장이 장관을 임명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헌법상 국회의장은 장관을 임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국회의장이 장관을 임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당시 장관이 되고 싶은 사람이 먼저 서대문에 사는 이기붕의 집을 찾는다는 정계의 풍조를 빗대어서 한 말이었다.
나는 잠시 어떻게 대답할 가 망설이다가 “아니 진짜 왜 그런지 몰라서 물어보는 겁니까” 라고 반문하자 송 장군을 비롯해 모두가 웃으면서 강연을 마쳤다. 나는 이때에 국방대학원에서 했던 강의를 평생 잊을 수가 없다.
그 얼마 후에 김창용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강 중장은 체포되었고 군법회의에서 사형까지 선고되었으나 후에 박정희 대통령이 구명해 풀려나 최근까지 살아 있다가 얼마 전에 사망하였다. 그 밖의 육군 중장 3사람도 5.16 후에 빛을 보았다.
1960년 (44세) 자유당 정권이 그 말기현상을 보여주는 가운데 1960년을 맞았다. 대통령에 입후보하였던 조병옥 씨는 한때 김상협 교수와 나를 불러 여러 가지 협조를 부탁한 일이 있었으나 급병으로 미국에 가서 복부수술을 받고는 그냥 사망하고 말았다. 그런 이유로 대통령 입후보자는 현직에 있는 이승만 대통령 한 사람 밖에 없었다.
|
|
| ▲ 1960년 정부통령 선거 후보자 6명에 대한 신년특집기사(동아일보 1960. 1.1.) |
|
그러나 부통령에 입후보한 사람은 이기붕 씨와 현직 부통령인 장면 씨가 경합하게 되었다. 이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러나 90에 가까운 고령이었기 때문에 누가 부통령에 당선 되는가가 큰 관심사였다.
자연히 선거 분위기는 가열되었고 3월 15일에 치러진 정부통령선거는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부정선거였다. 국민의 반발은 대단하였다. 드디어 마산에서 엄청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김주열 학생을 경찰이 살해하여 바다에 버렸는데 나중에 물 위로 떠올라 김 군의 눈에 수류탄이 박힌 사진이 공개되자 국민들이 크게 자극받아 항거는 전국으로 확산되어 갔다.
|
|
| ▲ 1960년 정부통령 선거 벽보 (왼쪽부터 통일당 부통령 후보 김준연, 자유당 리승만, 리기붕, 민주당 조병옥, 장면 정부통령 후보) |
|
이리하여 4월 18일에는 고려대학생이 데모를 벌이 다가 이기붕 조직의 깡패들과 고려대학생이 충돌하였고 드디어 4월 19일에는 대대적인 학생과 시민들의 데모가 벌어지게 되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생들은 중앙청을 돌아서 효자동 쪽으로 전진하였다. 그들은 여학생들을 앞세웠으며 그 속에는 영채가 끼어 있었다. 반면에 영준은 경기고등학교의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가 학교에 가서 그를 끌어내어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는 억지로 집에 끌려 왔는데 저녁에 영채가 기세등등하게 집으로 돌아와 낮에 있었던 일을 알려주자 영준은 못내 섭섭해 하였다.
이날의 데모로 많은 청년이 죽었다. 나는 그날 시내에 나가 그 광경을 자세히 지켜보았고 결국 이 데모로 인해 자유당 정권은 무너지고 말았다. 이것이 소위 4.19 데모라는 것인데 이 사건의 역사적 의의에 관해서는 여기에서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에 대한 판정은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