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위를 받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신문들이 크게 보도하였다. 그러나 문교부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전북대학교 교수 최일운이라는 사람이요. 김선기 차관과는 고향이 같은 옥천 사람인데 김 차관으로부터 당신의 논문을 비판하라는 부탁을 받고 왔소. 그런데 내가 논문을 비판하려면 그 논문을 한번 보아야 하는데 나에게는 논문이 없으니 가지고 있는 여분이 있으면 좀 빌려 주시요.”
세상에 이처럼 무례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논문을 읽어 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비판할 터이니 그 논문을 빌려 달라고 하니, 어떻게 이처럼 몰상식하게 나오는 것인지 도대체 예의도 염치도 없는 뻔뻔한 위인이었다. 논문의 여분을 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하던 파렴치한 인간을 쫒아내고 난 후 나의 불쾌한 마음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다.
얼마 후에 나의 논문을 공격하는 최 군의 글이 신문에 실렸다. 물론 나도 그 신문에 반박문을 발표하였는데 이때 나는 그가 나를 찾아와서 한 말을 그대로 폭로하였다. 그 후 최는 다시는 나를 상대로 글을 쓰지 않았다. 그 후 약 20년이 지나 1977년에 나는 문교부장관이 되어 전북대학교를 순시한 일이 있었다. 심종섭 총장을 비롯하여 학처장이 모두 나를 맞았으나 그 때에 대학원장으로 있던 최는 숨어서 나타나지 않았다.
1959년(43세) 3월에 있은 졸업식에서도 나는 학위를 받지 못하였다. 역시 신문에서는 이 사실이 보도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문교부에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연말이 되자 경무대로 부터 이상한 제안이 왔다. 내년 3월 15일에 있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승만 대통령을 찬양하는 글을 써서 발표하면 3월 졸업식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제안을 한 사람은 이기붕 조직의 문화깡패로 이름이 알려진 임화수라는 사람이었다.
나는 깊이 생각한 끝에 사상계지에 장문의 글을 발표하였다. <한국 깡패의 사회심리적연구>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여기에서 나는 자유당 정부를 깡패 정부라고 규정지었다. 나치스 정권, 자유당 정권, 깡패두목 이정재 등은 사회심리학적으로 모두 같은 유형에 속한다고 단정한 것이다. 이런 글을 발표한 나에게 그들이 관용을 베풀리는 만무하여 결국 1960년 3월 졸업식에서도 박사학위를 받지 못하였다.
1960년(44세)의 소위 4.19데모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국무총리인 허정 씨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어 과도내각을 이끌어 나갔다. 그리고 문교부장관에는 대학원장 이병도 씨가 임명되었다. 그런데 이 선생이 장관이 되어 제1차로 결재한 것이 나에 대한 박사학위 수여 승인이었고 다음에 결재한 것이 몇 사람의 방해로 시일을 끌어오던 나에 대한 교수승진 발령이었다.
이 장관이 처음으로 등청하면서 비서에게 한 말이 김선기 차관 캐비넷에 들어 있는 황산덕 교수에 대한 박사학위 수여승인 신청서를 가지고 오라고 한 사실은 당시에 널리 알려진 일화였다. 그만큼 김 차관의 횡포에 대한 일반의 분격은 대단하였다.
이리하여 나는 5월 27일 자로 교수로 승진발령을 받았고 그리고 9월30일 중간 졸업식 때에 대한민국의 법학박사 제1호로 학위를 받게 되었다. 동시에 이 장관은 규정을 고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수여할 때에는 문교부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고 다만 사후에 보고만 하면 되는 것으로 하였다. 이리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학에서의 박사학위 수여는 승인사항이 아니라 보고사항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소위 4.19로 허정 내각이 들어서자 나의 신변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때까지 나는 문교부의 압력으로 어떠한 종류의 국가시험에도 시험위원으로 위촉되지 못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으므로 당장 그해 9월 14일부터 시행되는 고등고시 시험위원이 될 수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유기천 씨 혼자서 판을 치던 형법 시험위원에 끼게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