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는 동안에 5월 16일 미명에 박정희 소장에 의하여 인솔되는 일당의 군인들이 한강을 건너와 쿠테타를 일으켰다. 이것을 그들은 5.16 혁명이라고 불렀다. 민주당 정권이 너무나 무능하였기 때문에 올 것이 왔다라고 한 윤보선 대통령의 말에 공감하는 바가 없지도 않았으나 반면에 군대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으므로 5.16 사태에 대한 당시의 나의 생각은 철저하게 부정적이었다.
5월16일 직후의 일요일에 나는 등산옷을 챙겨 입고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이석제 중령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얼마 전에 나는 안해균 교수의 소개로 그와 함께 점심을 같이 한 일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이번 구테타 주체세력의 한사람이 되어 있었다.
“저 이 중령입니다. 헌법을 개정하는 문제 때문에 교수님을 꼭 뵙고 싶습니다.”
내가 ʻ그렇다면 한태연 교수를 찾아가야지요.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아마 그 분은 지금쯤 양지다방에 있을거요.ʼ 그리고는 나는 그 길로 산으로 향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한 교수는 군인들에 의해 초빙되어 개헌에 착수하게 되었고 그렇게 하여 제정된 국가재건 비상조치법이 공포되어 종전의 헌법의 기능은 정지되기에 이르렀다.
헌법 개정문제를 둘러싼 나와 한 교수와의 의견 대립은 나중에 국민투표의 문제에 까지 번져갔다. 이로 인하여 나는 6개월 동안의 옥고까지 치르게 된 것이지만 앞으로 있을 이러한 사연은 바로 이 중령과의 전화에서 발단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석제 씨나 한태연 씨와의 우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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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1년 9월 15일 강화도에서 열린 6·25 인천 상륙작전 기념행사에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가운데 사복 차림 선글 라스)과 육사 8기 동기생 등 5·16 주역들이 모였다. 이들은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주로 포진해 있었다. 앞줄 맨 오른쪽(빨간 밑줄)이 이석제 대령이다. [사진출처 : 운정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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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에 관한 이야기 한 토막> 자유당 때부터 나의 집에 전화 가설 신청을 해왔으나 야당교수라는 이유로 그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자택인 이 화장으로 이사를 하자 어느 날 전화국에서 연락이 왔다. 이화장에 있는 전화 중에서 하나를 떼어 주겠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3-0063 이라는 전화가 나에게 배당되었다. 1961년 말에 내가 미국에 가 있을 무렵 그 전화는 72-0360 으로 바뀌었다. 63이 36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몇년 후에 그것은 또 다시 762-3360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전화까지 놓아주지 않았던 자유당정권의 유치한 정책은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마침 신태환 교수의 법과대학 학장의 임기가 끝났으므로 윤일선 총장의 임석 하에 학장 선거가 있었다. 나는 선거운동이라는 것을 몰랐고 그저 나를 학장으로 추대해 주면 사양 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있을 뿐이었다. 반면에 유기천 씨는 공약까지 내세웠고 교수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맹렬한 선거운동을 폈다. 결과는 보나마나 뻔한 것이었다. 결국 예상대로 그가 승리 하였다. 신태환 씨는 박정희 장군에게 불려가 건설부 장관이 되었다.
그 후 나는 동국대학교의 김기수 교수 등과 밀려다니면서 매일 술을 마셨고 여름방학 동안에는 전북대학교에 가서 강의를 하기도 하였다.
방학이 되자 영준은 친구들과 어울려 부산에 놀러갔다가 깡패들에게 얻어맞아 큰 부상을 입고서 7월 29일에 서울로 돌아왔다. 턱뼈에 금이 가서 아래 위의 치아를 쇠줄로 잡아매어 입을 벌리지 못하게 하고 8월 29일이 될 때까지 한 달 동안 밥도 먹지 못하고 쥬스만 마시면서 치료하였다.
그리고 학생운동을 하던 황건이가 군대에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혁명재판소에서 9월 30일에 6년 징역의 선고를 받았다. 나중에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확인 단계에서 학생 신분이라는 이유로 형 집행이 취소되어 석방되었다. 그러나 소송법상 형집행정지는 있어도 형집행 취소는 없으므로 동생의 전과유무에 관해서는 나중에 실무자들 사이에 논의가 있었던 모양이다.
일반적인 사회분위기는 참으로 어수선하고 공포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나는 8월 11일자 동아일보에 글을 발표하였다(후술). 군인이 정치를 하면 썩기 쉽고 썩어도 철저히 썩는 것이며 로마와 고려의 무인 정치가 그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으므로 박 정권도 그들의 말대로 구악을 일소하고는 빨리 민정으로 이양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사람들은 이 글을 보고서 모두 나의 용기에 감탄하였다. 특히 미국 정부는 내가 군인의 손에 의해 다칠까봐 염려 했음인지 즉각적으로 나와 함석헌 씨를 미국으로 불렀다. 함옹도 군사정권을 반대하는 말을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9월 26일에는 그 동안에 써놓은 형법각론을 박영사에 주어 출판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여권을 신청하였다. 나로서는 처음 하는 신청이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여권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어느 날 나는 서울 시청 뒤에 있던 Korean Republic(후에 Korea Herald로 개명)이라는 영자 신문사에 놀러갔다. 사장은 이후락 씨였고 부사장이 김봉기 씨였는데 나는 김봉기 부사장을 만나러 간 것이다.
우리들은 사장실에 모여 앉아 환담을 하였고 그 자리에는 정보장교도 몇명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신청한 여권이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였다. 그랬더니 한 정보장교가 김봉기 씨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인가 하였다. 곧 이어 김봉기 씨는 나에게 물었다. “황 교수는 문인 박계주 씨와 어떤 사이입니까”라고 물었고 나는 그제서야 약간 눈치를 채고 말하였다. “박계주 씨와는 안면도 없고 같은 함경도 출신인 한태연교수와는 친분이 있는 줄로 알고 있소. 그런데 경상도 사람들은 황자와 한자에 대한 발음이 분명치 않아 법과대학의 항 교수라고 발음하니 이것 때문에 한교수를 황 교수로 잘못 짚은 것 아니요. 박계주 씨는 지금 무슨 사건으로 구속되어 있는 모양인데 나는 그 사람의 얼굴도 본 일이 없소이다.”라고 명확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그 정보장교들은 낭패 했다는 표정으로 서로 눈을 마주보았다. 그리고는 그 며칠 후에 기다리던 여권이 나왔다. 나보다도 미국의 국무성이 더 조급하게 기다렸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었다. 나의 출국이 늦은 것은 박계주 사건과 내가 어떤 관련이 있다고 군사 정부에서 잘못 짚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얼마 후에 미국에서 박정희 장군을 만났을 때에 이것을 확신할 수가 있었다.
여하튼 나는 평생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외국 나들이를 떠나게 되었고 이리하여 10월 26일에 Northwest Airline 프로펠러 4발기를 타고 김포공항을 떠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