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달랐던 나의 취미 (12회)

개미는 인류의 큰 적이다

나는 어려서 부터 글짓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보통학교 5학년 때에 나는 ʻ설ʼ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짓고 선생님의 칭찬을 받은 일이 있다. ʻ눈이 왔다는 소리에 잠이 깨어 밖으로 나가 보니ʼ 라고 시작되는 글이었는데, 이것을 가리켜 툭 튀어 나오는 형태의 글 짓는 방식이라고 평하면서 선생님이 직접 학생들 앞에서 이 글을 읽어준 적이 있었다.

고등 보통하교 1학년 때에도 나는 글을 썼다. 만수대에서 영감을 얻어 부지런히 도서관 출입을 하던 무렵인데 학교에서 나에게 원고 청탁을 해온 것이다. 일 년에 한 번씩 내는 교우지에 글을 쓰라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처음으로 발표한 글이 ʻ개미는 인류의 적이다.ʼ 라는 것이었다. 그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나는 산에서 개미를 보기만 하면 언제나 따라가서 죽여 버린다. 동물의 발달은 머리가 얼마만큼 앞으로 튀어 나왔는가에 달려 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인 것은 이처럼 머리가 튀어나와 그 각도가 90도나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개미가 당장에 사람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10만년 또는 100만년 후에는 개미가 도리어 지구의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누구도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먼 후손을 위하여 지금부터 자꾸만 개미를 죽이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 한다는 취지이다.’

맹렬한 소년

9.18의 영감 이후부터 나의 생활은 발동이 걸린 기계처럼 맹렬하게 앞으로 달려갔다. 부모님은 나의 이러한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하셨고 나는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혼자 결단하며 혼자 실천해 나갔다. 24시간 정신이 한 곳에 몰두해 있는 상태에서 그저 돌진해 나갔다.

아침에는 4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마당으로 나아가 냉수욕을 하였는데 겨울에는 마당에 있는 수도관을 장작불로 데워서 얼은 수도꼭지가 돌아가게 한 다음 물을 뽑아 물통에 담아 놓고 그리고는 옷을 벗고 그 물을 뒤집어썼다. 당시의 평양의 겨울은 아침 기온이 섭씨 영하 20도가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식구들이 모두 자고 있는데 나는 혼자 나가 이런 짓을 하였다. 냉수욕을 한 다음에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와 새벽길을 뛰기 시작하였다. 대동강 변으로 나아가 강을 따라 북으로 을밀대까지 올라가는 것인데 때로는 학교로 가서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여름이 되면 새벽에 을밀대에 올라가면 해 뜨는 광경을 볼 수가 있었는데 그것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고려 때의 시인 김황원의 ʻ대야동두점점산(大野東頭點點山)ʼ 이라는 시구가 실감이 나는 풍경이었다. 여기에서 간단한 체조를 하고 그리고 칠성문 쪽으로 돌아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거리는 왕복 4Km 정도였고 7시 이전에 집에 도착하였다. 그리고는 아침 식사를 하고 학교에 갔다.

▲ 일제시대의 평양 을밀대 / 보통학교 시절 을밀대를 자주 올랐다

학교에서는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의 평범한 학교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남다른 경지에 들어가 있었으므로 자연히 그들과 별로 어울려 다니지를 않았다. 오후 3시경 학교 수업이 끝나면 나는 집에 와서 책가방을 두고는 그 길로 교외로 나갔다. 10리나 15리가량 되는 부근의 산으로 올라가 산속에서 나는 식물이나 곤충 또는 광석 등을 관찰하였다. 때로는 큰 나무에 기어올라 밑을 내려다보면서 시나 음악의 세계에 들어가 나 홀로 황홀한 감상에 젖기도 하였다.

오묘한 대자연의 품에 안기는 것이 나에게는 한없이 즐거운 일이었다. 시도 몇 편 쓰다가 간단한 작곡도 몇 개 지어보기도 하였다. ʻ별만 있으면 지구는 필요 없다ʼ라는 가사를 만들고 그것에 맞추어 곡을 지어 혼자서 노래를 불러 보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그대로 인정도서관에 가서 수학과 물리, 화학책을 보다가 10시 경에 집으로 돌아와 또 잠이 들 때까지 문학작품을 읽었다. 소설이 재미가 있으면 밤을 새기도 하였다. 이런 것들이 14-16세 때의 나의 일상생활이었다. 내가 이렇게 생활하고 있는데 대하여 외삼촌 배선만은 그 당시 네 모습은 마치 성자를 보는 것 같았다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하여튼 당시의 나는 문자 그대로 맹렬 소년이었던 것이다.

15세에 나는 한문으로 된 책을 많이 읽었다. 가장 감명이 깊었던 책은 중국 상해의 상무인서관에서 발간한 삼국지연의였는데 이 책을 읽다가 관운장이 죽는 대목에 이르러서 너무나 슬퍼서 그 이상 계속해서 읽지를 못하였다. 이 책은 내가 20세 때에 한 번 더 읽었으나 이번에는 제갈공명이 죽는 대목에서 또 중단하였다. 26세에 고등시험을 치르기 위하여 동경에 갈 때도 이 책을 가지고 갔는데 비록 공명이 죽은 다음에는 재미가 없어 졌으나 끝까지 다 읽어 버렸다.

나는 또 상무인서관에서 발행한 수허지도 읽어 보았는데 백화문(중국의 회화체 언어 또는 그것으로 쓴 문학)이 많이 섞여 있어서 도무지 볼 수가 없었으므로 도중에 읽기를 포기하였다. 나는 또 당시(唐詩)를 즐겨 읽기도 하였는데 하루는 둥근달을 바라보며 한시의 경지를 말하자 듣고 계시던 선친께서 ʻ달을 알면 인생의 맛을 알게 되는데 너는 아직 이르다.ʼ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 때 선친의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