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는 동안에 어떤 회합에 나가 변영태 외무부장관을 만났다. 그분은 6.25 이전에는 고려대학교의 영문학 교수로 있었으므로 나와는 잘 아는 사이였다. 주로 화제에 오른 것은 UN군 사령관인 클라크장군의 선언에 관한 것이었다. 해방 직후에 맥아더 장군이 선언하여 일본 어선이 일정한 선을 넘어와서 고기잡이를 하지 못하도록 하였던 것이며 이 선을 보통 맥아더 라인이라고 불렀다. 이 선 때문에 우리나라 연해의 어족은 보호될 수 있었다. 그런데 클라크장군은 바로 이 맥아더 라인을 철폐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앞으로는 일본 어선이 우리의 연해에 와서 고기를 마구 잡아가게 될 것이므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이 일을 걱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책을 변 장관 에게 물었다. 그러나 신통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 그 분의 대답이었다. 나는 그 분에게 언젠가 페루 대통령의 선언을 본 일이 있는데 우리도 그런 선언을 하여 맥아더라인에 대체하면 좋을 것 같다며 그 선언의 취지와 내용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생각했음인지 그 분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얼마 후에 경무대에서 온 사람이라며 나를 찾았다. 페루 대통령의 선언문과 그 한글 번역문을 만들어서 보내라는 것이다. 나는 손 제독이 준 종이를 복사하고 그리고 번역하여 그 사람에게 주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자 전 세계를 깜작 놀라게 한 대한민국 대통령의 선언이 나왔다. 1952년 1월 18일 자로 고시된 대한민국 인접해안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의 선언이다.
총 4조로 되어 있었으며 제1조, 제2조 및 제4조는 내가 번역한 그대로이고 그리고 그때 내가 잘못 번역한 주권이라는 용어가 그대로 들어 있었다. 인접해양에 대해서는 연안 국가라 해서 주권을 행사할 수는 없고 다만 자원보호를 위하여 일정한 배타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권한을 주권이라고 잘못 번역하였던 것인데 이것이 그대로 대통령의 선언에 재현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주권이라는 용어 때문에 나중에 일본 정부의 맹렬한 항의를 받게 되었다. 이 선언에 의하여 그어진 선을 보통 이승만 라인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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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만 대통령의 인접해양주권선언 기사 [경향신문 1952. 1.21.] (청색박스 안이 관련기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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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은 그 후 13년 동안이나 유지되었고 이로 인한 우리나라의 어족보호는 금액으로 따질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것이었다. 내가 이 민족의 아들로 태어나 나라를 위하여 세운 공로가 다소나마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승만 대통령으로 하여금 이 선언을 하게끔 뒷받침을 해 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선언과 관련하여 내가 직접 관여한 것은 없었지만 변 장관을 만났을 때에 페루 대통령의 선언에 관한 말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 대통령의 선언도 나올 수 없었으리라는 점은 절대로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대통령 선언이 나오자 야당에서는 이를 맹렬히 반대하고 나섰다. 국제법상 용납되지도 않는 선언을 우리 대통령이 하여 국제적인 망신을 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반대자들을 설득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지금까지의 국제법상으로는 용납되지 않지만 그러나 대륙붕에 있는 막대한 자연자원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연안 국가의 배타적인 권한행사는 필요하며 그러한 점에서 우리 대통령의 선언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써서 나는 조선일보로 갔다. 원고의 내용을 다 보고 난 홍종인 선생은 나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자네, 정신이 있나. 자네는 우리 대통령의 선언의 배후 설명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전개될 일본과의 외교전쟁에 있어서 어찌 그 배후를 폭로하려고 하는가. 신문에 낼 수는 없어.”
홍 선생은 나의 고등보통학교 대 선배였으므로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나와 버렸다.
이 선언이 나오자 처음에는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서만 싸움이 벌어지다가 일본어선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던 호주가 비슷한 선언을 하였고 또 소련도 오호츠크해에 소위 몰로토프 라인을 그었다. 국제적인 분쟁으로 확대된 것이며 급기야는 전 세계로 그 분쟁은 번져갔다.
그리고 이러한 분쟁을 처리하기 위하여 여러 차례 국제회의가 개최되었고 이리하여 겨우 해양법의 초안이 만들어지게 되었지만, 그러나 이 해양법은 1987년 현재 아직 모든 나라의 비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동시에 우리나라의 원양어업은 그 동안에 엄청나게 발전하여 이러한 선언의 보호를 받던 입장에서 귀찮게 여기는 입장으로 바뀌었으며 따라서 해양법 제정에 관한 우리나라의 입장도 미묘하게 되었다, 내가 이 선언에 대하여 불을 지른 이후 35년이 지나갔다.
그 동안에 이 문제는 국제법상의 하나의 커다란 과제로 등장하여 전 세계의 많은 학자와 실무자들의 골치를 썩힐 정도가 된 것이다. 나는 사태가 이렇게까지 크게 번진데 대하여 아주 만족해하고 있다. 동시에 내가 이 문제에 대하여 처음으로 불을 질렀다는 점에서 커다란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 후 얼마 있다가 이승만 대통령은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영단을 내렸다. 이 조치에 대하여 미국은 크게 당황하였지만 우리 국민의 지지는 대단하였다. 영웅적인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에 항간에서는 내가 그러한 일을 대통령께 건의하였다는 말이 떠돌았다. 황 교수가 처음에는 해양주권선언을 건의하더니 이번에는 또 포로석방을 건의했다는 것이다. 물론 인접해양주권선언도 내가 직접 건의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료를 제공하였을 뿐이지만 포로 석방에 대해서는 진짜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1952년 12월 22일에 셋째 딸이 태어났다. 밤새도록 진통이 계속되다가 산파가 잠간 자리를 비운 사이에 태어났으므로 부득이 내가 그 애를 받아냈다. 산파가 해야 할 일을 내가 모두 하였으며 탯줄도 내 손으로 끊었다. 현신(후에 남채로 개명)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현신이 태어나자 대유의 죽음에 대하여 품고 있던 애통한 심정은 사라졌다. 체념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