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부인 논쟁 (45회)

1954년이 되었다(37세). 나는 우연한 기회에 문관산 작명소에 들렸다 여기에는 6.25이전에도 들렀던 일이 있었는데 그 때에 문 노인은 대유의 이름을 보더니 빨리 이름을 고쳐주지 않으면 급사한다고 말하였고 나는 기분이 나빠서 그냥 나온 일이 있었다. 미신 같은 작명술을 근거로 남의 귀한 자식을 죽는다고 하는 것이 기분 나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문 노인은 다시 찾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나는 대유의 이름을 내놓고 보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랬더니 그 노인은 이미 죽은 애를 가지고 왜 왔느냐 라고 일소에 붙이는 것이었다.

나는 비로소 이 노인이 대단한 분임을 인정하게 되어 우리 식구들의 이름을 모두 내놓고서 감정을 받았다. 그리고 문관산 노인이 지어주는 대로 따르기로 하였다. 경자는 일본식 이름이라 영채로 고쳤다. 다음에는 일을 영준으로 고쳤다. 일이라는 이름이 깊이가 없다고 한다. 세째로 무궁화는 유채로 고치는 것이 좋으나 그대로 두어도 큰 탈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네째로 현신은 남채로 고쳤다. 현신은 나면서부터 몸이 약해 늘 아픈 생활을 해 왔는데 이름 때문이라고 하였다. 나는 무궁화만을 그대로 두고 나머지 셋의 호적상의 이름을 모두 고쳤다.

그 때에 서울 지방법원의 한항진 판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날 집에 돌아오자 현신을 남채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는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날부터 남채는 잔병을 앓지 않았다. 그 효험은 30여년이 지나간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작명소가 하는 일을 비과학적이라고 비웃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의 일을 생각하면 그렇게 무시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 해의 11월 17일에 넷째 딸이 출생하였다. 나는 또 문관산 노인을 찾아가 옥채라는 이름을 받아가지고 왔는데 얼마 후 문 노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후에도 여러 손자들이 태어났는데 그때마다 나는 작명가를 찾아가 이름을 지어왔다. 친 손주인 윤상, 서림, 윤선 등은 모두 이렇게 해서 지은 이름이다.


▲ 동아일보는 자유부인 파동이라는 제목으로 1982년 1월 6일부터 1월23일까지 15회에 걸쳐 정비석 작가와의 논쟁을 소상하게 소개했다 [동아일보 1982. 1.23.]

1954년 2월 중순 서울대 문리과대학의 교수실에 갔더니 고승제, 윤세원 교수들이 나를 반기면서 하는 말이 지금 서울신문에는 정비석씨의 소설 <자유부인>이 연재되고 있는데, 이것은 일본의 신문소설 <무사시노 후진>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라고 흥분해서 말하였다.

소설의 내용은 대학교수의 부인과 교수의 제자가 이상한 관계를 맺는 것으로 일본 소설에서는 교수부인과 제자가 육체관계를 맺은 다음에 교수부인이 결국 자살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런데 정씨의 소설은 지금 그 관계를 맺을 직전의 단계에 까지 와있다고 하며 그러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대학 교수를 대단치 않게 보는 풍조가 있는데 정 씨의 소설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무슨 일이 날지 모르니 어떻게 해서든지 이 소설은 중단시켜야 한다면서 자기는 글 솜씨가 없어 안 되니 내가 우리 교수를 대표해서 정비석씨를 공박하는 글을 써 달리고 성화였다.

나는 서울신문의 구독자가 아니었고 또 연재소설 자유부인의 내용도 잘 알지 못하여 반박문을 쓰기가 어렵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 분들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집에 돌아가 곰곰히 생각한 끝에 한번 마음을 먹고는 ʻ자유부인 작가에게 드리는 글ʼ을 써서 2월 17일자로 대학신문에 발표하였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한때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소위 자유부인 논쟁은 시작되었다. 이 사건에 관해서는 손세일편 한국 논쟁사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특히 동아일보에서는 명대결 특집 제12회에서 자유부인 파동이라는 제목으로 1982년 1월 6일부터 1월23일까지 15회에 걸쳐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동아일보의 이 연재가 대체로 정확하게 기술된 것이라고 인정된다.

그러한 관계로 여기에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고, 윤 두 교수가 처음에 나에게 한 말의 내용은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것이 만일 공개되면 정비석씨의 명예에 손상이 가리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논쟁에 있어서 문인들은 대개 정 씨의 편을 드는 모양이지만 할 말을 다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러한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무궁화가 폐결핵에 걸렸다. 아내는 의사의 지시대로 정확하게 시간을 지켜가면서 매일 주사를 놓았다. 이리하여 1954년 2월 23일에 시작하여 5월 14일에 이르자 의사는 병의 완치를 선언하였다. 모든 부모가 자식에 대하여 이처럼 정성을 드린다면 못 낫는 병이 없겠다라고 말하면서 그 의사는 우리를 칭찬하였다. 이제부터는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무궁화는 집 앞에서 뛰어 놀다가 넘어져 앞니 2개를 부러뜨렸다. 잃을 뻔했던 생명을 되찾은 대신에 이빨 두개를 잃은 것이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궁화는 폐에 관해서는 아무런 말썽도 부리지 않고 있다. 그 때에 그 의사가 있던 병원 자리(소아병원)에 지금은 동방플라자라는 큰 빌딩이 들어섰다.

1954년 6월 24일자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교무과장직에 취임하였고 9월 18일자로 부교수의 발령을 받았다. 학장은 고병국 씨였으나 그 분은 학교 운영에는 별로 관심이 없이 술만 마시는 것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대학운영은 나와 학생과장 김증한 교수가 맡아 하였다. 나는 인사권과 재정권만을 가지고 있을 터이니 나머지 대학운영은 우리가 모두 맡아서 하라는 것이 고학장의 부탁이었다.

우리도 물론 매일과 같이 술을 마셨지만 그러나 학교 돈으로 마시지는 않았다. 술은 언제나 외상으로 마셨고 술값의 지불은 출판사(양문사)에서 월말에 해주었다. 내가 쓴 책이 잘 팔려 인세로 받을 돈이 많았으나 양문사에서는 그 인세 지불을 잘 해주지 않았다. 사업을 확장하는 데에 돈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술을 마시고 술값 청구서를 술집에서 가지고 가면 양문사에서는 아무소리 않고 지불하였다. 금액이 크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한태연 교수와 나는 거의 매일 술집에 갔다. 오전에는 강의를 하고 오후에는 연구실에서 책을 보든가 글을 썼으며 저녁에는 술집으로 가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삼일소연, 오일대연(三日小宴, 五日大宴)이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는 매일소연, 삼일대연(每日小宴, 三日大宴)이었다. 연말에 세어보니 1년 동안에 300회 이상을 한 교수와 나는 술자리를 함께하였다. 이 두 사람이 하도 같이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에게는 한 교수의 문안을 하고 한 교수에게는 나의 안부를 물을 정도였다. 이 모두가 출판사에서 인세지불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우리는 이런 생활을 2년간 계속하였다. 그동안 우리 두 사람은 강의도 열심히 하였지만 책도 많이 썼으며 술도 참으로 많이 마셨다. 아직 30대 젊은 나이였기 때문이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맹렬히 돌진한 것인데 나중에 회상해 보니 이 기간 동안에 우리 두 사람은 크게 성장하였고 또 학자로서의 기반도 굳히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당시를 가리켜 법과대학 황금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생활을 계속하는 동안에 나는 술살이 쪄서 보기 흉할 정도로 비대해 졌으므로(83Kg) 그런 생활을 더 계속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