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39세) 4월에 영준이 경기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때에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 승려는 물러가라는 폭탄선언을 하였다. 본래 우리나라의 승려는 결혼하지 않았는데 일본승려의 영향을 받아 결혼하는 승려가 증가하게 되었고 대통령은 이러한 승려(대처승)로 하여금 종단운영에서 손을 떼라고 선언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종단은 주로 대처승에 의해 운영되어 왔으므로 대통령의 이 선언은 불교종단으로서는 참으로 폭탄선언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부터 비구승과 대처승의 싸움은 본격적으로 벌어지게 되었다. 나는 부산에서 환도하면서부터 사간동에 있는 법륜사에 다니고 있었다. 특별한 연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저 동국대학 교수의 권고에 따라 그렇게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비구와 대처의 싸움이 벌어지자 법륜사는 바로 대처승의 본거지가 되었다. 대처승의 전략은 모두 이 절에서 꾸며졌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승려는 마땅히 비구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이때부터 나는 비구승의 본거지인 조계사로 옮겼다. 그리고 대처승이 갖고 있는 종권은 반드시 비구승 쪽으로 넘어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 점에서는 아내가 더 열렬하였다.
그러나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 생사존망의 싸움이 벌어지는 판국이 되었고 대처승 측은 사회적 활동능력이 있어서 모든 일에 기민하게 대처하였지만 반면에 비구승 측은 중구난방으로 떠들어 대기만 할뿐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였다. 대통령은 그저 담화만 발표해 놓고 구체적인 지시가 없는 상태에서 도리어 주무부서의 장인 이선근 문교장관은 대처승의 편을 들었으므로 일을 추진해 나가는 것은 거의 벽에 부딪힌 상태였다.
그런데 이러한 때를 당하여 아내 이선은 참으로 비상한 위력을 발휘하였다. 그것을 위력이라고 말해도 조금도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굉장한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는 경무대에 수시로 찾아가 대통령의 독촉 담화가 나오도록 교섭을 하였고 직접 문교부를 찾아가 이 장관을 설득시키기도 하였다. 그리고 무조건 할복이나 자폭밖에 할 줄 모르는 단순하고 순진한 비구승들을 자제시켜 가면서 동분서주 하였다.
주부로서 집안 살림을 해가면서 틈틈이 밖으로 나가 이런 활동을 하고 다닌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비구승 500명 가량이 문교부를 습격하기 위하여 집단으로 거리에 나선 것을 이선이가 지금의 한국일보사 앞에서 큰 길을 가로막고 설득하여 그 군중을 다시 뒤돌아가게 한 것은 장관이었다. 여자가 절에 와서 극성을 부린다고 깔보는 승려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 때의 비구승측은 거의 전적으로 이선의 손에서 움직였다.
드디어 결정적 순간이 찾아오자 이선은 지금의 정부종합청사 자리에 있던 한 콘세트 건물에 양측 승려를 다 모이게 하였다. 비구승 5명은 다 모였는데 대처승은 4명만 나왔고 대표 격인 대륜스님이 나오지 않았다. 이선은 사람들을 풀어 가까스레 대륜스님을 모셔 온 다음 드디어 종권이양문서에 서명토록 하였던 것이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스님들을 한데 모아 도장을 찍게 한다는 것이 여간 힘이 드는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을 지켜보시던 효봉 큰스님은 감탄하면서 이선을 재가제자로 삼으시고 손수 법명을 지어 주며 특별히 아껴 주셨다.
그 당시 비구승 측 대표는 효봉, 동산, 청담, 금오, 서운의 다섯 비구였는데 모두 이선을 귀여워해 주었다. 특히 효봉 스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스님은 본래 평양에서 판사로 계시다가 어느 날 오판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무고한 사람이 사형을 선고받고 집행된 후 나중에 진범이 잡히자 그 날로 집을 뛰쳐나와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결국 금강산 유점사에 가서 승려가 되었는데 그 때에 집에 남겨 놓고 온 어린 딸이 혹시 이선이가 아닌가하고 대단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고 한다.
이러한 관계로 스님은 3일 간이나 좌선을 하여 마음을 맑힌 끝에 대법선(大法船)이라는 불명을 지어서 이선에게 주었다. 이때 스님께서 지으신 시구는 지금 무궁화가 보관하고 있다. 여하튼 하루아침에 이선은 조계사의 공주가 된 것이다. 그러나 너무도 무리하게 종권을 넘겨 받는 과정에 대처승 측 대표인 대륜스님의 강한 반발을 사게 되었고 이로 인해 양측은 오랫동안 법정 싸움을 벌이다가 결국은 조계종과 태고종의 두 종파로 갈리게 되었다.
대법선이 종단 일로 동분서주 하는 동안 나는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일에 있는 힘을 다 기울이고 있었다. 처음에 내가 고려대학에서 법철학의 강좌를 맡았을 때에는 우선 급한 대로 켈젠의 순수법학을 소개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하였다. 경성제국대학에서 나에게 법철학을 강의해 주신 오다까 교수는 빈대학에서 3년간 켈젠의 지도를 받고 온 분이므로 나는 학생시절부터 순수법학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 학기 강의를 하고 나서는 켈젠의 법철학에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에는 근본규범에 관한 그의 이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여 수학의 측면에서 그의 이론을 비판해 보려고 시도하였다. 이리하여 근본규범의 수학적 비판이라는 논문을 6.25 이전에 발표 한 일도 있었다. 그 후 부산에 피난 가 있을 동안에는 1950년에 나온 코잉의 새로운 자연법론을 따라 활로를 찾아 보려고도 하였으나 그것은 켈젠보다 더 불만족스러워 나의 기대는 어긋나고 말았다.
드디어 나는 최신 자연과학에서 직접 그 길을 찾아보려고 하였다. 내가 유까와 교수의 양자역학서설을 열심히 공부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서울로 돌아온 후에 그때까지 공부한 것을 정리하여 책을 썼는데 이것이 11월 21일에 출간된 법철학 서설(양문사)이었으며 나는 그것을 <최신 자연과학의 발달이 법철학에 미친 영향>이라는 제목으로 11월 25일 박사학위 청구논문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제출하였다.
자연법론은 켈젠의 법실증주의에 의해서 비판하고 법실증주의는 양자력학으로 비판하자는 것이 이 논문의 취지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논문은 잘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문제가 되는 점만을 제시하였을 뿐 만족스러운 결론을 내지는 못하였다. 그 문제에 대한 나로서의 해결은 그 후 28년이 지나간 1983년에 나온 법철학 강의(4정판)에 이르러 비로소 성공을 보게 된다. 그런데 나의 박사학위 청구논문이 제출되자 그로부터 5년에 걸친 끊임없는 투쟁이 벌어지게 되며 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정리하여 기록하기로 한다.
1956년(40세) 2월24일 영채가 경기여자중학교를 졸업하고 4월 9일에 경기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5월23일에 나의 은사 오다까 교수가 페니실린 쇼크로 동경에서 돌아가셨다. 9월 6일에 미국 버클리에 계시는 켈젠으로부터 오다까 교수의 사망을 애도한다는 편지를 받았다. 나의 스승은 오다까(尾高)이고 오다까의 스승은 켈젠이었으므로 이런 편지를 받은 것이다. 그분은 나에게 Grand Son이란 말까지 쓰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