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지인 양덕(陽德)과 그 옆에 있는 맹산(孟山)에서
글자를 따와 내 이름을 산덕(山德)이라고 지으셨다...
경북 영덕에서 북으로 조금 올라가면 평해가 있는데 이곳은 고려시대 황씨 집안의 본거지였다. 지금도 그곳에는 커다란 송림이 있고 그 안에는 사당이 있어서 옛 조상의 비석이 모셔져 있다. 여기서 부터 황씨 집안의 본이 갈려 장남은 평해 황씨, 차남은 장수 황씨, 그리고 3남은 창원 황씨의 조상이 되었다. 동시에 또 수많은 분파가 갈려 나갔다.
우리 집안은 장수 계통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좀 더 세밀한 조사를 해야 될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우리 집안은 말자의 말자(막내)로 이어져 내려왔고 집안의 족보는 장자의 장자로 계승되면서 몇백년 동안 말자를 도외시 해왔기 때문에 막상 족보 문제가 나오면 선친이나 나는 우리계통이 어느 쪽인지 정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처음에 우리 집안은 제안 황씨로 호적에 올라 있었는데 그러면 우리는 창원 황씨 계통이 된다. 그러나 제안 황씨 족보에 보면 우리 집안은 올려 있지 않다. 제안은 황주 근처에 있는 작은 동네 이름으로 고려 시대에 황씨에게 제안후라는 칭호를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결혼할 때에 문제가 생기어 (후술) 선친은 우리 집안의 본을 해주로 바로 잡았다. 조선 초기 영의정 황희(장수 황씨)의 후손 중의 어떤 분이 해주로 이사하였고 여기서 황해도로 퍼져가면서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집안이 어느 계파에 속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선친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 집안은 임진왜란 당시에는 평안남도 강서에서 살고 있었는데 지금부터 200여년전 영조 때에 평양으로 옮겨와 성 밖에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평양사람들은 우리 집안을 오성 황씨(외성황씨)라고 불렀다. 내가 어렸을 때 까지만 해도 이렇게 불렀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은 매우 근검절약하며 가산을 불려 나갔는데, 별로 절제 있는 생활을 할 줄 모르던 당시의 평양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서 황 꼽째기라고 악담을 하기도 하였다. 지독한 구두쇠 황씨란 뜻이다. 절약해서 산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비꼬아서 표현한 것이다. 평양에서는 본래 황씨와 선우씨가 이름난 집안이었다.
평양으로 옮겨온 이후 우리 집안의 장자 계통은 곧 평남 강동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우리 집안은 5대에 걸쳐 말자로 이어지면서 계속 평양에서 살았다. 그리고 장자 계통의 사람들로 부터는 언제나 푸대접을 받았다. 우리 집안의 항렬은 식–환–규–진으로 이어지며, 나는 ʻ규ʼ자 항렬에 해당 된다. 그러므로 강동의 갑부 황규만은 나의 형에 해당되지만 그의 나이는 나의 할아버지 보다 더 위이며, 그래서인지 그가 길거리에서 나의 선친을 만나면 늘 얼굴을 돌려서 피해갔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에 실망한 선친께서는 그때부터 가족의 근원 같은 것에 대하여 일종의 반감을 품으셨다고 한다.
나중에 내가 태어났을 떄는 출생지인 양덕(陽德)과 그 옆에 있는 맹산(孟山)에서 글자를 따와 내 이름을 산덕(山德)이라고 지으셨다고 한다. 항렬을 아주 무시해 버리는 것으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선친은 내 동생의 이름도 이런 식으로 지으셨으며 나도 이 정신을 이어 받아 내 자식과 손자 이름을 항렬과는 관계없이 지어 왔다.
나의 할아버지도 역시 막내였다. 큰 할아버님 한분이 계셨는데, 그 역시 갑부였고 그 분의 저택은 나중에 일본 사람이 그 곳에다 평안남도 도청을 지을 정도로 굉장히 넓고 컸다고 한다. 1894년에 청일 전쟁이 일어나고 일본군에 의하여 평양이 점령되자 큰 할아버지 가족은 황해도 신계로, 그리고 할아버지는 누님이 계시는 평남 영유로 가족과 함께 피난을 가셨다. 전쟁이 끝나고 할아버지 가족은 다시 평양으로 돌아 왔으나 큰 할아버지 가족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돌아오지 않은 까닭을 나는 알 수 없으나 평소에 할아버지께서 그 일을 매우 불쾌하게 여기셨던 점으로 보아 형제간에 무슨 마찰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큰 할아버지 집안이 정착한 곳은 물이 나빠서 모두 토질병인 악성 디스토마에 걸려 차례로 사망하면서 결국 그 집안은 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형의 집안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하여 할아버지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셨고 형의 처사에 대한 감정이 좀처럼 풀리지 않으셨던 것 같았다.
우리 집안의 본관은 본래 제안으로 호적에 올라 있었다. 그런데 내가 황이선과 결혼하려고 하니, 그의 본관 역시 제안이었으며 그 당시의 동성동본은 결혼불가라는 관습법 때문에 혼인신고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장인 되시는 황학표 어른께서는 딸을 희생시키면 시켰지 본관을 고칠 수는 없다고 딱 잡아떼었으므로 할 수 없이 선친께서 족보를 들고 법원을 찾아가셨고 교섭 끝에 본관을 해주로 고치고 혼인신고를 할 수가 있었다.
평양에는 황씨가 많았고, 그들은 모두 제안 황씨였다. 그래서 우리 집안도 그런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혼인신고 관계로 족보를 뒤져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사실은 해주 황씨였던 것이다. 선친의 인도주의 면모가 잘 나타나 있는 처사이며 이를 나쁘다고 한 가족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이일 때문에 내처는 선친을 항상 하늘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여하튼 이때부터 우리 집안은 해주 황씨가 되었다.
평양에서 서쪽으로 보통강을 건너 4km가량에 서장대라고 불리는 구릉이 있고 그 너머에 야산이 있는데 그 산 기슭에 우리 집안의 선영이 있었다. 분묘가 2단으로 되어 있었으며 평양으로 옮겨 온 이후로는 우리 집안의 조상들이 모두 여기에 모셔져 있었다. 그런데 해방 이후에 공산당이 보통강의 수로를 변경하여 우리 선산 바로 앞으로 돌렸으므로 지금은 그 선산이 없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할아버지의 묘는 일본정부의 방침에 따라 선영에는 모시지 못하고, 평양 북쪽 아미산에 있는 공동묘지에 모셨다. 그리고 할머니의 묘를 어디다 모셨는지는 부산에 계시는 고모님이 직접 가서 지적하지 않는 한 알 길이 없다. 선친의 묘는 서울 근교 남양주군에 있는 모란 공원에 모셨지만 어머니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화장으로 모셨으므로 분묘가 없다. 다만 어머님의 모발 등을 재옥이가 보관하고 있다가 선친 장례때 함께 모셨다.
내처도 화장하였고 유골분의 일부분은 영준이가 워커 힐 앞 한강에 뿌렸고, 나머지는 웅과 인록이가 모시고 가서 낙산사 옆 해수관세음보살상 앞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 뿌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