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걱정으로 서울거리를 방황
이제 나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제대 후에 한동안 집에서 쉬며 직장을 구하러 여기저기 다녀보았지만, 일자리가 없었다. 몇 개월 동안 직장을 알아보고 나서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소위 일류대학 출신이 아닌 데다, 든든한 배경이나 돈 없이는 취업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하루는, 무료한 마음에 무작정 시내버스를 타고 광나루 쪽으로 향했다.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무언가 앞으로 살길을 구상하기 위해서였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컨트리클럽이라는 곳을 본 순간, 거기가 무엇을 하는 장소인지 궁금했다.
클럽 앞에서 하차하여 안내소 직원에게 “컨트리클럽에서는 무슨 운동을 하나요? 나도 할 수 있는 운동입니까?”라고 묻자, 안내소 직원이 나를 쳐다보며 “여기는 골프장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고 특별한 사람들만 가입하는데, 회원이 아니면 입장 자체가 불가능한 곳입니다.”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나중에야, 컨트리클럽은 당시 재벌들이나 고위 관리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여 드나드는 곳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사회 물정을 모르고 살았는지 그때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자! 이제 어디에서 어떤 직장생활을 해야 할까? 나날이 깊어가는 고민으로 잠도 편히 잘 수 없었다. 돈이 많든가, 배경이 든든하든가, 일류대학을 졸업했든가. 3가지를 모두 갖추지 못한 나는 갈 곳이 없었다.
그러나 이 조건들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공과대학 요업공학과 졸업생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 아닌가? 그 분야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교수님을 찾아가 취업부탁
뱁새가 황새걸음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잊고 더 좋은 직장을 찾아다니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그 당시 이름난 요업공학 관련 회사는 목포의 ‘행남사’, 인천의 ‘중앙도자기’, 부산의 ‘대한도기’, 인천의 ‘한국유리’, 목포의 ‘조선내화’ 정도에 불과했다.
목포는 내 고향이기 때문에 이리저리 잘 연결하면 아버지가 잘 아시는 ‘행남사’나 ‘조선내화’에 취업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적어도 내 장래를 길게 설계하려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놀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문을 두드려 본 곳이, 인천의 ‘한국유리’와 ‘중앙도자기’ 두 곳이었다.
먼저 모교의 교수님을 뵙기로 마음을 정리했다. 오랜만에 모교에 들러보니 캠퍼스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나, 교수님 연구실이 새로운 연구동으로 옮겨져 있었다. 사전 연락도 없이 L 교수님 방을 노크했다. 문을 열어준 교수님께서 금방 나를 알아보시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나는 속으로 ‘그래도 교수님이 최고구나!’ 생각하며 마주 앉아, 얼마 전에 제대하고 현재는 직장을 구하는 중이라고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젊은이들이 지금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고 하시며 취업이 가능한 회사 여러 군데를 추천해 보시겠다고 용기를 주셨다.
교수님은 그 자리에서 여러 군데에 연락하셨는데, 그중 인천의 ‘중앙도자기’와 부평에 있는 어떤 회사에도 알아보셨다. 몇 군데 전화하시는 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방은 중앙도자기에서 기술 총괄을 맡고 계시던 이 ○○ 기술상무님(작고)이라는 분이었다. 그는 대학 시절 도자기에 대한 과목을 담당한 적이 있어서 나도 그분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교수님은 이 ○○ 상무님에게 나에 대해 아주 좋게 말씀해 주셨다. 마침내 이 ○○상무가 ○○월 ○○일에 나를 회사로 찾아오라고 했다며 그 내용을 메모지에 적어 나한테 주셨다. 나는 그 날짜에 맞춰 그 회사에 찾아가서 오후 3~4시쯤에 이 상무님을 만났다. 작은 키에 검은 테 안경을 낀 이 상무님은 일단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아니, 그분이 나를 잘 대해 주었다기보다 내가 반갑게 인사드렸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나는 현재 직장을 구하는 중이며, 군 복무 중 참으로 좋은 경험을 했다는 것과 기회가 주어지면 열심히 일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분의 방에서 나왔다.
다시 군대에 갔으면 하는 생각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마음이 여러모로 착잡했다. 그 회사에서 근무하게 되면 다행이지만, 차일피일 늦어지거나 입사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미래에 대처할 것인지 구체적인 대안이 서질 않았다.
다시 군에 입대할 기회가 생긴다면 거기서라도 젊음을 되살리는 게 낫지 않을까? 대대장이 월남 파병을 권했을 때 왜 모른 척했을까? 이것저것 후회스러웠다. 서울로 돌아온 후, 이제나저제나 이 상무님의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부모님과 여러 사람에게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기도 했지만, 역시 확실한 직장을 얻는 것은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상무님이 직접 전화하셔서 “서류를 준비하여 대기하고 있어라.”고 하시며, 며칠 후에 있을 회사 경영진과의 면접에 대해 안내해 주셨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욕심 같아서는 서울에 있는 좀 더 좋은 직장을 얻고 싶었지만, 일단 ‘취직’이란 걸 하고 나서 그 후의 일들은 나중에 차츰차츰 설계해 나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면접을 보기로 한 날, 이 상무님이 요청한 서류들을 갖추어서 다시 인천행 시외버스를 탔다. 그 시절에는 인천에 가려면 시외버스와 기차를 이용해야 했다. 시외버스를 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중앙도자기’가 주안사거리에서 하차하여 약 10분 걸어가야 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