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중앙도자기에 취업 (12화...

내가 회사에 도착하여 이 상무님께 인사드리자, 바로 총무 상무실로 안내해 주셨다. 총무 상무님 인상은 선하고, 체격도 좋으시며 언행이 점잖았다. 총무 상무님은 회사 사주의 사위이고, 해병대 대위 출신이라고 했다. 총무 상무님과의 면접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장래 회사 전망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시면서, 비록 급여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열심히 하라는 부탁을 곁들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가 초급장교 출신인 점도 그분의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면접을 마치고 나니, 이미 회사에 취직된 기분이었고 행정 절차만 남은 상태였다. 다시 연구실로 안내되어 들어가니 이 상무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이 상무님은 연구실에서 진행 중인 업무, 다른 연구원들과의 업무 범위, 출퇴근 시간 등을 말씀해 주셨다. 그제야 내가 취직을 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이 상무님은 연구원들을 불러 나를 소개하셨는데 이게 웬일인가? 그곳에 이미 대학 동기 두 명, 선배가 세 분이나 재직 중이어서 마치 동문회 같은 기분이 들고 일단 마음이 편했다.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그곳보다 좀 더 좋은 회사에 입사하고 싶은 희망을 접어야 하는 아쉬움은 여전했지만, 어쨌든 내 전공을 살려 일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회사 통보를 받을 일만 남아있었다. 확정통보나 다름없었지만, 하루가 3일처럼 길게 느껴지는 시간을 기다림 속에서 보내야 했다.

열흘쯤 후에 드디어 통보를 받았다. ‘1967년 ○○월 ○○일에 첫 출근 하라’며 급료도 적혀있었다. 내가 군에서 제대하던 무렵의 월급보다는 약간 높았지만, 이름 있는 회사들의 초봉보다는 훨씬 적은 액수였다. 그러나 일단 내가 원하던 길로 출발은 하는 셈이었다.

화곡동으로 이사... 화곡동에서 인천으로 출퇴근

서울로 이사 온 우리 집은 이제 막 개발 중인 화곡동 벌판에 있었고, 외딴곳이었다. 시내버스도 없고 모든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시골동네였다. 화곡동에서 주안까지 출퇴근하려면 교통수단도 너무나 열악했다. 인천에 있는 직장으로 출근하기 위해서는 우리 집(김포공항 근처)에서 큰길까지 걸어서 15분, 거기서 김포-영등포 간 운행 시내버스를 타고, 다시 영등포역까지 10분 정도 걷고, 영등포역에서 인천 가는 열차로 또 갈아타고, 주안역에서 하차 후 약 20분 정도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회사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새벽 5시부터 서둘러야만 겨우 아침 8시 출근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 60년대 후반의 영등표역 / 인천의 중앙도자기에 출퇴근하기 위해 영등표역에서 기차를 탔다

너무나도 힘든 여정이 시작됐다. 새벽 5시에 일어나니 아침 식사도 거의 할 수가 없었다. 아침 식사를 거의 거르고 점심시간까지 기다리는 것은 아무리 젊은 나이라 도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약 7시간 동안 뱃속에서는 계속 ‘배고프다’는 신호가 울렸다. 그러다 보니 12시가 되기 무섭게 식당으로 달려가서 점심밥을 챙겼는데, 즐거우면서도 체면이 구겨지기도 하고, 내가 아무리 천천히 식사해도 다른 사람들의 식사시간보다는 항상 짧았기 때문에 혼자만 빨리 식사를 끝내는 것이 창피한 노릇이기도 했다. 사실 7시간씩이나 비어있던 뱃속을 밥 한 그릇으로 만족시킬 수가 있겠는가? 정말이지,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양이었기에 자연히 식사량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연구실의 ‘김창동’이라는 연구원도 나하고 비슷한 처지였다. 그 친구는 서울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 버스로 가서, 기차를 타고 주안역에서 하차 후, 걸어서 회사에 출근했다. 나보다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었지만, 점심때까지 배고픔에 허덕이는 것은 나하고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창동이와 내가 항상 나란히 앉아 미리 배식되는 밥 한 그릇을 밥상 밑에 눈치껏 숨겨 두었다가 적당히 서로 나눠 먹곤 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연구실에는 이미 같은 대학 같은 학과 선·후배들이 네 명 있었고, 나중에 한 명이 더 입사하여 나까지 여섯 명이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같은 학과 일 년 선배가 두 명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순수한 인천 사람이고 술을 아주 좋아했다. 경상남도 거창 출신의 다른 한 선배는 대학교를 수석 졸업한 사람이었다.

인천사람은 자기가 일 년 선배라는 점을 은근히 내세우는 스타일이라 말을 터놓고 지낼 처지가 아니었고, 다른 한 선배와는 말도 트고 편안한 관계로 지냈다. 동기 중 한 사람은 20대 초반에 결혼하여 어린아이까지 있었지만, 자식까지 낳은 아버지답지 않게 철없이 행동하여 한심스러울 때도 있었다. 또 한 친구는 회사 근처에서 혼자 하숙하며 출‧퇴근하고 있었다.

여공과 사귀는 대학 친구 이해 못해...

대학 시절에는 공부를 아주 잘한 친구였는데, 공장 아가씨와 사귀는 중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대학 출신 연구원이 공장 여공과 연애한다는 사실이 그 당시 나로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연애하는 본인은 좋겠지만, 동료 연구원인 나로서는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으로 취급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 불편했던 것이다. 더구나 최전방에서 초급장교로 부하 40여 명을 지휘했던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하찮은 생각 때문에 결국 그 친구하고는 가깝게 지낼 수가 없었다.

46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 친구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내 자존심은 여공과의 연애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정말 쓸모없는 자존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들은 소문에 의하면, 결국 그 친구는 그 여공과 결혼했다는데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나보다 훨씬 늦게 입사한 다른 친구는 인천 출생이었다. 속을 모두 들여다 볼 정도로 대학 시절에도 늘 가까이 지냈고 마음씨가 착한 사람이었다. 그 친구는 업무 중에 이런저런 농담도 잘하는 성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