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빈터를 보려고 머나먼 호주에서 9시간 점보비행기를 타고,
다시 기차로 목포까지 5시간을, 또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이 넘도록 달려왔단 말인가!
내가 태어난 전라남도 해남군 개곡면 가학리라는 곳은 지금도 전형적인 시골티를 좀처럼 벗지 못하고 있는 적막하고 조그만 시골 마을이다. 마을 뒤에는 국립 수목원으로 지정된 가학산이 늠름하게 자리 잡고 있다.
고향을 떠난 지 40여 년 만에 묻고 물어서 이제야 찾아갔었다. ‘영특한 동물들은 때가 되면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도 항상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호주에 이민 간 후에도, 한국 출장길에 꼭 한 번은 고향을 찾아보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내가 태어난 곳이 어디쯤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 출생지의 흔적을 알려면 김윤산 씨를 만나라고 하신 형님의 말씀에 따라 마을 길가에 자리 잡고 있는 가게에 들렀다. 가게를 지키던 할머니께 그 동네 사는 김윤산 씨의 집을 아시느냐고 물으니 할머니께서는 ‘그런 사람 모른다.’고 짧게 대답했고, 가게에 들른 다른 사람 역시 모른다고 했다. 그때 다른 노인 한 분이 한참 동안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확신하듯 말했다.
“저~기 저 골목길을 돌아서 한참 가다 보면 빨간 양철 지붕이 보일 것이요! 철장 문이 파랑색잉께…… 거그 가서 물어보랑께요 잉! 그 집이 맞을 꺼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얼른 발길을 돌려 그곳으로 갔다.
대문은 열려있었다. 마루에 걸터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손질하는 아주머니에게 같은 질문을 했으나 한참 동안 머리만 긁다가 대답하기를, “시어머니께서 금세 돌아오실 터이니, 쪼금 기달려보쇼 잉……?”
얼마 후, 허리가 많이 꼬부라진 할머니 한 분이 간신히 지팡이를 짚으며 들어오셨다.
“엄니…. 혹시 윤산이 할아버지 집이 어디쯤인지 아쇼?”
할머니는 모른다고 하시더니 이내 되묻는다.
“방금 누구라고 했능고?”
“윤산이 하나씨(할아버지) 말이요!”
아주머니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좀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드디어 알 기회가 온 듯하여 눈이 번쩍 떠졌다. 할머니는 다시 아주머니에게 “윤산이라구? 응? 윤산이는 병들어 아파서 꼼짝 못하재. 윤산이 찾어갈라믄…… 쩌어리 돌아가면 돼야.”라며 짚고 있던 지팡이를 겨우 들어 올려 한쪽을 가리켰다.
“쩌~기 말여, 이 질(길)로 돌아가면, 큰 초 집(초가집)이 나오는디, 대문이 아조 커…. 그 집이 윤산이네 집이여.”
나는 고맙다고 인사한 후, 큰 희망을 품고 발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안 뗀 것 같은데도 어느새 그 초가집이 다가오고 있었다. 틀림없이 걸어갔는데 뛰어간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내가 태어난 그곳을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리라…. 설레는 마음으로 대문을 살그머니 밀고, “여기가 김윤산 씨 댁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런디요, 누구쇼?” 집안에 있던 노인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이고, 잘 모르시겠지요. 저는 임일삼 씨 둘째 아들인 남웅이입니다.”
그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몸을 일으켰다.
“뭐? 일삼이 성님(형님)? 둘째? 워매, 그러면 이름이 뭐여?” 그의 목소리는 제법 커졌다.
“예. 저… 남웅이요!” 나는 그렇게 내 이름을 또 밝혔다.
“남웅이? 그래. 말은 들었째 잉? 근디 자네가 어쩐 일인가?” 그는 말문이 막히는 듯 더듬거렸는데 몸도 많이 불편해 보였다.
“아, 삼촌이세요? 목포 오는 길에 제가 태어난 곳이라도 좀 알고 가려고 일부러 해남에 들렀습니다.” 나는 반갑게 대답했다.
삼촌은 반가워하면서 어렵게 말을 이었다.
“그래, 잉…. 아이고, 이게 몇 년 만이여. 성님은 지금도 호주에 잘 계시제? 참, 그 성님은 그래도 목포로 나가시더니 아그들(아이들) 다 공부시키고…, 참 큰일 하시고…. 이제는 좋은 호주에 계신다재?”
삼촌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아버지를 칭찬하시다가 목 힘이 빠진 듯 한 목소리로 ”내가 몸이 무지하게 아파서…, 어디 딸삭(꼼짝) 못해! 좌우지간 앉어. 다들 밭에 가고 없어서…, 뭐 줄 것도 없고.”라며 몹시 아쉬워하셨다.
나는 다시 “삼촌! 제가 시간 여유가 없어서 그냥 안부만 여쭐게요. 여기에 꼭 들르고 싶었던 이유는 제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알고 싶어 서요….”
“어, 내가 알재…. 나 따라오면 돼야.” 삼촌은 힘주어 대답하시며 아픈 몸을 겨우 일으켜 앞장섰다.
얼마나 걸었을까? 불과 오십여 미터나 걸었을까?
“여기세, 여기! 다시 돌아서며 지팡이로 목적지를 가리키더니 “여그여, 여그!”
그런데 바로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빈터뿐이었다. 이 빈터를 보려고 머나먼 호주에서 9시간 점보비행기를 타고, 다시 기차로 목포까지 5시간을, 또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이 넘도록 달려왔단 말인가!
그토록 보고 싶어 오랜 세월 갈망해 온 그 땅은 그저 ‘텅 빈 땅’ 그 자체였다.
삼촌은 마치 본인이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인자 아무것도 없고, 빈 땅이여….” 라며 미안해하셨다.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갑자기 ｢황성 옛터｣ 옛 노래가 생각나며 황당했지만, 나는 즉시 “그래도 제가 태어난 곳을 찾았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삼촌! 고맙다.”라고 대답했다.
그 빈터에는 나무 한 그루와 잡초뿐이었다. 나는 다시 발길을 돌리며 말을 건넸다.
“삼촌, 제가 여기에서 오래 머물기는 어렵고 다시 목포로 가야 합니다. 얼마 안 되지만 약값이나 하세요.”
봉투를 드리고 돌아서는 내 발걸음은 가볍기도 하고, 무척 무겁기도 했다. 그러니까, 물론 한국행 출장을 겸해서 오고 싶었던 곳을 온 거지만, 거기 찾아가기까지 꼭 40년이 걸린 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