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에 온 힘을 쏟아
가장 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취업이었으므로, 구직광고란에 온 힘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내가 사는 캠프시 근처 킹스그로브(Kingsgrove)에 데라셸고등학교(De La Shale High School)에서 도자기 과목 담당 선생을 구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고등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가톨릭(Catholic)학교로서 신부님이 교장이고, 다른 신부님도 다수 있었지만, 특수 과목은 일반교사가 맡고 있었다. 나는 일반교사에 해당하는 셈이었다. 학생들은 엄선해서 선발했고, 학부모들이 상당한 수업료를 내며 자녀를 공부시키는 천주교 사립고등학교였다.
또 한 번의 덤벼 인생에 도전한 것이다. 나는 교사임용 신청서를 제출했다. 며칠 후 학교장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교장 선생님은 교과목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호주에 정착한 지 5년여가 되었으니 영어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어가는 시기였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내가 대학원에서 세라믹(Ceramic) 석사과정 공부하는 부분을 관심 있게 질문했다. 논문 주제가 도자기의 핵심인 점토에 관한 것이라 교사임용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런대로 면접이 잘 끝난 것 같았다. 면접 후 2주일 만에 가톨릭(Catholic)학교에서 교사임용 통보가 왔다.
나는 한국 D 전문대학의 교수생활로 착각했었는데, 가톨릭고등학교의 수업은 1975년 9월 학기로 결정했다.
수업대상은 3, 4학년 학생들이었다. 그곳의 고등학교 3, 4학년은 한국의 중학교 3년과 고등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나머지 5, 6학년은 한국의 고등학교 2, 3학년에 해당하며 대학교에 진학할 학생들이다. 하필 3, 4학년생들이었으니 대학교에 진학할 학생들도 있었지만, 4학년을 마치고 직업학교로 갈 학생들이 상당수였다.
고등학교 도예 선생으로 취업
내가 맡은 도예반(Ceramic Class)은 대학교 진학을 위한 필수과목은 아니고, 도자기(Pottery)에 대한 일반지식과 실습시간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공부하기 싫은 학생들이 선택과목으로 선택한 정도였다.
특히, 호주에서는 체벌 없는 학교 교육이 원칙이어서 말썽 많은 학생들을 다루는 일이 한국인 교사로서는 어려움이 많았다. 영어실력이 유창하지 못한 부분에서는 나 자신의 한계도 느껴야 했다. 불량학생들에게 체벌도 허용되던 한국의 교수생활과는 하늘과 땅만큼 달랐다. 교장 선생님께서, 수업 진행하면서 애로가 있으면 직접 말하라고 하셨지만 매사 상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보아하니 오직 체벌할 권한을 가진 분은 신부님들뿐이었다. 그럭저럭 어렵게 학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틈틈이 시간 내어 논문자료를 다시 수집하기 시작했다. 교사로 근무하는 중에도 틈만 나면 논문준비에 온 힘을 쏟았다.
희롱하는 학생에 매질을 하고 교장선생님으로부터 경고
2학기가 끝나던 무렵이었다. 칠판에다 글자를 쓰고 있는데 점토 한 덩어리가 날아와서 칠판에 철썩 붙었다. 뒤를 돌아보니 조롱하듯 학생들이 웃고 야단들이었다. 한 학생이 일어서더니 칠판에 점토 던진 아이를 가리켰다. 그리고 운동장으로 나가서 놀자고 했다. 나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점토를 던진 뒤 웃고 있는 놈을 낚아채 나도 모르게 매질을 해버렸다.
그리고 즉시 교장 선생님 방으로 가서 사실을 알렸다. 교장 선생님께서 교실에 들어오셔서 나한테 매를 맞고 엎드려있는 학생의 귀를 잡아끌고 가시더니 고해성사 실에 가둬버렸다. 그곳은 감옥 이었다. 거기에 한 번 들어가면 최소한 며칠 동안은 징역살이를 해야 되고 학부형의 간청이 있어야 풀어주는 곳이었다.
그러면서 교장 선생님이 나한테 “학생에게 매질을 하면 학교법에 위반되므로 앞으로는 절대로 매질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교사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며, 다시 새로운 길을 찾기로 결심했다.
무거운 마음이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은행에 신청한 주택자금 허가통지서를 받았다. 과거 직장에서의 융자신청이어서 사실상 은행융자를 받는 데에 별 장애가 없을 것으로 예상은 했었다. 그런 데다 구 목사는 나머지 20% 현금도 이자 부담 없이 천천히 갚으라고 했기 때문에 내가 살고 있던 집의 대여료만으로도 집 구매가 가능해 보였다.
집 이전과 관련한 서류 문제는 구 목사가 추천한 학생 변호사인 짐 심슨(Mr. Jim Simpson)이 담당했다.
호주에서 집을 팔고 사는 일은 한국처럼 부동산의 중개로 도장 찍는 그런 방식이 아니다. 다행히 판매자와 구매자의 변호사가 동일인이어서 빠른 속도로 진척되었다.
서울에서 호주이민 허가를 받은 부모님
그러는 동안에 서울에서는 부모님께 이민허가장이 나와서 신체검사, 신원조회 등의 수속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받았다. 서울에서 마땅한 수입이 없어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님이 호주에 오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았다. 특히 현진이를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맡기면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되는 셈이었다. 동시에 서울에서 가족들로부터 그다지 경제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환경인데, 호주에 오시면 형편이 좀 나아지는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나는 부모님께 이민 수속을 서두르시라고 했다.
1975년 가을쯤에 구 목사 집은 법적으로 우리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그 집이 내 소유가 되었다는 사실을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게 여기며 이사도 했다. 방은 3개였고 부엌도 컸다. 뒤 텃밭도 아주 넓었고 이웃집들도 친절했다. 무엇보다도 현진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원이 있었고 앞뒤로 마당이 있어서 좋았다. 당장 현진이를 보살필 수 있는 보모 아주머니만 구하면 그런대로 살림은 꾸려나갈 것 같았다.
데라셸 가톨릭고등학교 교사직은 다른 직장이 구해질 때까지 우선 다니기로 다시 마음을 바꿨다. 학생들이 떠들든 말든, 공부하든 말든, 분필을 던지든 말든, 견디고 보자는 배짱이 생겼다.
어떤 일이 있어도 토요일은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대학원 실험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 실험시간만큼은 누구한테도 뺏기지 않았다. 너무 늦는 날은 학교 경비들이 경고 조치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화울러 박사의 승인 편지를 보여주었다. 한 번은 경비원에게 내 사정을 잘 설명해 주면서 인삼차 한 상자를 선물했다. 효능이 탁월한 인삼차에 대해 열심히 듣고 있던 경비원의 얼굴이 지금도 생각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