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한인교회는 스트라스필드 연합교회 교회당으로 이사를 했다. 그전 교회당보다 크고 위치도 교통의 중심지에 있었다. 모두 만족해했다. 이제 한인교회 신도 수는 호주의 그 어느 교회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한인교회 찬양대 활동도 활발하여 성탄절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한인 사회는 물론 호주 교회에서도 놀랄 정도로 성스러운 예배를 올릴 수 있었다.
한인 목사 초빙이 확정되면, 호주 장로교단 총무인 변 목사가 호주 장로교단에서 초청하는 걸로 이민 절차를 밟아주기로 되어있었다. 여기저기서 여러 목사를 추천했지만, 그중 가장 많이 거론된 분은 월남에서 군목으로 재직했고, 월남 종전 후에도 계속 그곳에서 목회하고 계시다는 K 목사였다. 그분 역시 신분이 확실하지는 않았고 그런 분이 계시다는 소문만 교회 내에 퍼지고 있었다.
목사 초빙과 호주 연합교회 합류 문제로 갈등
내 생각에는, 한인 2세들의 장래도 고려하여, 외국에서 교육도 받고 교민사회에 대한 견식도 갖춘 미국의 교포 목사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대다수 교인의 여론이 월남에서 불법으로 정착하려는 사람들이 K 목사 쪽으로 기울고 있어서 다른 대안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한인교회는 목사 초빙과 호주 연합교회로의 합류 문제로 시끄러웠다. 그 두 문제의 중심에 변 목사의 드러나지 않는 움직임이 역력히 느껴졌다. Y 교수를 비롯한 이른바 월남 출신 교인들이 변 목사의 뜻에 매우 근접해 있어서 그들의 주장이 힘을 얻고 있었다.
교회 서기인 내가 처남을 한인교회 목사로 초빙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둥, 변 목사의 호주 연합교회 합류를 반대하는 주동자가 바로 ‘나’라는 둥 소문이 무성했다. 둘 다 전혀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니었지만, 처남을 목사로 초빙하는 건은 종결된 지 이미 몇 달이나 지났는데도 처남 건을 계속 들먹이고 있었다. 그러나 내막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식으로 교회를 바꾸려는 움직임을 좌시할 수만은 없는 일 아닌가.
교인 몇 명과 그 문제를 강력히 추진하던 변 목사는 더구나 호주 장로교단의 총무였다. 본인은 그런 신분으로 장로교단에 그대로 남아있으면서 굳이 한인교회만 호주 연합교회에 소속시키려는 태도가 불만스러웠다. 호주 장로교단을 해체하면서까지 호주 연합교회와 합병하려는 근본적인 이유를 한인 교인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한인 교인들 대부분이 장로교 출신으로, 호주 연합운동(장로교, 감리교, 회중교의 연합)의 본질을 알고 싶어 했다. 나는 변 목사를 비롯한 운영위원들에게, 그 문제는 호주 교회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결정하고, 한인교회 목사도 월남의 K 목사보다 좀 더 외국을 아는 분을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초빙하자고 제의했다. 그런데도 얼마 후에 K 목사가 자신의 이력서를 교회로 보내왔다. 서울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월남에 군목으로 파병되었고, 제대와 동시에 그곳에서 일반 사역 중인 것이 이력의 전부였다. K 목사 경력으로는 호주 교민사회를 잘 알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나는 그의 초빙을 반대했다.
이상한 소문과 모략
그 부분에 대해 역시 별의별 소문이 떠돌았다. 그 중 처남 건이 심심찮게 도마 위에 또 올랐다. 오해라고 해명해도 소용없었다. 억울했지만, 나는 교회를 위해서 참고 또 참았다. 한인교회 합병문제를 보류하자고 하니, 그것을 반대한다며 또 나를 모략하기 시작했다.
장로교단과 연합교단의 분위기를 지켜본 후에 결정하자는 내 주장에 교인 상당수가 동조했다. 사실 한인교회가 호주 장로교단에 소속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변 목사가 굳이 호주 연합교회당을 사용케 하려는 의도에는 무언가 정치적인 계산이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 목사를 호주 장로교회 분리주의자라며 맹비난하던 몬슨 목사님(Rev. Monson)한테서 연락이 왔다. 대외문제를 책임지고 있던 한인교회의 서기에게 정식으로 회의를 요청한 것이다. 몬슨 목사는 당시 호주 장로교단을 대표할 만큼 유명한 분이었다. 그분은 호주 전역을 순회하며 연합교회 운동의 부당성을 호소하셨다.
어느 날, 호주 장로교단 사무실에서 나는 몬슨 목사님과 다른 목사님 몇 분을 만났다. 그 목사님들은 한결같이 호주 장로교단의 연합교회 운동에 대한 부당성을 말했지만, 나는 그들의 설명을 완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변 목사의 주장이 과연 옳은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변 목사 자신은 장로교단을 총 지휘하는 총무 자리를 지키면서 왜 연합운동을 이끌어 가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내가 몬슨 목사 외 장로교의 다른 목사들과 비공식적인 만남을 가진 사실을 알아차린 변 목사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만날 때마다 별말씀은 없었지만, 그 문제를 무조건 반대하던 나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변 목사가 내 처남 목사 초빙 건에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었기에, 나도 그분에 대한 느낌이 예전 같지 않았다.
약해진 내 입지, 변조은 목사와의 불신
그러던 어느 날, 한인 목사 초빙문제와 호주 연합교회 가입 문제로 변 목사 주재 하에 교회운영진 회의가 열렸다. 목사 초빙 건은, 역시 월남의 K 목사 쪽이 압도적이었다. 변 목사의 능수능란한 회의 진행과 Y 교수를 비롯한 월남 출신 교인들의 목소리가 회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상황이라, 영어권 목사님을 초빙하자던 내 의견은 묵살되었다. 목사 초빙 문제로 운영진 회의를 할 때마다 Y 교수와 내 의견이 일치하기가 어려웠다. 내 오해인지는 몰라도, Y 교수는 항상 본인이 초일류이고 모든 면에서 자기 의견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Y 교수 의견을 변 목사도 찬성했고, 두 사람의 결정은 곧 교회 운영진의 결정이나 다름없었다.
갈수록 교회 내에서의 내 입지가 약해졌다. 호주 연합교회 소속 건 역시 Y 교수를 비롯한 월남 출신 교인들의 무조건적인 지지로 변 목사의 의견이 힘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나도 ‘호주 교단의 흐름을 좀 더 지켜본 후에 결정하자’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내 의견에는, 찬양대 지휘자인 미스터 김과 황 집사를 비롯하여 처음부터 한인교회 부흥을 위해 힘써온 많은 분들이 동조해 주었다.
나와 변 목사 사이에 점점 거리가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변 목사는 자신의 주장대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나는 ‘대단히 부끄러운 흐름이다’고 분개했지만, 분위기는 그쪽으로 거의 기울었다.
나는 한인교회가 무엇 때문에 뚜렷한 이유도 없이 호주 연합교회 운동에 휘말리고 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변 목사는 왜 한인교회가 이민자들의 특수교회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건지…. 호주 한인교회 교인들에게, 그 운동의 기본 취지도 모르면서 휩쓸리고 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그 이유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Y 교수를 포함한 소위 지식층 교인들까지도 이민자들을 위한 한인교회의 본질을 덮어버리고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교인들을 두 편으로 갈라놓는다는 사실이다. 한인교회 문제는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도 나는 여전히 토요일이면 대학원 논문 완성에 매진했다. 한인교회 일들을 생각하면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지만, 당장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 할지 난감했다. 어느 시점에서는 한인교회에서의 내 활동을 중단해야 하지 않을까도 고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