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교민사회에는 정체성 싸움이 있었다. 어떻게든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교민사회이다 보니, 자신이 한국에서 한 일에 대해 집착을 보였다. 비록 한국에서 일류대학교를 졸업했어도 그 사회에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데도 말이다. 백인들로부터 일종의 멸시와 천대를 받는 입장이다 보니, 교민사회에 자기과시 경향이 있어 가능한 한 휩쓸리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L 씨 집을 방문하면서 L 씨 모친과 우리 부모님은 서로 말동무가 되어가고 있었고, L 씨의 두 자녀는 자연스럽게 현진이와 어울렸다.
교민사회와 한인교회 내의 갈등
한인교회 내에서는 교포들끼리 다투기도 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끝없이 일어나며 커져갔다. 변 목사와 Y 교수를 비롯한 월남 출신 교인들이 한인교회를 호주 연합교회에 소속시키는 쪽으로 거의 방향을 잡아가고 있었다.
어느 일요일, 변 목사는 그 문제를 전체 회의 안건으로 올려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한인교회의 명칭은 ‘한인 연합교회’로 바뀌어버렸다. 약 40년 전의 일이라서 그 당시의 정확한 기록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때부터 한인 사회 최초로 두 개의 한인교회가 생겼다. 나를 포함한 상당수의 교인들은 그동안 한인교회가 호주 장로교단의 지원을 받아왔으므로 자연스럽게 한인장로교회로 이름을 바꾸고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모든 대외 문제를 책임지고 있던 나로서는 호주 장로교단에 이 사실을 통보하고, 한인교회의 이름을 한인 장로교회로 개칭함과 동시에 적당한 교회예배당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다. 호주 장로교단에서는 그 문제를 정식으로 거론하고 차츰 새 교회예배당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호주의 교회 구조상 지금까지 한인교회는 호주 장로교회 총회 산하 NSW주 장로교회에 소속되면서, 스트라스필드 지역 노회의 행정지도를 받아왔다. 따라서 비록 호주 연합교회 소속으로 발표했다 해도 한인교회는 여전히 호주 장로교단 소속이었다.
새로 초빙될 월남 K 목사 초청 이민수속 역시 호주 장로교단의 행정절차를 따르는 중이었다. 변 목사 및 Y 교수를 비롯한 동조 교인들이 호주 장로교단의 행정절차를 무시해버린 것에 대해서도 나는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그런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도 교회법을 따르라고 하는 것은 질서와 원칙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사례를 보여준 것이 아닌가. 교회에서는 원칙이 반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호주 장로교단 총무로서 교단 행정을 맡고 있던 변 목사가 그 사건의 주동자가 된 것이다. 그분도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어쨌든 한인교회가 두 개로 쪼개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K 목사 초빙문제도 호주 장로교단을 이용한 것이 틀림없었다.
증오와 반목의 예배
나는 한인교회 건과 K 목사 초청 건, 이 두 가지를 놓고 변 목사와 Y 교수를 동조한 교인들에게 분노했다. 한인 장로교회로 남아있자고 하는 교인들과 호주연합교회 소속으로 들어가자고 하는 교인들이 한 예배당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변 목사의 설교를 들어야 하는 괴상망측하고 뒤숭숭하기 그지없는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그것은 증오가 가득한 예배였으며, 예배시간 외에는 서로 외면해버리는 마치 전쟁터와도 같은 분위기였다.
나보고 ‘뭐 그렇게 잘나지도 못했으면서 왜 교회를 두 개로 쪼개 놓느냐’는 협박전화가 집으로 오기도 했다. 교회서기로 일하던 내가 마치 한인교회를 분열시킨 것으로 오해하고 공격적인 발언을 할 때면 말문이 막히기도 했다. 한편 ‘호주연합교회’ 소속으로 따라갈 것이지 왜 고집을 부리느냐’는 항변도 들려왔다. 교회를 분리시킨 책임이 나한테로 돌아오고 있었다. 편법을 써서 호주 연합교회로 소속시킨 사람들은 변 목사와 그의 추종자들인데, 도대체 무엇이 원칙이고 무엇이 반칙인지 알 수 없었다.
일요일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게 두려웠다. 누구와 무엇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수 있단 말인가? 교회에 출석하는 게 정말 싫었지만, 어떤 경우에도 교회예배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가족들의 의견과 한인 장로교회로 출발하자는 교인들의 희망 때문에 일요일 예배는 결석할 수가 없었다.
두 개의 교회로 갈라서는 과정에서, 어제는 친구였던 사람이 마치 얼음이 두 조각나듯 오늘은 적이 되어버렸다. 예배가 끝난 후, 교인끼리 서로 외면해버리는 교회는 이미 교회라고 할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교회문제를 수습하기 위해 나서
그때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한인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도, 서로 사랑하라는 그분의 가르침을 들으러 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저 불법체류자들의 상호 정보교환 장소이며, 교회라는 감투를 쓰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폼 좀 내보고 싶은 장터에 불과했다. 변 목사의 이중적인 태도가 낳은 작품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음이 정리되었다. 아마도 그때가 1977년 후반기였던 걸로 기억된다. 그때부터 나는 교회문제를 수습해야 했다.
그 첫 번째 방법은, 호주 장로교단에 속한 다른 교회 건물을 물색하는 일이었다. 있던 교회는 호주 연합교단에 속해있어 우리에게 다른 교회가 있어야만 했다. 그런 사정을 알고 있던 호주 장로교회 총회장(Rev, Monson) 이하 교단 목사님들과 몇 차례 연석회의를 했다. 호주 장로교단의 최종 결정에 따라 한인교회를 한인 장로교회로 개칭하고, 임시 목사로는 시드니 노회 소속의 클레멘츠(Rev, Clements) 목사를 위촉했다. 그분은 변호사 출신으로 내가 다닌 대학교 근처(Randwick)의 장로교회 담임목사였다.
교회는 시드니 노회 소속 건물로 지정되었다. 바로 시드니 중앙역 옆 골목, 그러니까, 내가 처음 호주에 왔을 때 묵었던 구란다 게스트 하우스(Guranda Guest House)와 나란히 붙어있었다. 아주 오래된 건물이고, 교회 분위기는 매우 엄숙하며 정리가 잘되어 있었다. 임시 담임목사로 부임한 클레멘츠 목사와 교회 이사 일정을 잡았다. 변 목사, K 목사, Y 교수를 비롯한 동조 교인들은 그곳에 남아 한인 연합교회를 운영했고, 그에 반대하는 교인들만 옮겼으므로 한인 교포사회에서는 최초로 한인 장로교회와 한인 연합교회가 공식적인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한인연합교회에서 한인장로교회로 분가
한인 장로교회는 처음 출발했던 한인교회의 뒤를 잇게 되었다. 한인교회 설립 이후의 모든 서류는 한인 장로교회로 넘어갔다. 교회 서기인 내가 할 일은 크게 두 가지였다. 클레멘츠 목사의 일요일 설교문을 미리 받아 번역 및 통역하는 일과 시드니 노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여 한인 장로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하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논문을 열심히 완성하여 학교에 제출하는 일과 연구소 프로젝트를 잘 수행하는 일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논문에 필요한 자료들을 연구소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다. 논문이 빠른 속도로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한인 장로교회 교인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 호주 장로교단 측에서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클레멘츠 목사는 한국인들에 대한 관심이 유난히 높았다.
불법체류 교인들의 어려움을 들어주시기도 하고, 변호사 출신답게 주변의 변호사 친구들과 불법체류자들의 신상 문제도 의논하셨다. 교회문제가 정리된 후에는 교인들 간의 교류가 활발해졌고, 가정 내에서도 교회문제로 인한 의견 충돌이 없어졌다. 교회가 시끄러우면 만사가 어지럽다는 것도 알게 된 산교육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