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이는 유치원 생활에 제법 활동적이었다.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와서 놀기도 하고 가끔 앞마당에서 크리켓(Cricket)도 했다. 그러나 혼자 지내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아무래도 동생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은 매일 집에만 계시기가 어려운데, 이국에서 달리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교회가 난리를 겪는 과정에서 친하게 지내던 교인들과 생이별을 하는 수난도 겪었다.
다행히 뒤 텃밭을 개간하여 채소는 수급이 되었고, 닭장을 만들어서 닭을 길러 달걀까지도 조달이 되었다. 교회가 두 동강 나지만 않았으면 가까운 교인들에게 채소를 나누어줄 수 있었는데, 그것조차 어렵게 되었다고 어머니는 아쉬워하셨다. 채소와 달걀을 싸들고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시던 어머니는 교회가 둘로 쪼개진 것에 대해 불만이 많으셨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들었던 교인들을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것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교회가 분열하며 친하게 지내던 교인들과도 이별
한인 장로교회는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옛말처럼 연합교회에 가기로 했던 교인들이 다시 이쪽으로 합류하는 이상한 일도 벌어졌다. 한인 장로교회 교인 대부분이 한인 연합교회 근처에 살고 있었고, 시드니 한복판에 있는 우리 교회로 오려면 상당한 거리를 자동차로 와야 했었다. 시내에 있어서, 자동차 주차문제도 가끔 거론되곤 했다. 나는 이런 문제들을 클렌멘츠 목사님과 협의한 끝에, 좀 더 크고 위치도 편리한 곳에 새 예배당을 얻기로 했다.
옮기기로 한 곳은 피터샴(Petersham)이었다. 그곳은 한인 연합교회가 있는 스트라스 필드의 옆 동네나 다름없었다. 우리 예배당으로 허가받은 교회는 피터샴 장로교회였다. 위치도 좋고 건물 분위기가 전보다 엄숙하고 잘 정돈된 모습이었다. 교회 운영진들은 그곳으로 옮기는 것을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교인 좌석 수도 2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넓어서 행사 시에도 문제가 없을 것 같고, 교회 바로 옆에 관사도 있어서 담임목사를 초빙하기에도 좋은 조건이었다.
한인 장로교회 교인들 대부분은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었고, 불법체류자들에게 사면령이 내려져서 이제는 떳떳한 신분으로 바뀐 사람들도 있었다. 그 외 주 호주 한국주재원들, 한국-호주 간 무역 차 임시 방문자들, 제3국(브라질, 태국 등)에서 관광비자로 입국하여 영주권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곳으로 이사했기 때문에 시드니 노회에서 자연 우리 교회의 노회 소속도 달라지면서 얼우드(Earwood) 장로교회 목사님이 임시 담임목사로 변경되었다. 일요일 설교도 클레멘츠 목사에서 얼우드 교회 목사(이름 기억 안 남)로 바뀌었기 때문에 나는 그분의 설교문을 미리 받아 번역과 통역을 했고, 찬양대 지휘는 미스터 김이 맡아 활동을 넓혀갔다.
새 예배당으로 옮긴 후, 성탄절에는 호주 교인들을 대거 초청하여 음악 예배를 드렸는데, 너무나 많은 호주인들과 장로교단 관계자들, 한국인들이 참석하는 바람에 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대성황을 이룬 적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부지런히 석사학위 논문을 완성하여 1976년 2학기 초에 제출했다. 이제는 판결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교회 일에 전념할 수 있었다.
석사논문의 통과
논문을 제출한 지 3개월쯤 지난 어느 날, 매커트니 교수님께서 그의 방으로 나를 불렀다. ‘나는 올 것이 왔구나!’ 담담한 심정으로 교수님의 방문을 두드렸다. 교수님은 나를 보시자마자 한마디로 “Gone through!”라고 하셨다. 순간 내 귀를 의심하면서도 논문이 통과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재차 확인하는 차원에서 교수님께 “Parden me(죄송합니다).”라고 대답했더니, 교수님께서는 논문 통과를 알리는 본부의 편지를 내게 주셨다.
아! 내게 큰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총명하지도 못한 두뇌에다 온갖 고통이 수반되었지만, 그럭저럭 견디며 억지로 만들어 제출한 석사학위 논문이었기에 그 결과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대사건이었다. 하늘로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그 순간에 느낀 것이 ‘덤비면 되는구나!’였다. 나는 교수님의 가르침과 학위 통과를 알려주신 것에 감사드린 다음 화울러 교수님의 방으로 갔다. 화울러 교수님께서는 그동안의 내 노력을 칭찬하시며 본인은 곧 은퇴한다고 하셨다.
나는 아내한테 전화를 걸어 논문 통과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 사람의 대답은 또 간단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고, 우리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고. 도대체 상식 밖의 대답이었다. 온갖 노력과 고통 끝에 맞은 결과를 두고 ‘수고했다’는 말 대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라고 하니 뭐라고 답해야 할지 어이가 없었다. 자칫 내가 내 자랑하는 꼴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힘들었던 내색을 안 할 수도 없어 기분이 이상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그분께서 행하시는 일에 조금의 의심도 없는 그 사람의 신앙심을 알기에 다른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도 언제나 그럴 수 있을지 늘 걱정스러운 부분이었다.
석사논문 통과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 이제는 한 시름 놓았다.”라며 기뻐하신 걸로 논문 관련 대화는 끝났다.
그리고 연구소의 퀵 박사에게도 결과를 알려주었다. 석사학위 소유자와 비소유자 간의 급여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퀵 박사는 대학본부로부터 공식 문서를 받아오면 상부에 연봉 조정을 건의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많은 것들이 마무리되었고, 큰 걱정은 지나간 듯했다.
담임목사 초청
이제 한인 장로교회의 일, 연구소 프로젝트를 잘 수행하는 일, 토요일에 대학원 대신 가까운 교인들과 교외로 놀러 나가는 일 등으로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과거처럼 교인 수가 많아지다 보니 한국에서 ○○ 직분을 가졌었다는 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분들이 좋은 뜻을 가지고 교회 운영에 관여하는 일이 점차 많아졌다.
교인 수가 늘고 교회 재정이 점점 커짐에 따라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역시 담임목사를 초청하는 일이었다. 여기저기서 훌륭하다는 목사들을 추천해 주었지만, 두 번 실수는 하지 않겠으며, 이번에야말로 이민자 교인들을 잘 이끌어갈 훌륭한 목사를 초빙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한인 목사 초빙에 대해 여러 의견이 제시되었다. 그 중, 외국의 한인 장로교회이니만큼 우리의 후세 교육을 위해서라도 영어권에서 공부 중이고 경험 많은 분을 초빙하자는 의견과 굳건한 신앙심을 길러줄 목사를 한국에서 청빙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던 중 찬양대 지휘자인 미스터 김의 추천이 들어왔다.
부산지역 고신파 장로교단의 H 목사인데, 현재 부산에 있는 모 교회에서 시무하시고 계시다며 소개했다. 고신파 장로교는 보수 교단 중에서도 보수적인 목사라는 것이다. 미스터 김의 부친도 같은 고신파 교단의 목사였던 터라, H 목사 청빙 건이 유력하게 거론되었다. 여러 차례 의논 끝에 H 목사를 청빙하기로 결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