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제0장 [프롤로그]

확고한 사생관을 가질 때 인생은 영원할 수가...
 
일반적으로 자신의 생애를 기술한 것을 자서전(Autobiography)이라고 한다. 저자가 자기 자신보다는 그가 살아온 환경이나 시대에 보다 더 중점을 두었을 때에는 “회고록”이라고 한다. 괴테의 “시와 진실” 같이 창작적 요소가 가해져서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자서전도 있다. 나는 처칠, 맥아더, 슈바이처와 같이 영웅적인 회고록을 쓰는 것도 아니고, 톨스토이나 괴테같이 문학적 가치가 있는 창작물을 집필하는 것도 아니다.

이 '영원한 삶을 위하여'는 나의 내면적인 일생의 기록을 적나라하게 에세이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순간적인 인생살이가 아니라 영원한 삶을 위해 대로(大路)를 걷는 나의 체험적 인생관을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고자 하는 데 있다. 사나이 태어나서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이 한 목숨 조국과 인류를 위해 초개같이 버리겠다는 마음을 가질 때 영원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개인의 이익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조국수호와 세계평화를 위한 확고한 사생관을 가질 때 인생은 영원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세대는 격동의 세월이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발악하던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태어나서 6․25 한국전쟁을 겪었다. 조국상잔의 비극 속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정의의 전쟁을 체험하면서 자랐던 것이다. 일당독재에 항거하기 위한 4․19 학생혁명의 붉은 피 대열 속에서 배웠다. 조국근대화를 위한 5․16 군사정변의 뒤안길에서 사관학교에 들어갔다.
 
10․26과 12․12사태를 거쳐 6․10항쟁에 이르면서 민주화의 꽃을 피웠다. IT산업을 주도하면서 정보화시대를 선도했다. 격동의 세월 속에서도 5,000년 역사를 수십 년 만에 원초적인 사회에서 고도의 문명사회로 승화시킨 세대였다. 후진국이라는 불명예를 씻어내고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이룩한 영광스러운 선진조국의 주역이 된 시대에 살았던 것이다.

나는 낙동강변 두메산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누구나 할 것 없이 가난에 찌들었던 시대였다.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벗겨 먹고 살던 시절이었지만 향학열에 불탄 소년은 대구로 유학을 했다. 일찍부터 부모를 떠나 홀로서기를 배워 강인한 자립심을 가지고 면학에 열중했다. 학교재단과 로터리클럽, 라이온스클럽 등에서 받은 장학금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하더라도 누구나 타고난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조국의 수혜를 최대로 받았던 것이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멸사봉공의 길을 택했다.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던 것이다. 군인의 길은 자신과 개인의 이익에만 매달리는 안일한 길보다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험난한 정의의 길을 걷는 것이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하여 헌신하고 희생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생활 속에서 영원한 삶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불가피하게 단절된 부분도 있지만 숨을 거두는 그날까지 나의 기록은 계속될 것이다. 이 책은 내가 쓴 일기를 줄거리로 해서 전개되었다. 틈틈이 기록해 두었던 메모와 산문 그리고 앨범과 USB에 보관되어 있던 사진자료들이 지나간 추억을 일깨워 주었다.

이 글은 크게 3개의 시퀀스로 구성되었다. 1시퀀스에서는 청운의 꿈을 기술했다. 덕실골 두메산골에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국가와 민족 그리고 인류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객지로 나갔다. 불굴의 의지로 면학에 충일했고 “남을 사랑하고 스스로 속이지 말자”라는 대륜의 혼을 좌우명으로 삼으면서 화랑대에 들어갔다. 인생의 용광로에서 청운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담금질을 하였던 것이다.

2시퀀스에서는 조국의 간성으로서 위관, 영관, 장군시절에 있었던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기술했다. 설악산지역에서 무장공비를 찾아 누비던 시절, 십자성 하늘 아래 월남 땅 정글 속에서 베트콩과 생사의 분수령을 넘나들던 시절, 청와대 국방비서관과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참모장 그리고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국가전략과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시절이었다.

3시퀀스에서는 2모작 인생을 기술하였다. 전역을 하고 배우면서 가르쳤다. 숨을 거둘 때까지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만학을 통하여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외교 안보현장에서 겪었던 주옥같은 체험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기 위하여 강단에 섰다. 젊은 학생들 속에서 심신이 회춘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미래의 역군양성에 혼신을 다했던 것이다.

나의 일생은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不狂不及)”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하는 자세로 업무에 임하고, 충성심과 사명감에 찬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국가와 민족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하여 헌신하고자 했다. 또한 마지막 남은 열정을 후배양성을 위해 쏟으면서 후회 없는 인생행로를 지내왔다고 회고한다.

이 글이 나올 때까지 자료수집과 교정을 맡아준 아내 김경아, 아들 차정석, 며느리 박복선, 딸 차수진, 사위 김주혁에게 고맙게 생각하며, 이 졸저가 불멸의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에게 청운의 향도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먼저 산화한 영령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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