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선으로 (28화)

한국군 정보학교 베트남어 교육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월남파병을 위해 춘천 오옴리로 갔다. 오옴리는 월남파병을 위해 모든 부대에서 차출된 장병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처음 전쟁터로 가는 장병들을 위하여 기초적인 월남문화와 현지사정을 교육시키는 곳이 오옴리였다.

춘천 오옴리에 도착하니 주월 민사심리전대 소대장으로 명령이 나있었다. 1968년 12월 9일부로 되어있는 국방부 명령 제836호였다. 월남어를 공부했기 때문에 월남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민사심리전 부대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소정의 절차를 밝은 후 오옴리 교육대에서 춘천으로 나와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항에는 파월장병들을 환송하기 위한 가족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군악대의 연주 속에 파월부대 군가가 소리높이 울려퍼지고, “무운장군 파월장병”이라는 애드벌룬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 월남군 베트남어학교 고급반 졸업기념(뒷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필자)

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임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명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한결 같은 겨레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라

자유통일 위해서 길러온 힘이기에
조국의 이름으로 어딘들 못 가리까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남북으로 갈리인 땅 월남의 하늘아래
화랑도의 높은 기상 우리들이 보여주자

교체되는 맹호부대와 백마부대 장병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한 군가이었다. 우리나라 역사상 2개 전투사단병력 이상이 해외에 나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수도사단인 맹호부대가 먼저 파병이 되었고 그 뒤를 이어 제9사단인 백마부대가 월남으로 갔다. 맹호부대의 군가가 끝나자마자 나도 질소냐 하면서 백마부대의 군가가 푸른 파도를 갈랐다.

아느냐 그 이름 무적의 사나이
세운공도 찬란한 백마고지 용사들
정의의 십자군 깃발을 높이 들고
백마가 가는 곳엔 정의가 있다.
달려간다 백마는 월남 땅으로
이기고 돌아오라 대한의 용사

아느냐 그 이름 역전의 사나이
그 이름도 찬란한 백마고지 용사들
자유의 십자군 깃발을 높이 들고
백마가 가는 곳엔 자유가 있다.
달려간다 백마는 월남 땅으로
이기고 돌아오라 대한의 용사

선창가에서 이별이 아쉬워 부둥켜안고 떨어질 줄 모르는 연인들! 엄마의 등에 업혀 잘 다녀오라고 아빠를 부르며 흔드는 고사리손!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라고 두손 모아 빌고 있는 어머니의 기도! 아무도 마중 나올 사람이 없는 나는 쓸쓸히 이러한 이별의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나를 보고 달려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가까이 나타난 사람은 고등학교 동기인 정일웅 소위였다.

학군 5기로 임관한 정 소위는 부산 미군 군사고문단에서 통역장교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가 고문단에 배포된 파월장병명단에서 내 이름을 보고 달려온 것이었다. 외로웠던 나에게 정소위가 나와 주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몰랐다. 정일웅 소위는 전역을 하고 교육계로 나가서 고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한 잊을 수 없는 친구가 되었다.

월남으로 떠나는 수송선은 엄청나게 큰 함정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그런 큰 배를 타보았다. 5박 6일간 뜨거운 태양아래 남지나해를 지나 월남으로 가는 선박 속에서는 많은 장병들이 뱃멀미를 했다. 장교들은 배 중앙부분에 있는 호텔 같은 장교숙소를 배당받았지만 뱃멀미를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항상 배를 타야 하는 해군장병들의 고충이 얼마나 할 것인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선상에서의 식사는 대단히 좋았다. 처음으로 맛보는 열대 과일은 식욕이 떨어진 우리들의 입맛을 돋우어 주었다.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주로 필리핀사람들이었는데 우리들에게 친절하고 극진한 봉사를 해주었다.

부산항을 출발한지 5일째가 되니까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웠다. 마라톤선수가 골인 지점에 와서 쓰러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하루라도 더 항해를 한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픈 생각이었다. 오직 육지로 빨리 내려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6일째 아침이 되니까 저 멀리서 아침 햇살과 함께 푸른 산이 아물거리며 눈앞에 나타났다. 우리가 내릴 베트남 ‘나트랑’ 항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보이는 푸른 숲과 땅이 얼마나 반가운지 그 느낌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배에서 하선하니 현지부대에서 나온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곳곳에 베트콩이 매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장한 병력의 호위를 받으면서 비포장도로를 달려 주월 민사심리전부대로 향했다.

▲ 주월 민사심리전부대 전초기지(민사심리전부대장과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