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의 월남근무를 마치고 귀국하여 중대장에 나가기 전까지 서울 용산에 있는 한미연합군사령부 전신인 한미연합기획단에 보직되어 한미연합작전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미8군사령부 영내에 위치한 한미연합기획참모단에서의 근무는 비교적 여유 있는 시간이었다. 일과가 끝나고 여가시간을 활용해서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을 다닐 수 있었다.
한미연합기획참모단은 1968년 10월 8일 서울 용산에서 창설되었다. 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유엔군사령부와 한국합참 간에 업무를 유기적으로 협조하기 위한 기구이었다. 창설초기에는 연합기획참모단장에 미군 장성(Kemp 미공군 준장)이 보직되었지만 1974년 7월부터 한국군이 한미연합기획참모단장을 맡았다.
전방과 월남에서만 근무를 했던 나에게 미8군사령부 환경이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정시에 출퇴근을 하는 민간인 분위기 속에서 정신적 및 육체적인 나태함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퇴근 후 불필요한 시간낭비보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자리에 있는 숙명여대를 나온 국영주 씨가 일과 후 대학원 석사과정에 다니고 있었다. 그녀로부터 소개를 받아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을 했다.
입학을 하고 보니 중앙정보부에 다니고 있는 김선태 육사동기도 있었다. 사관생도시절에는 그와 가까이 할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대학원에 다니면서 서로 의지하면서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다.
일과가 끝나면 저녁식사를 할 시간도 없이 고려대학교가 있는 안암동행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갔다. 저녁은 휴식시간에 라면과 빵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았다.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과는 판이하게 다른 석사과정이었기 때문에 출석과 시험이 대단히 까다로웠다. 특히 나의 논문지도를 맡았던 김행권 교수는 호랑이로 이름나 있었다. 시험을 보다가 부정행위가 있을 경우에는 시험지를 그 자리에서 빼앗고 밖으로 쫓아내면서 그 과목은 F학점을 주었다. 육사 교수부보다 더 엄한 규율을 적용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나는 전 과정 A+를 받고 무역사 자격증까지 획득했다.
석사학위 논문을 써야 하는 마지막 학기에 전방으로 명령이 났다. 결국 마지막 논문학기는 중대장을 마치고 한미야전군사령부에 근무하면서 김행권 교수의 지도로 통과되었다. 논문 제목은 “FMS제도에 대한 고찰(육군의 외자조달면을 중심으로)”이었다. 어렵게 석사학위를 받은 것은 나중에 진급을 하는데도 유리한 영향을 미쳤다. 또 계속 공부를 해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까지 되는데 주춧돌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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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원 석사학위 수여식에서 / 왼쪽부터 김진, 차수진, 필자, 아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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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근무하면서 선을 보는 기회가 많았다. 한미연합기획참모단장 김재명 장군 부인도 나를 중매하려고 여러 규수들을 소개해 주었다. 결혼 적기가 되었기 때문에 고향에 있는 부모도 결혼독촉을 했다. 그러나 나에게 마음이 끌리는 당사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 날 육군본부 작전참모부 포병과에 근무하는 천용택 중령(후에 국방부장관 및 국회의원)한테서 전화가 왔다. 당시 육군본부는 전쟁기념관 자리인 용산에 있었다. 천 중령이 말하기를 삼각지에 나가면 어떤 처녀와 그녀의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한번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육사16기인 천 중령이 나에게 전화를 한 배경은 이러했다. 장인인 김선규 장군(육사 2기)이 현역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던 김봉천 중령에게 군인 중에 사윗감이 될 만한 사람을 공개적으로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김 중령은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천 중령에게 육사출신 위관장교로서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을 부탁했다. 천 중령은 헌병으로 근무하는 나의 육사동기인 이재환 대위로부터 나를 소개받아 내가 추천이 되었던 것이다. 동기생 이 대위는 천 중령과 완도 동향이었기 때문에 평소 잘 아는 사이였다.
천용택 중령의 이야기를 듣고 근무복 차림으로 선을 보기 위하여 삼각지에 있는 동심다방으로 나가니 인자한 중년부인과 아름다운 처녀가 창가에 앉아있었다. 그 처녀와 눈빛이 마주치면서 전기가 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상대를 잘 몰랐지만 상대방은 이미 김봉천 중령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 터이라 차를 마시면서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오가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김경아이며 중앙대학교 보육과를 다니고 있었다.
장인이 될 김선규 장군은 육군사관학교 제2기로서 육군본부 통신감과 제37사단장 등을 역임한 분이었다. 6․25 한국전쟁 시에는 제21사단 백두산부대에서 역전의 용사로 많은 전공을 세운 용장이었다. 특히 설악산 전투에서는 적 1개 대대를 격퇴시키고 을지무공훈장까지 수여 받은 명장이었다.
처 고모부인 이성가 장군은 한국전쟁 시 영천전투에서 보병 제8사단을 이끌고 혁혁한 공을 세운 전쟁영웅이었다. 영천전투에서 인민군이 부산을 함락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 역전의 용사였던 것이다. 처 이모부도 해군사관학교를 나왔고, 처4촌 오빠도 육군사관학교 28기 김진황이었다. 처가가 모두 군인들로 구성된 전통적인 무인집안이었다. 이러한 집안에서 김경아는 군인이 아니면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군인 팬이었기 때문에 장인은 군인 사윗감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