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아와의 만남과 결혼 (31화)

삼각지 동심다방에서 맞선을 보는데 싫지 않은 상대이었지만 결혼이라는 인생의 대사를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그 후 수차례에 걸쳐 김경아와 만나 데이트를 하면서 함께하는 가운데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대구에 있는 부모와 가족들에게도 알리게 되었다.

차기환 큰형이 청파동 처갓집에 와서 장인 김선규 장군을 만나면서 결혼절차는 급속히 진행되었다. 1971년 6월 6일 양가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약혼식을 올리고, 워커힐 호텔주위로 산책을 하면서 결혼날짜까지 1971년 9월 11일로 잡았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약혼식 사회는 김용구 대위가 보았다. 약혼식이 끝나고 이재 대위와 장우균 대위 등 동기생들은 나의 예비신부와 함께 드라이브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약혼시절 동기생들은 장군의 딸과 결혼하는 차기문 대위를 축하하면서 어디를 가나 김경아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약혼을 한 상태에서 홍천에 위치한 육군 제11사단 수색중대장으로 명령이 내려왔다. 약혼자와 함께 지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아쉬운 정을 뒤로하고 육군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홍천으로 떠나는 발걸음은 천금같이 무거웠다.

▲ 약혼식 (왼쪽부터 아버지, 어머니, 필자, 아내, 장인)

사단수색중대는 일반 보병중대보다 부대규모도 크고 장비도 중대장 개인 지프차와 5분대기조 트럭 등이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중대 내에 PX가 있었고 자체취사를 하는 완전 독립중대였다. 중대장으로 보직이 되어 업무파악을 하는 등 바쁜 일과가 계속되는 가운데 결혼날짜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결혼식 하루 전인 9월 10일 전투복에서 예식복으로 갈아입고 새카맣게 탄 얼굴로 세종호텔에서 개최되는 결혼식에 참석을 하기 위하여 서울로 향했다. 결혼식 전날 저녁에 함이 운반되었는데 많은 육사동기생들이 와서 처갓집이 있는 청파동 골목이 떠들썩했다. 길을 인도하는 온창일과 김용구 동기가 앞장서서 청사초롱을 들고 나팔을 불었다. 결혼을 일찍 해서 이미 아들까지 둔 김광수 동기가 함을 지고 들어가니 동네는 온통 축제분위기가 되었다.

결혼식 당일인 1971년 9월 11일, 대구에서 부모 형제와 함께 온 가족 친척들이 버스를 대절해서 올라왔다. 당시에 호텔에서 결혼식을 한다는 것은 흔하지 않았다. 검소한 혼례를 가지려고 했던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개혼이었던 처가는 결혼식에 대하여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엄숙하고 호화로운 세종호텔분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합참의장으로 있던 심흥선 장군이 하고 사회는 서울대학교 국문학과에 다니는 이재 육사동기생이 맡았다. 이재 동기의 유머스러운 사회와 심흥선 장군의 노련한 주례사는 결혼식장을 엄숙하면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만들었다.

결혼식이 끝난 후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다. 외국으로 나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던 시대이었다. 생도시절에 김문기 동기와 한번 가본 제주도였지만 신혼여행을 가서 본 제주도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제주공항에 내려 차를 대절해서 해안관광을 하면서 서귀포로 갔다. 서귀포에 있는 허니문하우스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남국의 분위기가 넘치는 제주도를 관광하면서 부대일을 잊어버리고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신혼여행 프로그램에 따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 제주도 신혼여행에서

우리나라에 전래되는 풍속에 따라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 시댁으로 가서 신행잔치를 해야만 했다. 제주도에서 돌아온 우리 부부는 처가 집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고향인 합천 덕실골로 신행을 갔다. 대구를 거쳐 고향으로 가는데 장인과 장모 그리고 처남 김진도 함께 동행을 했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4시간, 대구에서 덕실골까지 2시간이 걸렸다. 낙동강 나루터에서 차를 배에 싣고 강을 건너 한참 동안 시골길 비포장도로를 가야만 덕실골이 나왔다. 두메산골에 도착한 처갓집 식구들은 크게 실망을 하는 모습이었다. 문화시설은 찾아볼 수 없고, 재래식 화장실에 고추를 말리는 초가지붕, 자동차가 들어왔다고 코흘리개 아이들이 모여드는 동네가 바로 딸의 시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에서 보지 못한 따뜻한 정과 사랑이 넘치는 순박한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조금은 위로가 되는 듯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소와 돼지를 잡아서 큰 잔칫상을 차려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막내가 서울에서 아름다운 며느리를 데리고 와서 신행잔치를 하게 되니 대단히 흡족한 모습이었다. 시골에서 이러한 경사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라 10리 밖에 있는 장돌뱅이들까지 찾아왔다. 동네사람들은 사물놀이를 하면서 하루 종일 먹고 마시면서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시골에서 오랫동안 머물 시간이 없었다. 왜냐하면 중대장 보직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대에 빨리 들어가 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좀 더 함께 있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군무에 매인 몸이라 고향에서 하루 밤만 자고 바로 홍천에 위치한 중대로 복귀를 했다. 홍천으로 돌아온 우리 신혼부부는 들판에 외따로 서 있는 허름한 독립가옥을 얻어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마침 주위에 육사 20기 선배인 신정 대위와 홍유경 대위 가족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