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장과 신혼생활 (32화)

사단수색중대장으로 보직이 된 후 중대를 사단에서 최고의 부대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신혼생활인데도 불구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부대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야전군 유일의 기동사단으로써 화랑부대라는 별명이 붙은 제11사단은 야전군 전역에 대한 역습임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 훈련이 강한 부대이었다. 기동사단은 불자동차로 비유된다. 유사시 위급한 지역에는 어디에든지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11사단이 교통망이 발달된 홍천에 위치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즉각적인 기동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제11사단은 행군을 많이 했다. 병사들은 제11사단에 보직이 되면 지구를 3바퀴나 도는 거리를 걸어야만 전역 할 수 있다고 하여 배치되기를 기피했다. 그러나 한번 보직이 되면 훈련을 통한 끈끈한 전우애가 부대에 대한 애정으로 바뀌어 울고 갔다가 웃으면서 나오는 부대로 알려졌다.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화랑부대장병들은 우렁찬 군악대의 연주에 맞추어 사단가를 목이 터져라 부르면서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나는 사단가에 혼이 심어있는 부대의 전통을 더욱 빛내기 위해 수색중대장으로 보직이 되자마자 주야간 전환훈련으로 들어갔다. 밤과 낮이 바뀌는 훈련에 들어간 것이었다. 밤을 세워 훈련을 하고 낮에는 잠을 자는 것을 연속해서 1개월 동안 했다. 장병들을 야간전투의 전문가로 만들기 위해 올빼미 훈련을 실시한 것이었다. 중대원들은 이러한 훈련에도 잘 견디어 냈다. 처음에는 적응이 잘 되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지만 점점 숙달이 되면서 야간전투에 자신감을 가지는 올빼미부대가 되었다.

새댁인 아내는 시골생활에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산골집에서 밤에 혼자 지내기가 무섭다고 했다. 바람 부는 허허벌판에 위치한 나의 집은 아궁이에 장작불로 밥을 짓는 재래식 집이었다. 밤에는 적막강산이 되어 산짐승 울음소리만 들릴 뿐 인기척 하나 없는 북방이라는 산골마을이었다.

이러한 산골집에 어린 신부를 밤에 혼자 있게 한 나의 마음도 편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중대장은 180명 병사들의 생사를 책임지고 있는 지휘관으로서 가정보다는 부대가 먼저였다. 가정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부대병사들을 생각하면서 부대훈련에 나의 모든 시간과 정력을 바칠 수밖에 없었다.

▲ 수색중대장 숙소와 아내

아내가 임신을 한 상태에서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데 아궁이 속에서 쥐가 튀어나왔다. 깜짝 놀란 아내는 실신을 해서 병원에 실려가 응급조치를 받아야 했고 뱃속에 있던 아기는 유산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 이후 하혈이 심하여 유산을 자주하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장녀인 수진이가 늦게 태어난 것도 이러한 이유에 기인한 것이었다.

땔감이 모자랄 때는 산에 가서 썩은 나무둥치와 솔잎갈비를 모아 와서 난방을 했다. 추운 겨울에는 장작불을 너무 많이 때어 방 아랫목이 과열되어 화재가 날 뻔도 했다. 방온 장치가 잘 되어있지 않은 집이라 온돌방은 쉽게 식어버리고 새벽이 되면 윗목에 둔 물그릇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방안 천정에서는 쥐가 싸움을 하다가 떨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불평하나 없이 중대장인 남편을 위하여 내조를 아끼지 않은 아내가 고마웠다.

한번은 중대원 중에 사귀던 애인이 변심을 했다고 하면서 휴가를 보내달라고 했다. 이 병사에게 휴가를 주면 변심한 애인에게 사고를 저지를 것이 분명했다. 이와 같은 경우 후방으로 나가 수류탄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주고 인질극을 벌이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휴가를 보내지 않으니까 중대장 숙소에 찾아와서 날카로운 칼을 휘두르며 소란을 피웠다. 결국 그 병사의 애인에게 연락을 취하고 그 병사를 잘 타일러서 이해를 시킨 다음 휴가를 보내게 되니 문제병사가 모범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겨울이 되면 홍천강변에서 스케이트 대회가 열렸다. 장병들은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겨울을 기다리고 있었다. 늦가을에 홍천강물을 막아놓으면 겨울 동안 좋은 체력단련장이 되었다. 부대대항 스케이트 경기가 있을 때에는 우리 중대가 항상 우승을 했다. 돼지를 상품으로 타서 중대회식을 하게 되면 병사들의 사기가 충천했다. 처남과 처제들이 스케이트를 좋아해서 주말에는 서울에서 처갓집 식구들이 단체로 위문을 왔다. 아내는 이러한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전방생활을 잘 견디고 있었다.

아내의 친구들이 외롭게 살고 있는 경아를 위하여 가끔 전방 신혼집에 와주었다. 아내의 대학동창 중에 신정자라는 예쁜 친구가 있었다. 아직 미혼인 그녀는 아내를 위하여 시골집에 자주 찾아왔다. 나와 같이 옆 부대에서 중대장을 하고 있는 육사동기 김용경 대위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그녀를 보았다. 두 사람은 한눈에 전기가 통했다. 김용경 대위는 육사에서 럭비를 한 건장한 체구를 가진 친구로 마음이 순수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다. 아내의 적극적인 중매로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우리 두 가정은 일생을 통하여 친가족 같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 신정, 홍유경 대위 가족과 함께 홍천에서의 생활(왼쪽부터 필자, 신정, 홍유경 가족)

홍천 시골집 옆에 육사20기 선배 신정 대위와 홍유경 대위 가족이 함께 살고 있었다. 신정 대위 부인은 고려대학교를 나왔고, 홍유경 대위 부인은 이화여대를 졸업해서 모두들 이야기가 통하는 사이였다. 함께 테니스를 하고 여름에는 홍천강변에 나가 빨래를 하면서 서로 간에 산골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다.

우리 사단수색중대가 제13연대 전투단훈련(Regimental Combat Team)에 참가했다. 육사11기 안재석 대령이 지휘하는 제13연대가 야전군에서 가장 우수한 연대라고 이름이 나있었다. 과연 정확히 평가가 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야전군사령관 한신 장군이 직접 헬기를 타고 와서 불시에 연대전투단훈련 시험을 한 것이었다. 여기에 우리 수색중대가 배속이 되어 함께 시험을 받았다.

홍천에서 인제로 이어지는 44번 도로상에서 훈련을 했다. 행군을 하다가 강력한 적과 조우를 하는 상황이 즉흥적으로 부여되면서 지휘관의 조치상태를 확인했던 것이다. 적 전차가 집중적으로 돌파를 하게 되니 연대가 완전히 와해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부대 장병들은 자기 모체 부대를 찾지 못하여 우왕좌왕하고, 지휘관은 지휘관대로 자기 부대를 수습하느라고 분주한 모습이었다.

도로는 이미 적 전차부대가 점령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중대는 산길을 따라서 목표지역까지 침투해야만 했다. 침투 중 매복하고 있는 적에게 희생을 많이 당하여 최종 목표에 도착하니 절반의 병력밖에 남지 않았다.

이러한 악조건 하에서 대부분의 부대들은 전멸한 상태이었다. 그러나 우리 중대는 절반의 병력이었지만 재편성을 하여 적의 후방 지휘소를 타격했다. 이 덕분에 제13연대는 최종목표를 쉽게 점령하게 되었고 연대전투단훈련은 성공적인 평가를 받았다. 강평 시에는 한신 야전군사령관까지 우리 중대를 칭찬했다. 우리 수색중대는 전군 최고의 부대라는 판정을 받고 부대표창을 받았다. 이 훈련결과 안재석 제13연대장도 우리 중대를 높이 평가하게 되었고 나는 개인적으로 안대령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