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대 고등군사반으로 (34화)

중대장을 마치고 광주에 있는 보병 고등군사반(OAC : Officer’s Advance Course)에 입교했다. 군에서는 보수교육을 계급마다 시킨다. 소대장으로 나갈 때는 초등군사반, 중대장을 나갈 때는 고등군사반, 대대장을 나갈 때는 육군대학, 연대장을 나갈 때는 국방대학원 등의 교육이 있다. 당시에는 아직 교육체계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중대장을 마치고 고등군사반 교육에 들어갔던 것이다.

나에게 광주는 육군사관학교 3학년시절 병과교육과 소위로 임관한 후 초등군사반 교육에 이어 고등군사반 교육을 받기 위해서 세 번째 가는 곳이었다. 초등군사반 교육을 마치고 전방으로 들어갔던 동기들이 고등군사반 교육을 받기 위하여 광주에서 다시 만날 수 있어 반갑기도 했다. 육군사관학교 동기생들은 생도생활도 24시간 함께 하면서 형제의 정을 나누게 되지만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교육 보직 등을 통하여 항상 만날 수 있다. 일생을 통하여 함께하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다른 어느 동기생 보다 가까운 관계가 유지되는 평생동지라고 할 수 있다.

고등군사반 교육은 진급과 보직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밤을 세워가면서 공부를 했다. 휴식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모두가 공부에 미치고 있었다. 아마도 고등군사반에서 공부하는 정도로 법률공부를 한다면 사법고시에도 합격하고 남았을 것이다.

결혼하고 제19기 고등군사반에 입교를 했기 때문에 광주시내에 방을 얻어야 했다. 그런데 방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방을 얻을 동안 아내를 서울 처가에 맡겨두고 혼자 광주로 내려가서 광주가 고향인 육사동기생 한광소 집에서 하숙을 했다. 한광소 동기의 부모는 우리 동기생들에 대한 애정이 많았기 때문에 광주에 간 우리들을 헌신적으로 돌봐 주었다.

하숙을 하겠다는 동기생들이 너무 많아 모두 수용을 할 수 없었다. 나머지 동기생들은 옆에 있는 딸부잣집에서 하숙을 했다. 광주 딸부자집이라고 하면 고등군사반에 입교한 장교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집이었다. 딸이 많은 이 집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고등군사반 정감록도 있었다. 정감록이란 선배들이 공부하면서 대물림으로 내려오고 있는 시험문제지였다. 결국 이 문제지 속에서 상당수가 출제되었기 때문에 고등군사반 시험공부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자료였다.

나는 한 달간 한광소 부모집에서 하숙을 하다가 광주 황금동에 월세방을 얻어 서울에 있는 처를 내려오도록 했다. 광주 황금동은 술집이 밀집된 지역이라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지만 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부득이 술집골목에 방을 얻었다.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공부를 하다 보면 술 취한 사람들이 주위로 돌아다니면서 소란을 피우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우리 옆방에는 술집 여자가 살고 있었는데 늦은 밤에 남자들을 끌고 들어와서 2차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벽에는 방음장치가 되지 않아 옆방 여자가 오강에 오줌을 누는 소리까지 들려서 더욱 신경이 쓰였다. 서산대사의 수도과정을 상기하면서 이러한 환경이 나의 공부에 대한 집념을 방해하지는 못했고 오히려 더 열심히 공부에만 집중을 했다.

고등군사반에는 후배들도 많이 있었다. 나를 따르는 후배들이 우리 집에 와서 아내가 지어주는 저녁을 먹으면서 함께 공부를 하는 기회가 많았다. 그 중에는 육사25기 이한억 대위가 있었다. 아내는 이대위를 처 이종 4촌 여동생에게 중매를 했다. 고등군사반을 졸업하고 그들은 점점 사랑이 깊어졌고 결혼까지 하여 행복한 부부가 되었다.

▲ 제19기 고등군사반(OAC) 졸업기념(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앉아있는 사람이 필자

고등군사반 교육기간 동안 잠은 하루에 2~3시간 이상 자지를 않았다. 휴일도 없이 복습과 예습을 하느라고 신혼생활의 즐거움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화장실에 가거나, 식사를 하면서도 책을 놓지 않고 오직 공부에만 집중했다. 그 결과 고등군사반에서 전체 1등이라는 성적으로 졸업을 했다. 군대생활을 하면서 영향을 미치는 육군참모총장 상을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았다.

이와 같은 좋은 성적을 내게 된 결과는 아내의 내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항상 부족한 영양을 보충시키기 위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재래시장까지 가서 고단백 생선을 사왔다. 학습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창호지로 문틈 사이를 발라 방음장치까지 해주면서 나의 뒷바라지를 한 덕분이었다.

보병학교 고등군사반을 수료하고 나니 당장 사단장을 맡겨주어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무엇이든지 임무만 주어지면 100%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천하가 내 손안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술분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나의 기록카드에 수석이라는 성적이 일생 동안 따라 다녔다. 부대에 전입을 할 때마다 서로 자기부대로 데려가려고 지휘관들이 경쟁을 했다. 내가 군대생활을 순조롭게 할 수 있었던 배경도 고등군사반 교육을 수석으로 졸업한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고등군사반을 졸업 후 재경부대에 보직을 받았다. 전방과 월남에서 주로 근무를 해왔기 때문에 순환근무 계획에 따라 재경부대에서 근무할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군인아파트가 부족해서 입주를 하려면 전입명령이 난 후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장모와 아내가 용산 서빙고에 2층짜리 연립주택을 구했다.

부대 출근을 해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집에 혼자 있던 아내로부터 도둑이 집에 들었다고 연락이 왔다. 이때 아내는 차수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전방 중대장을 하면서 어려운 환경이었기 때문에 자주 유산을 하고 수진이를 가졌는데 또 유산을 하면 어떻게 하나하고 걱정이 앞섰다. 집에 도착하니 경찰이 도둑을 잡아놓고 있었다. 수진이를 유산시킬 수 있었다는 생각 때문에 앉아있는 도둑을 군화발로 걷어차 버렸다. 그 자리에서 도둑은 실신을 했다. 오히려 내가 폭행죄로 경찰에 가서 심문을 받아야만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도둑을 잡은 사람은 아내였다. 시장에 갔다 온 아내가 집에 들어가는 순간 도둑과 거실에서 마주쳤다. 아내가 들고 있던 장바구니로 도둑을 내려치니 급한 도둑은 2층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옆에 있는 판자집 지붕을 뚫고 떨어졌던 것이다. 밖으로 따라 나간 아내와 동네사람들이 합심해서 도둑을 잡아 경찰에 인계했다. 용감한 그때의 행동이 태아에게 전달되었는지 수진이는 자갈밭에 내어놓아도 살아갈 강인한 생활력을 가지고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