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스피리트 선봉연대로 (45화)
  제6장 영관 시절

RCT시험을 마치고 부대정비가 끝난 후 연대장 집무실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팀스피리트86 연습에 우리 제76연대가 참가하게 되었다는 이병태 사단장의 목소리였다. 얼마나 기대를 하고 있었던 소식인가! 세계 최대규모인 팀스피리트연습에 참가한다는 것은 부대의 영광이자 연대장의 영광이기 때문에 전화를 받고 한동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우리 연대는 RCT를 성공적으로 마쳤기 때문에 승리의 여세를 몰아 세계적인 팀스피리트연습에 참가하고픈 것이 부대 전 장병들의 일치된 꿈이었다. 더구나 사단전체가 참가를 한다니 내일 당장 적과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잠재력을 국민 앞에 보여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이었다. 팀스피리트연습은 미 본토와 해외기지에 배치되어 있는 미 육․해․공군 및 해병대가 한반도에 투입되어 한국군과 연합작전을 하는 세계 최대규모의 기동훈련이었다.

나의 훈련중점은 부대 전 장병의 사기를 진작시켜 부대의 단결과 신뢰를 도모하는데 있었다. 평소 각각 분리되어 있던 지원부대를 함께 묶어 제병협동작전 요소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완벽한 작전보안으로 적이 아무리 우리의 상황을 파악하려고 해도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했다. 또한 안전사고에 의한 전투력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군기를 확립하고 대민피해가 일체 없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연대장의 훈련중점과 지침을 연대 작전과장인 김현우 소령에게 내려 연합연습준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했다.

3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남한강이 있는 충주지역으로 부대가 기동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작전명칭을 “충주대첩”이라고 불렀다. 부대에서 충주까지 이동하는 장거리 행군은 많은 난관이 따랐다.

교통량이 많은 3번 도로를 따라 교통통제를 받지 않고 이동하는 것이 문제였다. 헌병을 교차로마다 배치하고 심야를 이용하여 100여 대의 차량에 유류재보급을 하면서 성공적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평소 운용하지 않았던 치장장비와 인원은 철로를 통하여 작전지역으로 이동시켰다.

연대는 사단의 선봉으로서 남한강을 도하하여 박달재를 탈취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도하작전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참모들을 대동하고 남한강 도하지점을 면밀히 정찰한 다음 도하를 실시했다.
 
▲ 연대참모들과 남한강 도하지역에서(왼쪽에서 세 번째가 필자)

“충주대첩”에서 연대는 “적을 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싸운다.”라는 개념을 가지고 적정파악에 주력을 했다. 지연전을 실시할 시에는 수색소대를 적진에 잔류시켜 주요고지마다 연대의 눈을 박아놓았다. 연대상황실에는 적의 무전교신을 감청할 수 있도록 적 무전 감청반을 별도로 편성했다. 적의 주파수를 알아내는 데는 우리 연대통신병들의 능력으로 20분이면 충분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라는 교훈은 전투에서 잘 통하는 상식이다. 방어는 공격의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전투에서는 항상 공격만이 있을 뿐 그 이외의 전투형태는 공격을 위한 보조수단일 뿐이다. 모든 작전은 공격개념이 적용된 부대운용이 되도록 했다. 따라서 우리 연대는 방어단계에서도 파쇄공격, 역습, 소부대공세활동에 주안을 두었기 때문에 적과 싸움에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파쇄공격의 목표는 적이 공격대형을 갖추기 전에 적 부대의 균형을 와해시키기 위하여 하는 것이다. 예비대대인 3대대장 김창수 중령에게 전차중대를 배속시켜 국사봉을 공격하게 했다. 연대 예비인 다른 전차 1개 소대는 공격개시 30분전에 문남을 공격하여 양공작전을 펴도록 했다. 공격을 하다 보니 적은 저녁식사를 하는 중인지라 김창수 대대가 전차를 앞세워 공격해 들어가니 적 병사들은 혼비백산이 되고 말았다.

적 대대장은 다급하여 트럭들을 길에 집결시켜서 장애물로 해놓고 도망을 갔다. 그러나 전차 앞에 트럭은 종이조각에 불과했다. 공격속도가 빠르니 적 후방에 집결되어 있던 적 전차는 아직 시동도 걸지 못한 상황이었다. 파쇄공격과 동시에 Fire Eagle을 병행하여 적을 공격했기 때문에 그 효과는 배가 되었다.

적 주력은 38번도로를 중심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에 평동은 적의 유일한 퇴로가 되었다. “울고넘는 박달재” 노래에도 나오는 천둥산은 적 주력부대를 포위할 수 있는 전형적인 지형이었다. 우리 연대가 조기에 평동만 탈취한다면 2일간 소요되는 작전을 한나절 만에 종결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 충주대첩으로부터 개선(앞줄 왼쪽부터 인사참모 오준섭 소령, 필자)

우리가 담당한 전투지역은 대부분 험난한 산악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산길을 이용하여 대대단위 침투식 기동을 실시하면서 전진했다. 적 후방에 있는 목표를 차단한 후 보, 전, 포 협동작전으로 포위된 적을 압박하니까 적을 격멸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평동을 차단한 후 퇴각하는 적을 심리적으로 마비시키기 위하여 꽹과리, 징, 북 및 나팔을 사용하였다. 적은 공황상태가 되었고 우리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이 전투를 통하여 정면공격이나 돌파보다도 침투식 포위기동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팀스피리트 연합연습은 대단히 값진 훈련이었다. 특히 미2사단과 연합작전을 통하여 언어 및 교리상의 문제점 등 장애요소를 해소하고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군단급 이상의 대규모 연습을 한미연합으로 실시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연습은 전쟁을 사전에 억제할 수 있는 주요수단이며 핵심적이 방책이었다.

그러나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른 남북관계의 진전을 배경으로 아측은 1992년 실시예정이던 팀스피리트연습을 중지시켰다. 그 후 북한 핵문제로 남북관계가 악화되자 한․미측은 1992년 10월 훈련재개를 결정하고 1993년 규모와 기간을 축소한 훈련을 실시하였으나 1994년 북․미 제네바 협약에 따라 팀스피리트 연합연습은 완전히 중단되고 말았다.

 
  RCT 최우수연대 (44화)
  6군단 작전참모로 발탁 (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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