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과 사랑의 화신 어머니-1 (4화)
  제1장 덕실골과 유년기

연상의 여인으로 아버지에게 시집을 온 어머니 전순선은 1908년 12월 10일 산 너머 정동마을 양반집 명문가정에서 6녀 1남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 밑에서 한학을 공부하면서 고귀하게 자라난 어머니는 16세 때에 두 살 연하인 아버지에게 시집을 왔다. 당시에는 연상의 여인과 혼인을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나이가 아버지보다 많았던 것이다.

나이 어린 꼬마신랑이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큰 소리를 칠 때면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신랑의 화가 풀릴 때까지 부엌에서 참고 기다렸다. 부부가 의견이 틀릴 때에는 어머니는 맞대응을 하지 않고 항상 침묵으로써 모든 것을 인내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화가 풀리면 그때에 아버지의 잘못을 따지는 전형적인 동양 여성이었기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는 장면을 볼 수가 없었다.

남을 배려하는 어머니의 정은 남달리 깊었다. 논에서 일하는 머슴들에게 배가 고프지 않게 밥을 그릇위로 수북이 올라오게 담아서 먹게 하고 새참이 되면 특별 음식을 만들어 들녘으로 내다 주었다. 어머니가 머슴들에게 줄 음식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들판으로 나갈 때면 동생 정숙이와 나는 함께 따라갔다. 나는 주전자를 들고 동생은 물병을 들고 어머니를 따라 논두렁길로 가며 물장구를 치면서 좋아했다.

어릴 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외갓집에 갈 때가 대단히 기쁘고 즐거웠다. 조그마한 산을 넘어 외갓집으로 가는 길은 봄이면 진달래가 만발하고, 여름이면 매미소리가 귀를 즐겁게 했다. 가을에는 땅에 떨어진 알밤과 도토리가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겨울에는 하얀 눈으로 덮인 오솔길이 아름다운 정취를 더해 주었다.

외갓집 뒤뜰 감나무에 빨갛게 매달려 있는 감 홍시를 마음껏 따 먹을 수 있었고, 외할머니가 손수 담가놓았다가 주시는 식혜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외사촌 형들과 냇가에 나가 멱을 감고, 붕어와 메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먹던 즐거움에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가을에는 논에서 메뚜기를 잡다가 통발에 가득히 모여 있는 미꾸라지를 거두어가면 외할머니가 추어탕을 맛있게 끓여주었다. 그때의 자연산 추어탕 맛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우리 집은 종갓집이라 제사나 명절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어머니는 음식을 풍부하게 만들어 온 동네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얻어먹는 사람들이 오면 아낌없이 퍼주고 남은 음식을 싸주는 정을 보이기도 했다..
 
▲ 어머니 전순선(1908~2000)

당시에는 설과 추석명절이 되어야 새 옷을 입을 수 있고, 새 고무신을 얻어 신을 수 있었기 때문에 명절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나와 정숙이는 바느질을 하고 있는 어머니 곁에 앉아 서로 좋은 옷과 신발을 사달라고 졸랐다. 검정 양복과 고무신을 신고 나가서 동네 아이들에게 누가 더 좋은 옷과 신발을 신었는지 자랑하기 위함이었다
 
어머니는 형들이 방학이 되어 집에 와서 학비를 달라고 하면 한 푼이라도 더 주려고 온 마을을 다니면서 돈을 빌리곤 했다. 내가 육군사관학교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관학교 생활은 생도들에게 생활비라고 나왔지만 외출할 때 교통비도 되지 않았다. 금전적으로 어려웠던 것을 안 어머니는 방학이 되어 고향으로 가면 한 푼씩 모아두었던 잔돈 뭉치를 꺼내어 손에 쥐어주었다. 그 잔돈 뭉치는 검은 고무줄로 겹겹이 묶어져 있었다. 어머니에게 얼마나 귀한 돈이었든가. 먹고 싶은 것 아니 먹고, 필요한 곳에 아니 쓰고 조금씩 모아두었던 때묻은 돈을 자식에게 여비로 쓰라고 주는 그 돈은 나에게 수억 원의 가치보다 더 귀하고 소중했다.

자식들을 객지로 보내고 농사일은 당신 혼자서 다 했다. 밭에서 김을 매는 당신의 손은 거칠 대로 거칠었다. 소여물을 끓이기 위해 작두로 여물을 쓸 때 손가락이 잘려나간 자국은 평생 지워지지 않았다. 위장이 좋지 않아 부엌에서 부지깽이로 배를 누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의 건강이 항상 염려되었다. 그렇지만 병원에 한번 가지 않고 일생 동안 건강을 유지하고 있던 강골이 나의 어머니였다.

이러한 어머니와 나는 초등학교 졸업 후부터 줄곧 헤어져 있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적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항상 막내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내가 월남전에 두 번째 참전을 하기 위해 김포공항을 출발할 때 어머니는 공항까지 나와서 마중을 했다. 덕실골에서 혼자 서울로 올라와 월남으로 떠나는 자식을 보려고 왔던 것이었다. 당시에는 국제공항이 김포공항뿐이었다. 서울에는 아는 친지도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다시 고향으로 “혼자 돌아갈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 되었다. 마침 육사동기생 김영리 부인(나중에 4촌 처형이 됨)을 공항에서 만났다. 어머니를 자기 집에까지 모셔서 하룻밤을 주무시게 하고, 대구까지 열차를 태워서 보내주겠다고 하여 안심이 되었다.

어머니는 대학까지 나온 미인이 친절하게 해주는 것을 보고 우리 기문에도 이러한 참한 아내를 얻었으면 하면서 중매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고 했다. 나중에 나의 약혼식장에서 은혜를 입었던 그 분이 바로 4촌 처형이라는 것을 어머니가 알고 깜짝 놀라면서 오랫동안 기회만 있으면 그때의 이야기를 했다.

 
  매사 불여튼튼 아버지 (3화)
  정과 사랑의 화신 어머니-2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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