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사단과 나의 인연_3 (51화)
  제7장 장군 시절

지역 매스컴은 물론이고 중앙언론에까지 제37사단의 효율적이고 헌신적인 청주상가 복구작업에 칭찬과 격려가 쏟아졌다. 국민과 함께 하는 군이 적과의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다. 특히 지역주민 지원활동이 유사시 전투력 발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활동이 바로 군 전투력향상의 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우리 사단장병들은 사단작전지역내 자연보호운동에도 앞장을 섰다. 청풍명월의 고장에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와 오물로 곳곳이 오염되어 있었다. 남한강, 화양동 계곡, 충주호, 대청호 등 유명관광지일수록 오염은 더욱 심했다. 서울시민과 청주 및 대전시민들이 먹는 식수가 오염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백두대간이 쓰레기 투기장으로 변하고 있었다.

사단장은 솔선해서 쓰레기 수거작업에 나서면서 각 예하부대에도 자연보호운동에 앞장서라고 지시했다. 가용한 인력과 장비를 동원하여 강과 호수 물 속 깊이 퇴적되어 있는 오물까지 말끔히 청소를 했다. 장병들은 전역을 하고 나면 각각 국민의 한 사람이 된다. 현역 때에 참가했던 자연보호운동은 제대를 한 후에도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자연을 보호하는 습관으로 변화될 수 있다. 군대에서의 자연보호운동은 바로 국민교육도장으로서의 효과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솔선해서 남한강 자연보호 운동에 나선 필자

부사관(전에는 하사관이라 칭했음)은 군대의 허리이다. 장교와 병사를 이어주는 교량역할을 하는 군대의 핵심요소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부사관에 대한 활용과 관심이 저조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무능력하고 의욕 없는 집단이 부사관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잘못된 선입견을 타파하기 위하여 부사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모든 부사관들에게 능력에 맞는 임무를 주고 이에 해당되는 권한과 책임을 부여했다.

병사들이 부사관을 믿고 따르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모든 공식석상에서는 사단 주임원사를 사단장과 똑같은 위치에 올려놓았다. 장교들은 일정기간만 근무를 하고 부대를 떠나지만 부사관은 오랫동안 한 부대에 근무하면서 그 부대의 주인이 되고 주체가 되는 것이다. 사단창설기념일 같은 기회에 부사관 축제를 열어 부사관들의 사기와 의욕을 북돋아주었다.

사단 작전지역내에는 세계적인 화가 운보 김기창 화백의 별장이 있었다. 만원짜리 화폐에 있는 세종대왕의 초상화도 김기창 화백이 별장 화실에서 그린 것이다. 여생을 별장에서 보내는 그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면서 그림에 대한 공부와 인간 운보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부사관 축제에서 바비큐을 절단하고 있는 필자

양로원과 고아원을 자주 찾았다. 의지할 곳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부모 없는 어린 고아들을 찾아서 위문활동을 했다. 작전지역 내에는 이러한 불우한 시설이 많았다. 수도권에 가까우면서 공기 좋고 물 좋은 청풍명월의 고장이기 때문에 양로원과 고아원이 많았던 것이다.

대구 큰형댁에 있던 어머니가 사단장 공관에 놀러 왔다.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효도도 할 겸 어머니와 지역 내 노인들을 위한 경노잔치를 베풀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노인들을 위한 잔치를 사단장이 직접 베풀어주니 지역주민들도 대단히 좋아했다. 국민들로부터 군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얻는 것이 바로 전투력향상의 하나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사단지역 내에 있는 꽃동네는 우리 사단장병들의 봉사활동과 정신교육도장으로서 좋은 장소였다. 꽃동네는 1976년 11월 15일 오웅진 신부가 최귀동이라는 할아버지 걸인의 선행을 보고 감동을 받아 세운 불우한 사람들의 천국마을이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곳은 유아로부터 100세 할머니까지 수용되어있다. 이곳에 가면 인생관이 달라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작전지역내 양로원 위문

꽃동네 오웅진 신부를 만나러 갔는데 팔다리가 없는 사람이 밝은 얼굴로 현관에서 나의 신발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 사람은 현관에서 손님들의 신발을 정리하는 것이 본연의 일이라고 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중동에 일하러 갔다가 아내가 그동안 보내준 모든 돈을 가지고 다른 남자와 도망을 쳤다고 했다. 화가 난 그가 사제수류탄을 만들어 가지고 도망간 남녀에게 던진 것이 오발이 되어 자기의 팔다리가 날라 가 버렸다는 것이다. 한동안 죽으려고 했지만 종교에 귀의해서 이제는 원한을 다 버리고 모든 일에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목숨만이라도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밝은 얼굴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꽃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불우하지만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며 웃는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우리 사단 장병들은 신병으로 들어오면 의무적으로 꽃동네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도록 했다. 그 결과 무사고 부대가 되었고 전투력 최우수부대가 되어 대통령부대표창까지 받게 되었다. 사단장 재임기간 중 대통령부대표창을 2번이나 받은 부대는 제37사단밖에 없었다.

 
  제37사단과 나의 인연_2 (50화)
  청와대 국방비서관으로 (5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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