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사단과 나의 인연_2 (50화)
  제7장 장군 시절

1994년 7월 8일 북한 김일성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전군에 전투준비태세 강화지시가 내려졌다. 1인 통치체제로 오랫동안 독재를 해온 북한이 지도자가 유고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사단은 만반의 전투준비태세를 갖추고 실전에 대비했다.

통상 사단장이 훈련장에 나가면 예하부대장들이 의자와 탁자를 차려놓고 사단장이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이며, 차는 무슨 종류를 좋아하는가 하고 고심하고 있었다. 사단장이 꼬리곰탕을 좋아한다고 소문이 나면 가는 곳마다 꼬리곰탕이 준비되었고, 감기 때문에 쌍화차를 마시면 부대마다 쌍화차를 준비해 놓았다.

이러한 관습을 일소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야전에서는 절대로 의자와 탁자를 준비하지 못하게 했다. 땅바닥에 앉아서 있는 그대로 보고를 하도록 했다. 꼭 필요한 경우 야전 철의자를 놓는 경우는 있었지만 전쟁상황과 같은 조건에서 사단장에게 보고하도록 철저히 교육시켰다. 식사는 야전에서 병식사를 했다. 별도로 식당에서 사단장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지 못하도록 했다. 전쟁이 났는데 언제 식사준비를 하고 차 준비를 할 수 있겠는가? 가능하다면 치환용 전투식량을 준비하도록 했다. 

예하부대 작전지도

한국군은 장교가 병생활 체험을 하지 못하고 임관하는 것이 약점이다. 북한군은 병사들 중에서 군관을 선발하기 때문에 장교들은 모두 병사들의 세계를 잘 알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군은 사관학교, ROTC, 삼사관학교 모두 병생활을 모르고 임관을 하기 때문에 병사들의 세계를 모르는 것이 문제이다.

사단장은 스스로 병생활을 체험하기 위하여 가장 오지라고 하는 죽령 소초에서부터 병사들과 함께 생활을 했다. 처음에는 간부들이 불편해 하였다. 병사들도 사단장이 생활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니 어려워했다. 그러나 날이 지날수록 사단장과 병사들 사이에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죽령, 이화령, 추풍령 소초를 돌아가면서 2박3일간씩 병사들과 함께 지냈다. 적의 예상 침투로인 백두대간은 6․25 한국전쟁 이전부터 한반도의 요충지였다. 사단의 최우선 과제도 이 지역을 튼튼하게 방어하는 것이었다. 모든 지원도 이 소초들에 집중하였다. 백두대간에서 병사들과 함께하는 식사도 몸에 배었다. 병식당에서 병사들과 똑같이 줄을 서서 배식을 받아 식사를 했다. 함께 잠을 자고 목욕을 하는 것도 어색하지 않았다.
 
병식을 하는 필자

모든 결재도 부사단장에게 위임한 상태였기 때문에 참모들이 사단장을 찾을 일도 없이 완전한 병생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장교와 병은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 군대의 원칙이다. 그러나 병생활 체험상 일정기간 동안 병사들 속에서 생활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았다.

전투력 극대화와 완벽한 부대관리를 위해서 각 부대 간에 경쟁을 시켰다. 전투력 측정 우수부대와 무사고부대 등을 선발하여 표창을 주고 격려를 했다. 부대는 경쟁을 시키면 그 어느 집단보다 치열하게 노력을 경주한다. 반기단위로 각 분야별 우수부대를 선발하여 해당부대 깃발을 모든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사단사령부 앞에 높이 게양했다.

명예를 먹고 사는 집단이 군대이기 때문에 부대의 명예를 위해서도 자기부대 깃발이 사단사령부에 게양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자기부대 깃발이 사단사령부에 올라가 있으면 그 부대병사들은 사단을 방문할 때마다 한 번씩 바라보고 흐뭇해하였다. 경쟁을 통한 부대전투력향상에 있어서 우수부대기 게양모델도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이었다.
우수부대기가 게양되는 모습을 보고 있는 필자

1993년 1월 7일 01:13분! 청주시내 상가에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청주시 상당구에 있던 우암상가가 폭삭 주저앉는 바람에 주민 28명이 사망하고 48명이 부상을 당했다. 또 지하1층과 지상1층에 입주해 있던 식료품과 옷가게 등 74개의 점포가 전소되었다. 지상 2~4층 아파트 59가구가 완전 붕괴돼 35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최학 부사단장의 안내로 복구현장을 순시하는 필자

한밤중에 잠을 자다가 상황장교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받은 사단장은 전투복을 입고 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느끼고 사단에서 가용한 모든 병력과 장비를 현장으로 출동시켰다. 군대는 순발력이 있다. 초기작전에 대응하는 순발력 덕분에 소방차보다 더 빨리 부대장비와 병력이 현장에 도착했던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군 본연의 임무이다. 전쟁에서 적과 싸워 이기는 전투작전 못지않게 재난복구 작전에도 군이 투입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재빠른 초기대응에서 성과를 거둔 사단은 지속적인 복구작업을 위하여 최학 부사단장을 현장 책임자로 임명하면서 국민들로부터 큰 찬사를 받았다.

부상자가 많이 발생하니 혈액이 많이 부족하였다. 병원마다 수혈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줄을 잇고 있었지만 제한된 혈액으로는 도저히 감당해낼 수가 없었다. 사단장이 솔선해서 헌혈을 했다. 평소에도 1년에 2회 이상씩 헌혈을 해온 나는 청주 적십자 지사장을 부대로 불러 헌혈을 하였다. 사단장이 선두에 서서 헌혈을 하니 사단 전 장병들이 동참을 했다. 부족했던 혈액문제를 제37사단 장병들의 젊은 피가 말끔히 해결해 주었던 것이다.

 
  제37사단과 나의 인연_1 (49화)
  제37사단과 나의 인연_3 (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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