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방비서관으로 (52화)
  제7장 장군 시절

1994년 10월 18일, 육군참모총장 김동진 장군이 육군본부 자기 집무실로 나를 오라고 하는 연락이 왔다. 참모총장이 사단장을 호출한다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훈련장에서 현장지도를 하다가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바로 육군본부 참모총장실로 갔다.

“차기문 장군! 청와대 국방비서관으로 근무해보겠나?”
“예!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사단장 임기 2년이 끝날 무렵이었기 때문에 다음 보직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궁금하던 시기였다. 그동안 야전에서만 근무했던 나에게 정책부서에서 근무를 해본다는 것은 바라는 바였다.

청와대 국방비서관으로 간다는 소문이 나니까 사방에서 축하전화가 왔다. 사단장 근무를 마치고 누구나 한번쯤 근무를 해보고 싶은 곳이 청와대였기 때문이다. 또 승진을 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보직이기도 했다. 사단에 쌓였던 2년간의 뜨거운 정을 남겨놓고 청와대로 향했다.

생소한 청와대 문을 들어서니 정종욱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정종욱은 1940년생으로 미국 예일대학에서 정치외교학 박사를 받고 서울대학교 교수를 하다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외교안보수석비서관으로 발탁이 되었던 것이다.
 
외교안보수석 밑에 외교, 국방, 통일비서관이 있었다. 당시 외교비서관은 유명환(후에 외교부장관), 통일비서관은 정세현(후에 통일부장관)이었으며, 내가 국방비서관으로 임명되었던 것이다. 3인은 대한민국의 외교․안보․통일에 대한 트로이카로 불리었다.
 
청와대 국방비서관으로 부임한 필자와 김영삼 대통령

국방비서관은 주요 국방정책을 입안하고 국방부와 각군 본부와의 유기적인 연락과 통제를 하면서 대통령을 보좌하기 때문에 현역으로서 최고의 직책이었다. 국방비서관실 요원들도 육․해․공군 및 해병대에서 최고의 엘리트장교들이 선발되어 보직되었다. 이들은 각군에서 능력이나 인품 면에서 최고의 장교로 인정받으면서 차후 진급이 보장된 장교들이었다.

이때 사관학교에 여자사관생도를 모집하는 정책이 수립되었다. 이전까지만 하여도 사관학교를 금녀의 집이라고 하여 여성들은 접근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전에서는 군대에도 여성이 해야 할 역할이 증가되고 있기 때문에 여자사관생도를 모집하는 것으로 정책을 입안했다.

육군을 설득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전방 야전지역에서 여군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숙소와 화장실 등 여성들을 위한 시설이 별도로 구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관학교 교장을 꾸준히 설득한 끝에 결국 공군, 육군, 해군 순으로 1년 차씩 간격을 두고 여자사관생도를 모집했다.

이러한 어려운 과정을 거쳐 여자사관생도제도를 실시한 결과 군대에서의 여성들 역할이 크게 향상되었다. 사관학교 수석졸업자, 각종군사보수교육 수석졸업자들은 모두 여성이 차지할 정도로 우수한 자원이 여군장교로 임관했다. 이들은 우리군의 전투력증강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청와대에는 연무관이 있다. 경호실요원들을 위한 시설이지만 청와대 요원들은 누구나 활용할 수 있었다. 비서관들이 검도동호회를 결성하여 매일 새벽에 검도를 했다. 서울에는 출퇴근 시간대에 교통체증이 심했다. 혼잡한 시간을 피하여 비교적 도로가 한가한 새벽 시간에 집을 나와 연무관에서 검도를 했던 것이다. 운동 후 샤워를 하고 구내식당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한 후 사무실로 출근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한 결과 국방비서관 근무 2년 임기를 마칠 때는 검도초단을 딸 수 있었다. 유도2단에 검도초단까지 무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무술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청산회 북한산행 / 앞줄에 필자와 한승수 비서실장이 보인다

청와대 비서실장 한승수(후에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비서관들이 청산회(청와대 산악회)를 조직해서 매주 산행을 했다. 한승수 비서실장은 산에 가면 훨훨 날아다닐 정도로 산을 좋아했다. 해외출장을 가면 100층 짜리 건물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체력을 보강하는 것으로 이름나 있었다.

덕망과 지성을 두루 갖춘 그는 우리 비서관들의 존경과 신뢰를 한 몸으로 받고 있었다. 북한산을 위주로 산행을 많이 했지만 때로는 장거리 산행도 하면서 비서실장과 함께 비서관들은 체력단련과 친목을 다졌다.

검도수련과 등산으로 체력단련을 한 결과 건강한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단결된 분위기 속에서 업무 능률도 향상되었다. 청와대 근무는 문무를 겸비한 시간을 보내면서 보람된 나날이 되었다.

나는 개별적으로 승마를 했다. 가까운 육군사관학교에 30필의 말을 훈련시키는 승마장이 있었다. 처음 승마를 할 때에는 사타구니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1시간만 승마를 하여도 온몸에 땀 투성이였다. 평보, 속보, 구보 순으로 승마기술을 배우는데 날이 갈수록 말 타는 것에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청와대 국방비서관 시절은 업무적으로 보람이 있기도 했지만 다양한 취미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기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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