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한미야전사령부 워게임 및 작전계획과장 임무를 마치고 대대장으로 나가게 되었다. 마침 나의 후임으로 육사21기 김동신 중령(후에 국방장관이 됨)이 보직되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대대장을 나가기 전에 1개월간이라는 여유기간이 있었다.
우리들 세대에서는 공수훈련을 받을 기회가 쉽지 않았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소위 때 공수훈련을 자진해서 받기 위해 소대장을 하고 있던 제2사단 제17연대에서 공수훈련을 지원했다. 원주에 있는 제1군사령부 연병장까지 가서 체력검정에 통과되어 특전사 공수교육대 명령을 받고 입교일자만 기다리고 있는데 파월명령이 나서 공수훈련을 받을 기회를 노치고 말았던 것이다.
항상 기회만 있으면 공수훈련을 꼭 받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월남전 이후 공수훈련은 특전사령부에 근무하는 장병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지고 일반 장병들에게는 공수교육대에 입교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한미야전사령부 부사령관 김재명 장군의 허락을 받아 대대장으로 부임하기 전까지 휴가를 내어 공수훈련을 받기로 했다. 서울 거여동에 있는 특전사령부 교육단을 찾아가서 단장실로 무조건 들어갔다. 당시 교육단장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찾아갔던 것이다. 교육단장은 육사18기 조남풍 대령이었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인자하고 근엄한 모습이었다.
“단장님! 제가 휴가를 받아서 공수훈련을 받으려고 하는데 좀 받아 주십시오.”
“모두가 고생스러운 훈련을 기피하는데 고급장교가 어떻게 휴가를 내어서 힘든 훈련을 받으려고 하느냐?”
“오래 전부터 훈련을 받고 싶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공수훈련을 못 받았습니다. 군인이라면 공수훈련은 꼭 받아야 된다고 생각되어 이렇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꼭 기회를 좀 주십시오.”
“공수훈련은 육군본부의 명령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육본에 가서 허락을 받아오면 받도록 해주겠다.”라고 했다.
육군본부로 가서 작전참모부 교육훈련처를 찾았다. 교육훈련처 훈련담당 장교를 만나니 그 사람은 육사19기 김형선 중령이었다. 육군대학에서 같이 공부를 했던 김 중령이 특별케이스로 훈련을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 모두들 힘든 공수훈련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데 고급장교가 늦게 공수훈련을 받겠다고 하니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공문처리를 해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기 때문에 장교들이 훈련을 받는 기수에 편성을 할 수 없고 특전사에 배치되는 병사들과 같이 편성을 해 주겠다고 하면서 공수훈련 제192기로 들어가라고 했다.
논산훈련소에서 선발되어온 건장한 신병들과 함께 입교를 하여 4주간의 고된 훈련이 계속되는데 훈련기간 중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받기도 했다. 접지훈련을 받을 시 허벅지에는 멍이 시퍼렇게 들고, 송풍훈련과정에서는 온몸에 멍투성이였다. 중령까지 된 나이에 이러한 강한 육체적인 공수훈련을 받는 것이 무리임에 틀림없었다. 계급장도 띤 채 이등병들과 함께 땀내음을 맡으면서 내무생활을 같이 하고 매일 구보를 하는 동안 그들과도 깊은 전우애를 느끼게 되었다.
조교들은 나를 더욱 가혹하게 훈련을 반복해서 시켰다. 나이가 많을수록 지상기초훈련을 튼튼히 해야 실제 강하 시 뼈가 부러지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땀이 온몸을 적시고 휴식시간에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있으면 한없이 물이 몸속으로 들어갔다.
당시 공수훈련 교육대에 동기생 김명세 소령과 처4촌 오빠 김진황 대위(육사28기)가 보직되어 있었다. 그들이 위에 있었지만 하사들로 구성된 조교들은 인정사정 보지 않았다. 김 소령과 김 대위가 한 번씩 나를 찾아오면 그 면회시간이 유일한 훈련제외 시간이었다. 구세주 같았던 그들이 면회 올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3주간의 지상훈련이 끝나고 4주차에는 비행기를 타고 낙하산 강하시간이 되었다. 미사리 모래사장에서 낙하를 하는 1979년 6월 1일이 온 것이었다.
1번 올빼미로서 첫 번째 낙하를 하는 순간 집에서 차정석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소식이 왔다. 그래서 정석이는 군을 누구보다도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들을 낳으면 가문의 돌림자를 넣어 이름을 지어야 하는 규율 때문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도 집안의 족보에 따라 지어야 했다. 차 씨 집안의 정석이 항렬에는 석(錫)자를 넣어야 했다. 같은 항렬 간에 중복되는 이름이 되어서도 아니 되므로 대구 종갓집에 부탁을 해서 보내온 것이 정석(政錫)이었다. 나도 마음에 들고 하여 아들의 이름을 정석으로 지었다.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도 훈련 중이었기 때문에 산부인과병원에 가보지도 못하여 아내에게 미안했다. 전화로만 치하인사를 하고 다시 훈련에 임하니 하늘을 나는 듯이 기쁘고 피로가 싹 가시면서 더욱 힘이 솟았다.
모두 4회의 낙하산 강하를 성공적으로 해야만 공수휘장을 수여했다. 3번째 강하를 하는 날에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한강물이 모래사장을 뒤덮고 미사리 낙하훈련장은 황톳물로 가득했다. 불가피하게 예비훈련장인 남성대(그 후 골프장이 되었다가 위례신도시로 됨)에서 강하를 했다. 훈련하는 사람들 중에 내가 가장 높은 계급이었기 때문에 제일 먼저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
낙하를 하는데 바람이 강하게 불어 종합행정학교 정자나무에 나의 낙하산이 걸려버렸다. 오랫동안 나무에 매달려있으니 조교가 와서 칼로 낙하산 줄을 끓고 나를 무사히 땅에 내려주었다. 실전에서 교회 십자가에도 떨어지고 돼지우리에도 공수병들이 떨어지는 장면이 생각났다. 4회에 걸친 강하훈련이 끝나고 공수훈련 휘장을 달았다. 훈련 중에는 몇 번이나 공수훈련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였지만 훈련이 끝나게 되니 하늘을 나는 듯한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훈련이 끝나고 대대장으로 명령이 났다. 최초에는 제1사단 보병대대장으로 분류되었지만 제9사단 수색대대장으로 수정되어 명령이 내려왔다. 공수훈련까지 스스로 받은 나였기 때문에 새로 창설되는 제9사단 수색대대장으로 변경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제1사단장은 전두환 장군(후에 제5공화국 대통령)이었고 제9사단장은 노태우 장군(후에 제6공화국대통령)이었는데 두 사람이 상의해서 나를 제9사단 수색대대장으로 명령을 내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