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현역에 있을 때 군 내부에 하나회라는 사조직이 있었다. 육군사관학교 11기부터 36기까지 각 기에서 10명 내외의 엘리트장교들이 하나회라는 사조직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 조직에 가입된 장교들은 상호간에 형님 동생으로 호칭하면서 위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강력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하나회의 뿌리를 보면 박정희 대통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육사11기 엘리트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한 관심과 보호를 받게 되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하나회가 싹트기 시작했다. 이 조직에 선발되는 사람들은 초급장교시절 주로 수도경비사령부(후에 수도방위사령부)에 근무하던 장교들이었다. 수도경비사령부 근무장교들이 주축이었기 때문에 주로 보병위주가 되었지만 포병도 1~2명 포함되었다. 헌병과 기무사는 장군진출의 문이 좁기 때문에 대령 이후에는 동기 선후배간에 갈등이 우려됨으로 3개기에 1~2명 정도 편성이 되었다.
조직구성은 전체 대표나 총 회장은 별도로 지정하지 않았고, 군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최선임자 또는 핵심 보직자 즉 기무사령관 및 수경사령관을 주축으로 하여 적당한 간격으로 중간보스를 두어 조직을 관리했다. 각 기별회원은 이른바 성골이라 할 수 있는 핵심주류 3~4명과 진골이라고 할 수 있는 일반회원으로 편성되어 핵심주류는 수시로 의견교환이 가능한 수도권에 보직을 계속 받았고, 나머지는 변방에 보직이 되기도 했다.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한데 하나회는 회원으로부터 회비나 경조사 비용을 각출하기보다는 각 기별로 친목모임을 할 때 스폰서를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운영했다. 이 기금은 회원의 진급, 영전, 지휘관 취임 등에 격려금 형식으로 쓰여졌다.
각 기별로 구성되어 있는 핵심주류 위주로 상하관계가 은밀히 이루어지면서 대선배로부터 말단 36기까지 통성명을 하고 지냈다. 비주류는 기수 차이가 많이 나는 선후배는 특별한 사안이 있어 접촉하기 전에는 서로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보직과 진급은 핵심주류가 인사권을 쥐고 있는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인사관리처장, 인사통제실장, 통제계장, 진급계장, 장군인사실장, 3군보임과장 등에 후배 하나회를 보직시켜 후배들에 대한 인사관리를 해주었다. 이러한 보직관리를 한 결과 중령에서 대령진급 시 29기까지는 전원이 1차 진급을 할 수 있었다.
하나회는 다른 선배들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자기들 선배에게는 깍듯이 형님으로 모시지만 비하나회 선배한테는 안하무인격으로 대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비하나회 선배들에게 하나회 후배는 부담이 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하나회의 배타적 인사로 주요보직과 진급을 독점하여 자기들끼리만 단결하고 전체적인 군의 단결을 저해하며 위화감을 조성하는 부작용이 있다는 여론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부작용을 척결하기 위하여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군의 사조직 척결에 칼날을 세웠던 것이다.
먼저 하나회는 은밀하게 조직된 집단이기 때문에 그 실체가 공식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93년 4월 2일 서울 동빙고 군인아파트에서 “하나회 명단 유포”사건이 일어나면서 이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가 시작되었다. 하나회 명단을 살포한 당사자인 백승도 대령이 1993년 4월 16일 육군본부 헌병감실에 자수를 함으로써 하나회에 대한 수사는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육군본부 참모차장을 위원장으로 한 하나회 진상조사위원회가 군법무관 6명을 포함하여 구성되었다. 군 조사기관의 법률상 한계로 조사대상은 현역에 국한되었으며, 전역장성들의 진술청취 곤란으로 초기형성 배경규명이 곤란한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입체적인 조사과정을 통하여 하나회의 실체를 확인한 문민정부는 군 사조직 척결을 위하여 군통수권확립차원에서 대대적인 군인사를 단행하면서 하나회 조직은 완전히 와해되었다.
하나회 멤버들은 우수한 장교집단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하나회에 가입하지 못했다고 해서 우수한 장교가 아니라는 논리는 맞지 않다. 비하나회 장교들 중에도 하나회 장교들보다 우수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하나회 장교들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고 뼈를 깎는 인내와 오뚝이 같은 불굴의 의지가 필요했다.
나는 수도경비사령부에 근무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비 하나회인 내가 장군까지 1차로 올라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OAC, 육군대학, 미국지휘참모대학 등 각 보수교육에서 수석을 하고 근무평정이 전 계급에 걸쳐 “상”으로 되어있었던 덕분이었으며 하나님의 가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