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5월 30일!
제26사단 제76연대장으로 취임했다. 경기도 양주군 덕정에 위치한 연대는 전군에서 가장 전통이 있고 우수한 부대 중의 하나로 소문이 나 있었다. 연대장실에 들어가니 역대지휘관의 사진에 모두 별 표시를 해놓았다. 제76연대장 출신은 모두 장군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육사17기인 제26사단장 이병태 장군(후에 국방부장관)은 군에서 영어를 잘 하고 인품과 덕망을 두루 갖춘 후배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지장이다. 사단장은 연대장 이, 취임식을 성대하게 해주었다. 육사 23기 중에서 항상 1차로 진급을 하고, 전술, 전략면에서 남다른 자질을 갖춘 차기문 대령에게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접 제73연대와 제75연대에는 육사22기 선배인 이연우, 허장도 대령이 보직되어 있었다.
연대장으로 보직되면 재임기간 동안 한 번씩 연대전투단 시험(RCT: Regimental Combat Team)을 받게 되어있다. 우리 제76연대는 한탄강 지역에서 제5사단 제36연대와 쌍방훈련으로 전투단 시험을 받았다. 나는 RCT훈련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하여 생활관과 식당 등 병사들이 모이는 곳에는 현수막을 부착하여 전투의지를 고양시켰다. 장병들의 가슴에 리본을 달게 하여 훈련에 참가하는 자긍심을 심어주고, 자유토론을 통해서 병사들 각자가 훈련의 중요성을 인식하게끔 했다.
부대의 훈련목표를 명확히 함으로써 연대장이 의도하는 대로 부대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데 주안을 두었다. 전투의 승패는 지원배속부대를 얼마나 확실하게 장악해서 모체부대인 연대에 통합시키느냐에 달려있다. 특히 아군이 적보다 우세한 육군항공력을 이용해서 적의 취약점을 공격하도록 하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마침 군단에서 육군항공과 보병부대와의 통합작전인 Fire Eagle을 우리 연대가 시범을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RCT훈련에 적용할 수 있는 좋은 찬스가 온 것이었다. Fire Eagle은 육군항공, 포병, 전차, Tow, 106미리 무반동총 등 모든 지상군 화력수단을 통합한 육군화력통합근접전투이다. 공격헬기, 곡사화기 및 지상대전차화기를 통합하기 위한 공중화력협조팀을 구성하여 근접전투지역에 나타난 적 기계화 및 기갑부대에 신속하고 적시성 있게 대응토록 하는 전술작전이다.
완벽한 작전보안을 강조했다. 적을 알지 못하고 싸우는 것은 권투선수가 눈을 감고 링 위에 오른 것과 같은 것이다. 적도 아군에 대한 첩보를 수집하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작전기도를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통신전자운용지시(CEOI)변경 주기는 4일에 한 번씩 바꾸던 것을 매일 변경시켰다. 약호표시와 확인점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모든 통화는 평문으로 하는 일이 절대 없도록 했다. 야전급조지향성 안테나를 모든 무전기에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안전사고 예방에 관한 준비는 장거리이동과 생소한 지형에서 기동장비를 다루는 운전병들에게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행군이 야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운전병들의 졸음을 방지시키는 대책은 주요 관심사항이 아닐 수 없다. 졸음을 오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잠 안 오는 약을 구입해서 운전병들에게 먹이고, 껌과 사탕 등을 나누어 주었다. 주간에는 취침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서 운행을 하지 않을 시에는 충분한 휴식을 취도록 보장해 주었다.
RCT 준비를 철저히 한 우리 연대는 한탄강으로 이동해서 실전에 임했다. 군단장 박명철 장군이 작전참모 여명현(육사21기) 대령 등 참모들을 대동하고 5박 6일간 직접 훈련통제를 현장에서 했다. 한탄강을 사이에 두고 연대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스스로 적에 대한 첩보를 획득하면서 작전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상급부대에서 부여되는 적정은 극히 제한되었다.
박명철 군단장은 예고 없이 연대지휘소를 수시로 방문하여 연대장이 조치하고 있는 상황을 현지에서 평가하고 있었다. 5박 6일간 긴장된 가운데 하루 1시간도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적을 기만한 후 적이 가장 적게 배치된 곳으로 주공을 지향하여 적을 포위, 격멸시키기로 결심했다.
한탄강 하류에서 도하를 하는 척하는 징후를 적에게 노출시켰다. 이러한 기만첩보가 적에게 전해지자 상대방 제35연대장은 자기 주력을 한탄강 하류로 집중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연대는 주력을 한탄강 상류로 이동시켜 성공적으로 도하를 한 후 적의 퇴로를 차단했다. 적을 완전히 포위한 상태하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연대장이 솔선해서 옷을 입은 채로 허리까지 물이 차는 한탄강을 직접 건넜다. 겨울날씨라 하체가 꽁꽁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강바닥이 미끄러워 조금만 중심을 잃어도 넘어져 물에 빠지게 되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연대장이 직접 물에 들어가니 참모들과 대대장들도 연대장을 따르고 이어서 전 병사들이 물속으로 들어가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무사히 도하를 했다. 적의 헛점을 찌르는 기습을 완전히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단 기습에 성공한 후에는 아군의 의도대로 적을 유도할 수 있었다. 기습공격을 받은 적은 중심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전투는 우리연대의 일방적인 승리로 종결되었다.
이 장면을 직접 보고 있던 박명철 군단장은 강평 시에 전 군단예하 연대 중에서 우리 제76연대가 RCT훈련을 가장 잘 하였다고 즉석에서 최우수 연대로 평가를 했다.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굳은 신념과 장병들 앞에서 솔선수범하는 자세야 말로 지휘통솔의 요체라는 것을 체험을 통해 얻게 되었다.
RCT에서 승리를 하고 돌아온 연대는 정비기간을 이용해서 충분한 휴식을 보장해 주었다. 그동안 미루어놓았던 휴가, 외출, 외박을 과감하게 실시했다. 병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보다 휴가와 외출이다. RCT훈련에 공로가 많은 병사들을 위주로 포상휴가를 대폭적으로 실시했다. 병사들뿐만 아니라 간부들의 사기도 중요했다. 설날이 다가왔기 때문에 간부들을 대상으로 윷놀이를 비롯한 명절놀이를 했다. 모든 간부회식은 부부동반으로 해서 건전한 가정문화를 창조하는데 일조를 하도록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