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월 1일! 꿈에도 그리던 장군진급을 했다. 임관 후 22개 성상이 흐르는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만 45세의 나이로 동기생들 중에서 제일 먼저 장군이 되었다. 진급을 한 후 군단인사참모를 하던 육사24기 김판규 대령에게 작전참모를 인계하고 제5군단 참모장으로 영전되었다. 군단작전참모를 할 때 그렇게 많이 피우던 담배를 장군진급이 되면서 완전히 끊었다.
장군진급신고는 국립묘지참배로부터 시작되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몸을 던진 호국영령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이 한 목숨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바치겠다는 다짐이었다. 장군진급 의장행사가 화려하게 진행되었다. 장군예포가 발사되는 가운데 장병들의 사열을 받으면서 양 어깨에 은빛 별을 달았다.
장군진급을 하게 되면 많은 부분이 달라진다. 대통령으로부터 삼정도(三精刀)를 하사받는다. 삼정도는 일생 동안 장군이 차고 다니는 칼로서 국가와 민족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부여 받았다는 의미가 있다. 장군은 모든 부문에서 모르는 것이 없다는 뜻이 있다. 장군계급부터 병과가 없어지고 영어로 General이라고 하는 것도 장군은 모든 분야의 만물박사라는 의미이다.
장군에게는 성판과 장군기가 주어진다. 육군은 빨강, 해군은 짙은 남색, 공군은 파란색 바탕에 은색별이 반짝이는 장군표시판과 깃발이다. 성판은 항상 차량에 부착하고 다니면서 장군이 차에 타고 있다는 표시를 하는 것이다. 금색 수를 놓은 깃발에 별이 크게 새겨져 있는 장군기가 가는 곳마다 게양된다.
삼정도, 장군기, 성판은 장군이 가는 곳에는 항상 따라다니면서 장군으로서의 기풍과 품위를 간직하게 한다. 지퍼가 달린 특색 있는 장군화, 장군잠바, 장군모, 장군예복 등을 입으면서 장군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전속부관과 운전병이 배당되었다. 전속부관은 24시간 장군을 수행하면서 개인적인 보좌를 한다. 전역을 한 직후 장군은 전화도 걸줄 모르고, 길도 모르고, 운전도 할 줄 모른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도 전속부관이 평소 모든 개인적인 일을 챙겨주기 때문이다.
오래간만에 고향을 방문했다. 평소 바쁜 군무에 매인 몸이라 조상 산소에 벌초도 못했던 불효자식이 장군진급 인사차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형님들과 함께 고향 밤골에 있는 산소에 가니 초라한 아버지 묘지가 기다리고 있어 서글픈 마음을 금치 못했다. 어머니가 돌아가게 되면 쌍묘를 쓰고 상석을 할 것이라는 큰형의 말에 다소 위로가 되었다. 아버지가 살아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생각을 하면서 산소에 술잔을 올렸다.
고향사람들은 차기문이가 장군이 되었다고 환영 현수막을 동네 입구에 걸어놓고 풍물을 치면서 큰 잔치를 베풀고 있었다. 이웃동네 사람들도 소문을 듣고 찾아와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먹고 마시면서 기뻐했다. 고향사람들의 열렬한 장군진급 환영장면을 보면서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주위 사람들의 은혜와 배려 덕분이었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집안어른들에게 서둘러 인사를 마치고 임지인 포천 제5군단사령부로 발길을 돌렸다. 제5군단장 정만길 장군(육사16기)은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사이였지만 진급심사위원으로 들어가서 나의 자력을 보고 참모장으로 요청했던 것이다. 정장군은 제5공화국 시절 국보위에 근무했던 신군부세력의 실세로서 육군본부에서도 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제5군단은 중부전선 철의삼각지대를 맡고 있는 한국군 주력부대이다. 제3, 6, 8, 66, 73, 75사단을 예하에 거느리면서 한미야전군사령부 작전통제를 받고 있었다. 정만길 군단장은 치밀한 계획성과 정력적인 추진력을 가진 유능한 장군으로 널리 알려진 명장이었다.
참모장은 실질적인 군단업무를 관장하는 부대의 총책임자로서 세부적인 부대살림살이와 전투상황을 점검하고 실천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는 직책이다. 부임하자마자 각 참모부와 예하부대에 대한 업무파악을 했다. 부대가 많았기 때문에 전 부대에 대한 초도 업무보고를 받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전상황파악과 부대현황을 확인했다.
군단은 편조를 해서 주어진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제대이기 때문에 직할대의 역할이 대단히 컸다. 포병, 특공, 공병, 통신, 화학 등 주요 전투지원요소가 군단 직할대에 편성되어있다. 사단은 독립된 부대로서 사단장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군단 전투지원부대는 참모장이 지휘관 역할을 한다.
나는 사무실에 앉아 펜과 종이로 참모장 역할을 하는 관례를 깨고 직접 예하부대를 방문하면서 전투태세를 점검했다. 군단사령부의 의도가 예하부대까지 잘 전파되었는지, 오늘 밤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길 수 있는지를 직접 확인했던 것이다. 전쟁상황실은 기동과 화력을 통합한 효율적이고 실전적인 체제로 만들었다. 일목요연하게 전쟁지도가 가능한 공간과 조직으로 체제를 정비했다.
1989년 5월 26일, 정만길 군단장이 떠나고 새로운 군단장 김동진 장군(육사17기)이 부임했다. 육사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 영문과를 나온 김 장군은 덕망과 용맹성을 두루 갖춘 전략전술에 뛰어난 지장이었다. 후에 육군참모총장과 국방장관을 역임하면서 하나회 척결에 앞장을 서는 결단력을 보이기도 한 장군이었다.
승진훈련장에서 기동과 화력을 통합한 사상최대의 선봉섬멸작전 시범을 했다. 제1기갑여단을 중심으로 해서 17종 238문(정)의 중화기가 참여하고 공군전투기와 특전사 부대가 참여하는 실전과 같은 작전이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주요인사와 일반시민, 외국무관, 방산업체 관계자 6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실시되었다. 화력이 비오듯 쏟아지는 가운데 제1기갑여단이 포화를 뚫고 적진으로 돌진하면서 최종목표를 탈취하는 기동작전이었다.
각종 병과를 통합하는 제병협동과 공군과 육군을 통합하는 합동작전의 극치를 보여준 사상유래 없는 대규모 작전이었다. 수많은 병력이 실탄을 쏘면서 실시하는 이 작전은 안전사고 확률이 대단히 높았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안전사고에 만전을 기하면서 성공적인 작전을 마칠 수 있었다. 어머니와 가족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피로도 함께 풀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