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해안 해안초...

1년간의 군단참모장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제2작전사령부 인사참모로 보직명령을 받아 군대생활 중 처음으로 후방지역으로 가게 되었다. 소위 임관부터 장군이 될 때까지 전방지역에서만 근무를 하다가 오래간만에 고향이 있는 대구로 가서 근무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군생활을 통하여 처음으로 경험하는 후방지역 근무라 제2작전사령부는 생소한 분야가 많았다. 해안이 많고 작전지역이 넓기 때문에 전방근무와는 차이가 많았다. 지형이 새롭고 부대구조가 전방부대와 상이하였으며, 업무수행을 하는데 용어까지 생소한 것이 많았다.

실무장교들이 가져오는 결재서류를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각종 회의 시 발표되는 내용을 쉽게 알아듣지도 못할 정도였다. 이러한 상태로는 제2작전사령부 근무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예하부대에 나가서 현장을 체험하면서 업무를 파악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먼저 대대급 지휘소를 방문하여 현황을 파악한 후 울진에서부터 시작하여 동해안을 거쳐 남해안을 따라 서해안 당진까지 도보로 해안초소를 답사했다. 해안 순찰로를 따라 소초(小哨)와 분초(分哨) 등에 도착하면 자정이 되기도 했다. 전반야 근무조와 후반야 근무조가 교대를 하는데 이때에 라면으로 야식을 했다. 밤새도록 보초근무를 한 후 라면을 먹는 맛이란 임금님상의 진수성찬보다 더 맛이 있었다. 병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라면이라고 대답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병사들이 좋아하는 간식은 고급빵이나 과일 등이 아니라 바로 라면이라 것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었다.

해안초소 순찰로를 따라가다 보면 비를 맞을 경우도 있었다. 바람에 모래가 날려 앞을 보지 못할 정도로 험악한 날씨를 만나기도 했다. 소대장들이 소초에서 잠깐 쉬었다 가라고 권고를 했다. 제한된 일정에 전 해안을 답사해야 하기 때문에 쉬지도 않고 발바닥이 불어터지도록 강행군을 하면서 최종목적지인 당진초소에 도착했다.

해안을 답사하는 동안 레이더 기지에서 오판에 의한 적 침투 비상을 내린 경우도 있었다. 바지선에서 병사들과 함께 보초를 서면서 고깃배를 간첩선으로 잘못 판단했기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도 있었다.

전 해안을 직접 발로 답사해 보았다는 성취감에 그동안의 피로도 완전히 씻어졌다. 제2작전사령부지역 현황을 누구보다 가장 많이 알고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이러한 소중한 경험이 나의 군생활에 대단히 큰 도움을 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처음 부임해서 벙어리가 되었던 사람이 각종회의나 발표 시에 가장 활기찬 토론을 할 수 있었다. 체험에서 얻은 나의 견해가 가장 권위 있는 발언으로 인정받게 되었던 것이다.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군대업무는 현장에서의 체험이 가장 귀중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제2작전사령부는 대구라는 큰 도시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민간인들과 접촉하는 시간이 많았다. 후방지역작전은 주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야만 성공을 할 수 있다. 군은 물고기이고 주민은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이 없으면 고기가 살아날 수 없듯이 주민의 협조 없이는 군사작전이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제2작전사령부지역에서 평소 대민지원이 중요한 것은 유사시 주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함이다.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경우 군이 발 벗고 나서서 복구작전에 나서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고아원에는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불우한 아이들이 많았다. 장병들의 불우이웃돕기 운동으로 지역 내 고아원 등을 돕는 일이야 말로 우선과업이 아닐 수 없었다. 학습지도 능력이 있는 병사들을 차출해서 불우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여유 있는 자재를 모아서 고아원 시설보수를 해 주었다. 외출 외박을 나가는 병사들 때문에 쌀이 여유 있게 돌아갈 때도 있었다. 잔여 쌀을 고아원에 보내면 한창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영양보충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 보육원 어린이들과 필자

히말리아시다 나무 사이로 지어진 제2작전군사령부 공관은 별장과 같았다.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으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상쾌한 공기가 활기를 더해주었다. 공관 옆에는 교회가 있었다. 기상하자마자 성경책을 들고 풀잎에 총총히 맺혀있는 아침이슬을 보면서 새벽기도를 나가는 길은 더없이 상큼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영내에 있는 골프장 오솔길로 조깅을 하면서 체력단련을 했다. 땀에 젖은 몸을 샤워로서 말끔히 씻어내고 출근을 하면 일의 능률이 배가 되었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가족들과 떨어져서 나 혼자 대구에 내려가 있었다. 주말이나 휴일이 되면 가족들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가족들이 올 때가 가장 기쁘고 행복했다. 군인이라는 특수직업으로 인하여 이산가족이 되었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 업무능률도 향상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군인으로서 자주 이사를 하기 때문에 자녀교육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자기들 스스로 반듯하게 자라주어 부모로서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

외갓집에서 자라고 있는 수진이는 자주 만나지를 못하니까 남의 딸 같은 느낌이었다. 평소 해주지 못했던 정을 주기 위하여 휴가가 되면 가족여행을 했다. 신혼여행 때 가본 이후 처음으로 제주도 여행을 했던 것이다. 제주도에는 군 휴양소가 있어서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한라산등반을 하는데 건강이 좋지 않았던 아내는 힘이 들었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산행이 되었다.

가족들과 함께 테니스, 승마, 스키 등 레저활동을 하는 것도 행복의 하나였다. 처음부터 이러한 스포츠를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족과 함께 하나씩 익히면서 취미생활로 배워나갔다. 수진이와 정석이가 스키를 좋아하는 것도 이때부터이었다. 나를 닮아 운동에는 별로 소질이 없었던 아이들이 전문가 수준으로 발전하였던 것이다.

▲ 가족 한라산 등반 / 왼쪽부터 필자, 차수진, 아내, 차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