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7월 30일, 청와대국방비서관 근무를 마치고 한미연합군사령부(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부참모장으로 보직을 받았다. 군에서 미군과 영어소통이 가능하고 한미연합작전분야에 경험이 많은 내가 적격자였기 때문이다.
한미연합사부참모장은 군사정전위원회(군정위) 수석대표를 겸하고 있었다. 군정위는 정전협정을 유지관리하기 위한 기구로서 남북한군, 미국군, 유엔군 및 중국군으로 편성이 되어 있었다. 공산군 측 수석대표는 북한군 이찬복 중장이었고 유엔군 측 수석대표는 내가 맡고 있었다.
한미연합사 참모장은 미군 중장으로 보직되어있는 반면에 그에 상응하는 한국 측 참모장 즉 한미연합사 부참모장은 소장으로 되어있었다. 한미연합사 부참모장과 군정위 수석대표인 내가 소장계급으로 있는 것은 미군과의 균형이나 공산군 측과의 균형으로 볼 때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
이러한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서 청와대와 국방부에서는 나를 중장으로 진급시키기로 했던 것이다. 사관학교를 졸업한지 29년 만에 중장으로 진급을 했다. 군에서는 한 단계 한 단계 진급하는 것이 곧 생명과 같다. 진급을 하지 못하면 전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실직자가 되는 것이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다고 모두 장군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진급은 능력도 있어야 하지만 관운도 함께 따라야 가능한 것이다.
육사 23기의 경우 전체졸업생의 28%만이 장군이 되었다. 그 중에서 중장은 8명뿐이다. 중장 8명 중에 이남신과 김석재가 대장이 되었다. 이남신 장군은 사관학교를 졸업할 때 유엔군사령관상을 받을 정도로 생도 때부터 동기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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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이 필자에게 중장계급장을 달아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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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진급이 되니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계급장을 달아주고 삼정도에 대통령휘장이 달린 수치를 달아주었다. 장군이 될 때 대통령으로부터 삼정도를 수여받고 계속해서 진급을 하게 되면 삼정도에 리본을 달아주게 되는 것이다. 내가 중장이 되었다는 것은 관운도 따랐지만 동기생들의 헌신적인 희생과 하나님의 가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장으로 진급을 하면서 한미연합작전을 주도했던 나는 작전계획 5027을 작성하는데 한국군의 의지와 목표가 반영된 계획을 작성했다. 한미연합사는 한국군과 미군이 각각 50%씩 보직되어 있었다. 모든 계획작성과 부대운영은 공동으로 결정하게 되어있었다. 한국군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우리의 의지가 적극적으로 작전계획에 반영될 수 있었던 것도 우리의 국력이 신장되었기 때문이었다.
초기 우리나라가 국력이 많이 부족할 때에는 전적으로 미군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국력이 신장되면서 한국군의 위상도 비례해서 올라갔다. 초기에는 훈련비, 식비, 행정소모품비 등을 미군의 지원에 의존했다. 그때에는 미군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면서 자존심이 상했다. 작전계획작성에 우리의 의사도 반영하지 못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미군들과 싸움도 많이 했다.
그러나 우리의 국력이 신장되면서 모든 면에서 한국군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군들은 한국에 대한 지형, 기상 및 부대구조에 대해서 한국군보다 알지 못했다. 한국장교들의 군사교육과 영어실력도 향상되었다. 계급도 대등한 위치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특히 나의 미국 측 파트너였던 Randy House 장군은 미국 지휘참모대학 동기생으로서 초급장교 때부터 잘 아는 친한 친구였다. 나이도 같았고 같은 중장으로 계급도 같았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협조와 협력이 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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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andy House 미8군사령관에게 우정의 지휘봉을 수여하는 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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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간에 공식적인 업무를 잘 풀리게 하기 위해서는 비공식적인 인간관계도 대단히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였다. 미8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 참모장이었던 Randy House 장군은 텍사스 출신으로 말 타는 것을 좋아했다. 고향에 있는 목장에는 말을 150필이나 가지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말을 많이 탔기 때문에 O다리 형태로 걸음을 걸었다. 나도 태릉에 있는 육군사관학교 승마장에서 말을 타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가시간에는 함께 승마를 하면서 더욱 우의를 다졌다.
아내는 Randy House 장군부인 Jeany에게 한국의 문화와 전통 및 관습을 가르쳐 주었다. 여주 도자기공장에서 도예를 가르치고 민속촌에서 한국의 탈춤과 전통놀이를 소개했다. 설 명절에 한복을 Randy House 부부에게 맞추어주었더니 행사만 있으면 한복차림으로 나타나서 우리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비공식적인 교류를 활성화 하면서 친분이 두터워지니까 한미 간에 믿음이 더욱 깊어졌다. 한미연합작전을 할 때면 함께 야전에 나가 지도를 했다. 미군전술은 Randy House장군이 맡고 한국전술은 내가 미군들에게 지도를 했다. 한국에서 전쟁이 났을 때 대비한 훈련이었기 때문에 한국적인 분야가 더 많았다. 미군은 유럽과 중동지역에서 실전경험을 많이 했지만 한국과 같은 산악지형에서는 생소한 상태이었다. 전차보다는 보병위주의 작전이 필요한 한국지형에서 나의 조언과 지도가 더 필요했던 것이다. 나의 파트너 Randy House 장군과의 돈독한 인간관계는 한미연합작전을 더욱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다.
군사정전위원회는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이 각각 5명씩의 대표가 나오게 되어 있다. 유엔군 측에서는 내가 수석대표로 되어 있고, 미국, 영국, 기타 참전국 대표들이 참석하도록 되어 있었다. 공산군 측에서는 북한군이 수석대표로 되어있고 그 아래 중국군과 북한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유엔군 측 수석대표로 있는 내 밑에 미군 소장인 헤이든(Michael V. Hayden) 장군과 영국군 준장 파(Colin Parr) 장군 그리고 유엔참전 16개국에서 대표로 나와 있는 대령들이었다. 헤이든(Michael V. Hayden) 장군은 후에 미국으로 돌아가 부시 대통령 밑에서 CIA국장을 역임한 바 있다. 그와는 오랫동안 서로 연락을 하면서 친분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Hayden 장군 부부는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면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