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방문_2 (60화)
  제8장 예비역 제2의 삶

경제적으로는 북한이 남한보다 뒤떨어져 있지만 사상적으로는 남한보다 훨씬 강하게 무장되어 있다. 북한은 주민들에게 공산주의사상을 주입시키기 위해서 어린아이 때부터 철저한 사상교육을 시키고 있다. 공산주의 이념을 주입시키기 위해서는 어린아이 때부터 가르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북한은 건국초기부터 탁아소제도를 잘 발전시켜 왔던 것이다.

북한이 자랑하는 창광유치원을 방문했다. 이곳은 외국사람들이 북한에 가면 필수적으로 가야 하는 관광코스이다. 우리 일행이 가니 노래, 무용, 가야금 등을 배우고 있었고, 어린이들과 함께 손잡고 줄넘기 등 게임을 하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창광유치원에서도 소년궁전같이 어린아이들이 공연을 하는데 어른이 하는 공연보다 더 능숙하게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양시내에 있는 봉수교회에 가보았는데 주일이 아닌데도 소위 그들이 말하는 목사와 목사가족 그리고 몇몇 직원들이 나와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목사의 인사말에 이어 목사가족과 직원들이 찬송가까지 부르면서 북한에도 종교가 있다는 것을 선전하고 있었다. 북한에서 번역한 우리말 성경이라고 하면서 기념으로 사가라고 진열대에 성경책을 쌓아놓고 있었다. 봉수교회 목사와 직원들의 얼굴에는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는 관광객들에게 성경책 등을 팔면서 다른 북한 주민들보다 다소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한은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단군을 신화 속의 인물을 뛰어넘어 실존 인물로 부각시킴으로써 고조선, 고구려, 고려로부터 김일성 김정일로 이어지는 민족주의적인 주체사상을 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평양에 단군왕릉을 복원한 것에 이어, 1993년에는 고구려 동명왕릉을, 1994년에는 개성에 고려 태조 왕건릉을 웅장하게 복원해 놓고 있다.

동명왕릉과 단군릉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단군릉은 묘 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놓았다. 속에 들어가니 단군과 단군부인의 관이 나란히 놓여있었고 관속에는 시신이 들어있다고 했다. 돈을 주면은 시신까지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이 사실인지에 대한 의심을 하게하는 장면들이었다.
 
동명왕릉 (필자 옆에 북한 여성안내원이 앉아있다)

북한 농촌지역은 비포장도로가 80%이상이었다. 우리가 묘향산과 용문대굴을 방문할 시 우리 차가 먼지를 내고 지나가니까 길을 가던 북한주민들이 먼지를 덮어썼다. 그러나 아무 불평도 하지 않고 우리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환영하는 장면을 보고 북한 주민들이 가련하고 안스러웠다. 농촌은 소달구지가 주 수송수단이었으며, 목탄차, 증기기관차가 달리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집들은 유리창이 깨어져서 비닐로 창문을 가려놓고 있었다.

묘향산으로 갔는데 그곳에는 김일성 별장이 있었다. 별장 옆에 국제친선관이라고 하여 그동안 김일성과 김정일이 외국 원수들로부터 받은 선물이 진열되어있었다. 산속에 바위를 뚫어 강당 같은 큰 방이 5개가 있었는데 3개 방에는 김일성 진열품이 있었고 2개 방에는 김정일 진열품이 있었다.

김정일 진열실 1개 방에는 남조선관이라고 하여 남한에서 보내준 선물로 가득 차있었다. 역대대통령들이 보낸 기념품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공간이 남아있으니까 남한 기업체에서 김정일에게 사용하라고 보낸 장비들을 채워놓았다. 현대 다이너스티 자동차, 삼성프로젝션 TV, 에이스 침대 등이 진열되어있었다.

안내원이 남한 지도자들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흠모해서 존경하는 의미로 이러한 선물을 보내왔다고 선전하고 있었다. 북한 주민들과 학생들도 의무적으로 이곳에 와서 관람을 하는데 북한주민들에게 교육을 시키기 위한 시나리오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묘향산에 수학여행 온 북한학생들과 함께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

묘향산 등산을 했는데 수학여행 온 북한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 등산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북한학생들이 사상교육을 철저히 받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학생들이 중학생같이 키가 작은 것을 보고 어느 중학교에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대학생이라는 대답을 했다. 북한사람들은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키가 작다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묘향산에 이어 남포로 갔다. 평양에서 50분 정도 고속도로를 따라 서해안쪽으로 가니 남포시가 나왔다. 남포에 들어가니 문선명 통일교에서 설립한 평화자동차 공장이 있었다. 이 평화자동차공장은 2002년에 설립된 것으로서 여기에서 생산되는 자동차는 소형승용차인 “휘파람”과 레저용인 “뻐꾸기”가 있었다. 이들 차량들은 모두 이태리 피아트 자동차회사에서 부품을 가져와서 조립을 한 것이었다.

쌍용자동차에서 생산되고 있는 체어맨 부품으로 “준마”라는 자동차도 조립생산하고 있었다. 평화자동차회사 관리자들은 남한에서 간 사람들이었고 노동자들은 모두 북한사람들이었다. 북한 노동자들은 앞으로 통일이 되면 “휘파람”, “뻐꾸기”, “준마”가 남조선 전역을 누비고 다닐 것이라고 하면서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북한방문 마지막 날에는 평양교예단 공연을 관람했다. 공중그네타기, 줄넘기, 곰 재주 등 북한만이 할 수 있는 교예단 공연을 보면서 북한사회가 하나의 서커스단과 같이 광대놀음을 하는 사회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북한을 떠나오면서 그동안 찍었던 사진을 모두 검열받아야 했다. 대부분의 사진은 압수당하고 북한에서 반출해도 좋다는 장면만 가지고 돌아와 아쉬움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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