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 모세의 발자취를 따라서_1 (66화)
  제9장 강단에 서고 견문도 넓히고

모세의 발자취를 따라서
 
평택대학교는 기독교 정신을 창학이념으로해서 설립되었기 때문에 매주 수요일은 채플을 하고, 교내에 교회가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예배를 볼 수 있다. 방학이 되면 구약과 신약지역으로 나누어 성지순례를 한다. 신학과 학생 및 교수들과 함께 구약지역을 순례했다.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 등 성경에 나오는 지역을 답사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10시간 30분을 비행해서 이집트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집트하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의 국왕, 왕비, 왕족의 무덤이며 카이로에 80기가 산재해 있다. 스핑크스는 피라미드를 수호하는 파수꾼 역할을 하도록 자연암석을 조각한 것인데 군데군데 보수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도굴이 심하여 피라미드 속에는 아무것도 없고 유물은 모두 고고학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었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빠트릴 수 없는 것은 카이로에 있는 아기예수 피난교회였다. 마태복음 2장 13절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급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라고 한 말씀과 같이 이집트에서 아기예수의 피난처를 볼 수 있었다. 헤롯왕이 메시아로 태어난 아기예수를 없애려고 이스라엘에 있는 모든 어린아이들을 죽이려고 했다. 이때 요셉이 현몽을 통하여 사자의 명령을 받아 아기예수와 함께 전 가족이 이집트로 피난을 한 것이다.
 
유윤종 교수가 찍어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리고 필자

아기예수 피난교회는 예수님 일행이 1개월간 피난생활을 했던 동굴 위에 지어져 있으며, 이집트의 초대교회 구성원들이 비밀회합을 가졌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 교회를 보면서 당시 기독교의 탄압이 어떠했던가를 실감했다. 너무나 초라한 현장을 둘러보면서 성금을 모아서라도 아기예수의 피난장소를 성지화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원전 3000년에 건설된 룩소르(Luxor)를 보지 않고는 이집트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 룩소르는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660Km 떨어진 나일강변에 있다. 유명한 룩소르신전은 제18왕조의 아멘호테프 3세가 건립하고 제19왕조의 람세스 2세가 증축한 것으로 나일강을 따라 북쪽으로 펼쳐져 있다.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수도였던 룩소르 건너편에는 거대한 왕가의 계곡이 있다. 왕가의 계곡은 당시 국왕들이 매장품의 도굴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게 인적이 드문 계곡 바위틈이나 벼랑에 묘지를 만들었다. 어떤 능은 폭포 위에 바위를 뚫고 100m 이상 통로를 만들어 시신을 숨겨놓았다. 이집트의 왕들은 정치적 종교적으로 절대의 지도자 행세를 하면서 스스로 파라오(Pharaoh)라고 불렀다.
 
왕가의 계곡에서 김동수 교수와 필자

이집트를 출발해서 모세가 출애급을 해서 이스라엘로 갔던 길을 따라 갔다. 홍해 바다를 지팡이로 가르고 시나이산을 거쳐 요단강 쪽으로 갔다가 느보산에서 세상을 떠난 그 코스이었다.
 
어린 모세는 파라오에 의한 이스라엘 민족 영아학살을 피하기 위하여 나일강에 버려졌는데 다행히 파라오의 딸에 의해 구출되어 왕궁에서 양육되었다. 그가 성장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몹시 학대받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동포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했던 것이다. 홍해를 건너 시나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

그 후 모세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에서 40년간 유랑생활을 계속하지만 자신은 가나안에 도달하지 못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에 의하여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 느보산에서 향년 120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집트를 떠나서 40년이 넘게 광야를 헤매었기 때문에 출발할 때의 사람들은 대부분 죽었다. 여호수아를 포함하여 2명만이 이스라엘 백성 2세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되었던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10계명을 받은 시나이산을 오르기 위하여 산 아래 산장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해 뜨는 시나이산을 보기 위하여 새벽 1시에 일어났다. 광야에 있는 산장이라 몹시 추워서 새우잠을 잤다. 옷을 단단히 입고 손전등을 하나씩 들었다. 산 중간쯤 올라가니 현지인들이 낙타를 대기시켜 놓았다. 낙타를 타고 시나이산 정상까지 오르는데 15$(US)이었다. 정상에 오르니 햇살이 얼굴에 비치었다. 떠오르는 아침햇살을 바라보며 우리 일행은 예배를 봤다.

모세가 가는 길은 모두 광야이었다. 광야는 풀, 나무 하나 없는 황무지이다. 사막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강수량이 1년에 20미리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생명이 살 수 없는 메마른 땅이다. 이러한 광야를 40년간 방황하다가 요단강 건너 수풀이 우거진 이스라엘 땅을 보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이에 비하면 대한민국은 참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금수강산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모세가 죽은 느보산에 올라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요단강을 건너 이스라엘로 향했다.
 
이스라엘로 들어가기 전에 요르단에 있는 페트라를 보았다. 페트라는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제국시대에 걸쳐 아랍왕국의 중심지였던 고대도시이다. 천연방어지대에 로마가 물길을 만들고 원형경기장을 건설하여 문화생활을 했던 흔적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페트라에서 볼 만한 것 중의 하나는 바위 벽 속의 무덤인데 많은 무덤이 정교한 모양을 하고 있어 오늘날까지도 무덤을 개조하여 현지 주민들이 거주지로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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