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 사도 바울(Paul) 전도여행지를 찾아서 (68화)
  제9장 강단에 서고 세상 견문도 넓히고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했던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지역을 순례했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2000년 전의 이야기를 몸으로 체험하기 위함이었다. 성경은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구성되어있다. 신약 27권 중 13권을 사도 바울이 집필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면서 남긴 발자취를 따라 순례하는 것은 성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사도 바울은 예수의 12제자는 아니지만 그리스도교 최대의 전도자였다. 터키의 다소에서 태어난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은 유대교를 믿으면서 예수를 부정하고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다. 그가 그리스도교인들을 잡으러 다메색(현 다마스커스)으로 가던 중 신비로운 예수님의 출현을 경험했다. 예수님의 소명에 따라 3일간 실명상태가 되었다가 그리스도교인이 되었던 것이다. 3회에 걸친 대 전도여행으로 그리스도교를 세상에 전파하다가 로마에서 순교했다.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은 터키가 주무대라고 해도 과언이아니다. 터키는 원래 우리나라와 이웃하고 있던 돌궐족이 서진하면서 페르시아제국을 건설했다. 돌궐은 고구려와 그냥 이웃한 것이 아니라 이와 잇몸 같은 우방관계였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돌궐의 공주와 결혼을 한 사돈국이였다. 터키사람은 우리와 같이 몽골반점이 있다.

터키어는 우리말 수순과 같으며 단어도 비슷한 것이 많다. 음식, 문화, 습성, 국민정서도 유사한 점이 많다. 6.25전쟁 시에는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번째로 많은 병력을 우리나라에 파병했다. 터키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위치에 있다. 특히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끼고 있어서 흑해에서 지중해로 연결되는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세력다툼이 많았다.

AD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로마황제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면서 기독교를 인정했다. 그는 영토가 확장됨에 따라 수도를 로마에서 터키 이스탄불(당시 콘스탄티노플)로 옮겼다. 서로마가 게르만 민족에게 패망한 후에도 동로마제국은 이스탄불을 수도로 해서 오스만 터키에 멸망될 때까지 터키지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광대한 영토를 가졌던 오스만터키는 제1차 세계대전 시에 독일 편에 섰다가 패망했다. 즉 줄을 잘 못 서서 오늘날의 터키로 쪼그러진 것이다.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Cleopatra)가 로마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와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갔다는 터키 파묵깔레(pamukkale)로 가서 하루 밤을 묵었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창문을 열어보니 하얀 언덕이 한눈에 들어왔다. 모두들 눈이 쌓였다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날씨가 눈이 올 상태가 아니었다. 일행 중 어떤 사람은 소금산이라고 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눈도 아니고 소금도 아닌 석회산이었다. 오랫동안 석회석이 섞인 노천 온천수가 흘러서 하얀 산으로 변한 것이었다.

전용버스를 타고 노아의 홍수 때 방주가 걸려 있었던 5,114m의 아라랏산(창8:4)을 바라보면서 에베소(Epes)로 갔다. 에베소에서 누가의 무덤을 참배했다. 한글로 누가의 묘를 소개하는 푯말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국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예수님의 사도들 중에서 유일하게 순교를 하지 않고 천수를 다한 사람이 요한이다. 흰 대리석으로 세원진 사도 요한의 묘를 참배한 후 "에게해"를 따라서 트로이로 향했다. “에게해”는 터키와 그리스 사이에 있는 지중해의 일부인데 “에게게! 이것도 바다야!”라고 한다고 해서 “에게해”라고 불린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조그마한 바다이었다. 에게해안에 위치한 트로이(Troy)는 트로이목마로 잘 알려져 있다. 트로이전쟁(Trojan War)때 사용했던 목마를 크게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장면이 첫눈에 들어왔다. 우리 일행은 트로이 목마 위에 올라가 사진 찍기에 분주했다.

트로이전쟁은 고대 그리스와 트로이가 미모의 헬레네 왕비를 놓고 서로 뺏고 빼앗기고 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그리스군은 거대한 목마 속에 50명의 정예병사를 숨겨놓고 철수했다. 트로이군은 목마를 선물로 준 것으로 알고 성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트로이군이 승리에 만취되어 잠든 새벽, 목마 속에 있던 병사들이 성문을 열었고 이때 그리스군이 물밀듯이 공격해서 트로이를 점령했다.
 
누가의 무덤

트로이를 답사한 후 우리가 탄 전용버스는 지중해와 연결되어있는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배를 타고 유럽으로 들어갔다. 터키는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는 양다리 국가이다. 월드컵에 나갈 때도 아시아와 유럽 중 유리한 쪽으로 붙을 수 있는 것이 터키의 잇점이다. 터키 국경에서 간단한 수속을 받고 육로를 통해 그리스로 들어갔다. 그리스는 EU국가로서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분위기부터 터키와 달랐다. 고속도로, 사람, 생활방식, 풍경 등 모든 것이 선진화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가는 길에 농민들이 데모를 하느라고 고속도로를 차단하고 있어서 불편함을 주었다.

그리스는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은 조금 앞서있지만 국가격(國家格)은 우리보다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좌파정권이 오랫동안 집권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동감이 없고 침체된 분위기이었다. 근로자들은 오후 2시만 되면 모두 퇴근한다. 국민복지만을 강조하다 보니 세금을 많이 거둔다. 세금이 많고 근로자들의 생산성이 떨어지니 기업활동이 활발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의 산업은 올리브, 담배, 목화를 수출하는 정도이다. 국민생산의 대부분은 조상이 물려준 유적지에서 관광수입을 얻는 것이 전부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조상덕분에 살아가는 국가인 것 같았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거세기 때문에 국가제정의 대부분을 노동자들을 만족시키는데 투입되고 있다. 세계적인 산불이 났을 때도 국가보유 소방헬기가 없어서 이웃나라 헬기가 와서 산불진화를 할 정도였다. 국가재정이 파산에 이르러도 데모를 계속하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고대그리스의 위대한 영광이 꿈만 같이 느껴졌다.

사도 바울이 기독교를 유럽에 처음으로 전파한 까발라(네압볼리)에서 일박을 했다. 바울이 배에서 내렸던 장소에 세워진 네압볼리 바울도착교회를 둘러보고 빌립보로 갔다. 유럽에서 예수님을 최초로 받아드린 “루디아” 집을 순례했다. 루디아는 옷에 물감을 드리던 여인이었다. 루디아가 자색물감을 드리고 빨래를 하던 현장에서 손과 발을 씻었다. 루디아는 바울을 자기 집에 유숙하도록 하고, 그 가족과 더불어 세례를 받았다.

그리스에서의 하이라이트는 아데네 옆에 있는 고린도 순례이었다. 고린도는 항구도시이기 때문에 창녀와 매음이 성행하고 온갖 악이 집결되었던 곳이다. 사도 바울도 아데네에서의 전도에 실패한 후 고린도로 갔었다. 바울은 1년 6개월을 악의 도시 고린도에서 유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했다. 바울은 이곳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저술하기도 했다.

이탈리아로 가는 배가 기적을 울리고 있는 가운데 서둘러 배에 올랐다. 그리스에서 이탈리아 나폴리항까지는 크루즈로 15시간이 소요되었다. 배에서 새우깡을 던져주니 갈매기들이 때를 지어 몰려오는 청정지역이었다. 배에는 4인 1실로 된 고급방이 준비되어 있었다. 호텔과 같은 수준이었다. 방 안에는 2층으로 된 침대가 2개가 있고 욕실도 갖추어져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잠에 푹 빠진 후 아침에 일어나니 바다 위에 해가 떠오른다고 모두들 갑판위로 나가고 있었다. 선상에서 보는 해 뜨는 장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었다. 이탈리아 나폴리항에 도착해서 각자 짐을 찾은 후 호텔로 갔다.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EU국가이기 때문에 출국 및 입국 수속이 없이 그대로 통과했다. EU는 하나의 국가와 같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로마는 BC 753년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의해 건설되었다. 로마 신화에 의하면 레아실비아가 마르스 신(神)과 결혼해서 쌍둥이를 낳았는데 그 쌍둥이 형제가 바로 로물루스와 레무스였다. 쌍둥이를 낳으면 불길하다는 전설에 따라 쌍둥이는 테베레강에 버려졌으나 늑대의 젖으로 자라다가 양치기에게 발견되어 양육되었다. 그 후 쌍둥이는 로마를 건설했으나 형제는 서로 반목하여 형인 로물루스가 동생 레무스를 죽이고 로마의 초대 왕이 되었다.

시저는 이집트를 공격해서 이집트왕 클레오파트라(Cleopatra)와 결혼을 하여 아들을 낳았다. 루비콘강을 건너고 소아시아를 점령하면서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ini, vidi, vici)”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러한 시저는 권력이 한 몸에 집중되면서 독재를 하게 되었다. 독재자에 대한 반발이 심해지면서 시저는 신뢰했던 부하 브루투스(Brutus Lucius Junius)에게 암살당했다. 암살을 당하면서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이때 브루투스는 “나는 시저를 사랑했다. 그러나 로마를 더 사랑했다”라는 말을 남겼다.

세계 3대 미항으로 알려진 나폴리를 둘러본 후 폼페이로 갔다. 폼페이는 AD 79년 베수비오 화산에 의하여 매몰되었다가 19세기에 발굴되었다. 폼페이는 항구이었기 때문에 매춘이 성행하고 퇴폐문화가 극치를 이루었던 곳이다. 화산재에 묻혔다가 원형 그대로 발굴된 폼페이는 당시의 생활상을 실감 있게 보여주었다. 목욕문화가 발달되었고, 당시의 로마인 생활이 현대인의 문화생활 못지않게 고급스러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콜로세움(Colosseum)을 둘러보았다. 콜로세움은 AD 68년 티두스가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유대인을 노예로 잡아와서 건설했다.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4층 규모의 원형경기장이다. 로마시민들의 여흥을 위해 많은 그리스도교인들이 이곳에서 순교를 당했다. 그리스도교인들의 몸에 양의 기름을 발라서 굶주린 맹수들에게 노출시켜 맹수들이 교인들을 뜯어먹는 장면을 로마시민들이 보고 박수를 치던 곳이다.

로마시내에서 6Km정도를 전용버스로 달려서 사도 바울의 순교장소와 무덤에 도착했다. 사도 바울은 로마군에 의하여 도끼로 목이 잘리는 참수형을 당했다. 바울이 참수당할 때 목이 떨어져 분수가 되었다는 곳에 세 분수 교회가 있었다. 사도 바울의 짤린 목이 세 번 튀었다고 하는 곳에 분수를 만들어놓고 있었다.

사도바울과 베드로의 행적을 순례하면서 예수님 앞으로 한걸음 더 가까이 갈수 있었다. 성경을 읽으면 그 속에 나오는 지형과 장소를 머릿속에서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에베소, 데살로니가, 고린도, 빌립보, 갈라디아 등에 있는 성지를 직접 가서 발로 밟고 손으로 만질 수 있었기 때문에 성경구절이 더욱 이해하기 쉬웠다. 성지순례는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한번씩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었다.

 
  성지순례 / 모세의 발자취를 따라서_2 (67회)
  중국 자매학교 (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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