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발해, 백두산 및 항일운동유적지 순례를 했다. 심양으로부터 요동성, 안시성, 광개토대왕릉, 백두산, 발해진, 연길, 흑룡강, 목단강, 해란강, 일송정, 청산리 등을 탐사했다. 민족의 뿌리를 찾아서 조상의 발자취를 순례하는 여정이라 고난의 길이었다. 새벽3시에 기상해서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뚫고 하루 종일 강행군을 했다. 점심때는 식사할 시간이 없어 옥수수와 고구마로 허기를 채우기도 했다.
중국 동북지역은 우리민족의 근원지가 된다. 만주지역은 고조선에 이어 고구려, 발해가 점령하고 있었던 우리 땅이었다. 고조선은 단군이 세웠고, 고구려는 고주몽이 건국했으며, 발해는 우리의 조상인 대조영이 고구려를 재건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 3국은 엄연한 한국사의 실체이고 고조선, 고구려, 발해는 만주와 한반도를 동시에 영토로 삼았던 국가들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중국 국경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고 있다. 만주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던 고구려는 외침을 막기 위하여 요동일대에 안시성, 요동성, 백암성 등을 쌓았다. 이들 성은 당나라의 침공에 대비하여 지금의 대련으로부터 요동반도를 거쳐 심양, 장춘으로 이어지는 연개소문이 쌓은 천리장성이다.
주몽이 처음으로 고구려 수도를 건설한 졸본성을 탐사했다. 고구려는 BC 37년에 건국되어 AD 668년까지 705년간 존속했다. 로마제국과 비슷한 시기이다. 주몽이 수도로 정했던 졸본성은 천연요새였다. 이스라엘 해롯왕이 건설했던 마사다(Masada)요새보다 더 강력한 방어력을 지닌 성이었다. 깎아지른 절벽 위 벌판에 주몽의 궁전이 있었고 군사를 훈련시킨 연병장, 군량미 창고, 식수를 해결하기 위한 연못 등이 당시의 졸본성 실상을 생생히 대변하고 있었다.
고구려 국내성에서 4Km 떨어진 곳에 광개토대왕비가 있다. 이 비는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아버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높이 6.39m 너비 2m인 자연석에 글자를 새긴 것이다. 비석 4면에 1,775자가 새겨져 있는데 고구려 역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비석 옆에는 광개토대왕릉이 있다. 장군총으로 알려졌던 릉은 장수왕릉이다. 장수왕릉은 돌로서 계단이 쌓아졌다. 계단을 쌓을 때마다 홈을 파서 그 다음 계단 돌이 밀려나오지 않도록 과학적으로 잘 다듬어서 쌓았다.
2,750m높이를 가진 민족의 영산 백두산(중국에서는 長白山이라고 함)에 올랐다. 백두산에는 7월까지 잔설이 있다. 일부 계곡에는 8월까지 눈이 남아 있다가 9월 중순이 되면 또 눈이 온다. 그래서 백두산에 오를 수 있는 시기는 6월~9월초까지 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 산 정상에 20억 톤의 물을 저장하고 있는 큰 호수는 오직 백두산뿐이다. 서쪽 산자락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모여서 압록강이 되고 동쪽은 두만강의 원류가 된다. 천지주위에는 2,500m이상 높이의 봉우리가 16개 있는데 8개는 북한 쪽, 또 8개는 중국 쪽에 위치하고 있다. 가장 높은 봉우리인 장군봉은 북한 쪽에 위치하고 있다.
백두산에 오르는 길은 4개가 있다. 서편, 남편, 북편 길은 중국 쪽에 있고 동편 길은 북한 쪽에 있다. 중국 쪽에서는 한국인 등 많은 관광객이 오고 있기 때문에 등산로를 많이 개발해놓은 것이다. 북한에서는 삼지연에서 올라가는데 북한을 통해서 백두산에 오를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우리 일행은 처음에 남편 길을 따라 오르려고 했는데 갑자기 홍수가 나서 가는 길이 막혀버렸기 때문에 서편 길로 바꾸었다. 서편 길은 야생화가 만발해서 꽃밭을 따라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차에서 내려 약 30분 정도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천지가 나왔다. 그러나 강풍이 불고 구름에 가려 천지를 볼 수 없었다. 산 아래에는 맑은 날인데 백두산 정상은 강한 바람과 함께 구름으로 덮여있었다. 백두산 천지는 1년에 16일 정도만 완전한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구름이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내일 다시 오기로 하고 아쉬움을 안고 하산했다.
호텔에서 일어나자마자 천지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 후 이번에는 이도백하를 통하여 북편 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북편 길은 지프차를 타고 정상에 오르는 코스인데 서쪽과 남쪽보다 일찍 개발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었다. 지프차가 가는 길에는 비룡폭포의 웅장함을 볼 수 있었다. 백두산 정상에 올라 천지의 그 웅장함을 보는 순간 어려웠던 여정의 피로가 모두 확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두만강 변에 있는 도문시로 갔다. 도문에는 조ㆍ중우호 다리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중국이 마주보고 있다. 강 건너 북한지역에는 홍수가 나서 마을이 모두 산사태로 덮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폐허가 된 마을에서 사람이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어슬렁 걸어 나오고 있었다.
북한 쪽에는 소위 때기밭이라고 해서 산 꼭대기까지 개발해 놓았다. 집단농장은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심이 없고 때기밭에서 나오는 농작물은 자기 것이 되기 때문에 기를 쓰고 산으로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산에 나무를 모두 베어버렸기 때문에 비가 조금만 와도 대 홍수가 나고 있다.
두만강과 압록강 상류는 개울과 같아서 얼마든지 맨발로 건널 수 있었다. 북한주민들이 강을 건너 중국 쪽으로 넘어오니까 경비병들의 단속이 강화되고 있었다. 그래도 굶어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탈북자들이 중국으로 건너고 있었다. 북한 여성들이 중국으로 건너와 몸을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같은 민족으로서 측은한 느낌을 받았다.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지역과 우리 민족의 애환이 서려있는 북간도 용정지역을 답사했다. 청산리 전투현장에서 우리일행은 유명을 달리한 독립군들을 생각하며 노천참배를 했다. 길목에서 김좌진 장군의 후손인 김을동, 송일국 등이 개인적으로 세운 청산리 전적비를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전적비는 국가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1850년대 초부터 우리민족은 용정지역에 들어와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간도를 대표하는 용정은 일송정, 용두레, 해란강, 용문교, 용주사 등 선구자 노래에 나오는 지역이기도 하다. 일제 36년 동안 독립투사들이 용정을 무대로 해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용정에서 4Km 정도 떨어져 있는 비암산에 일송정이 있다. 일송정이라는 이름은 비암산 벼랑의 바위 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푸름을 자랑하며 우뚝 솟아있었는데 그 모양이 정자 같았다는 데에서 유래했다. 용정사람들이 이 나무를 수호신처럼 여겼다. 조선족 학생들이 일송정에 와서 학교에서 배운 학도가를 힘차게 불렀다.
우리민족이 일송정을 영물로 떠받들자 일본군은 비암산 근처에 사격장을 만들고 일송정 소나무를 과녁으로 삼기도 했다. 결국 나무에 구멍을 뚫어 후추가루를 가득 넣은 다음 큰 쇠못을 박아 나무를 죽였다. 지금 있는 일송정은 대한민국이 중국과 국교를 맺은 후 다시 소나무를 심고 그 옆에 정자를 세웠기 때문에 비교적 깨끗한 상태를 볼 수 있었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 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두레 우물가에 밤 새소리 들릴 때
뜻 깊은 용문교에 달빛 고이 비친다
이역하늘 바라보며 활을 쏘는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다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 때
사나이 굳은 마음 길이 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의 이 선구자는 용정을 배경으로 한 독립운동가를 노래한 것이다. 망국의 슬픔과 암울한 앞날을 견디지 못해 우리민족은 이 노래를 부르며 많은 눈물을 흘렸고 한숨을 토했다. 우리 일행은 일송정에 올라 이 노래를 목이 터지라 불렀다.
용정에서 조선족 학교인 용정중학교를 둘러보고 연길을 통해서 심양으로 향했다. 연길은 조선족 자치주의 중심지이다. 서울에서 유행하는 것은 바로 이곳 연길로 오고 있었다. 연길에는 서울특별시 연길구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서울문화가 휩쓸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