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소산(阿蘇山) 등반기 (72화)
  제10장 유유자적 여행

일본 아소산(1,506m)을 등반하기 위해 후쿠오카로 갔다. 후쿠오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땅이다. 임진왜란 시 일본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정복하기 위해 오사카성에서 후쿠오카성으로 총사령부를 옮겼다. 이곳에서 각 지방 쇼군들의 군대를 집합시켜 한반도 정복을 위한 조직, 편성, 훈련을 시켰다. 한가한 어촌이었던 곳이 조선출병을 위한 병력 30만, 군인가족 등까지 합치면 50만의 도시로 북적이고 있었던 지역이다.

중국과 조선을 정복했던 징기스칸도 일본을 점령하기 위해 후쿠오카로 상륙했다. 그러나 태풍이 불어 2차에 걸친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일본은 그 태풍이 일본을 살렸다고 해서 신풍(神風 가미가제)이라고 한다. 태평양전쟁 시 미군에 대항해서 최후의 발악을 했던 가미가제(神風)특공작전은 널리 알려져 있다. 문선명 통일교에서는 후쿠오카-대마도-거제도를 잇는 해저터널을 설계하고 공사를 실시한 바 있다. 한.일 양국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지 못해 공사가 중단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후쿠오카는 여러 면에서 한국과 관련이 많은 지역이다.

후쿠오카에서 구마모토로 이동했다.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분화구를 가진 아소산은 구마모토에서 올라간다. 분화구 크기만 해도 여의도의 45배에 이른다. 케이블카(로프웨이)를 타고 정상 가까이 까지 올라가서 분화구 능선을 따라 산행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식사를 하는 사이에 분화구에서 유황가스가 너무 많이 올라와 케이블카를 운행할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관광 팀에 편성되었다가 케이블카를 탄다고 하니까 어려움이 없을 줄 알고 등산 팀으로 온 사람들은 낭패라고 하면서 실망이 대단했다. 능선아래에서 공제선을 바라보면 개미 때가 일렬로 행군을 하는 장면같이 보였다. 산에는 나무나 풀이 하나도 없다. 분화구에서 분출되는 검은 모래가루가 산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없기 때문에 햇볕이 있는 날에는 어려움이 많다.

우리가 등산을 할 때는 구름이 약간 끼인데다가 바람까지 불어주어서 비교적 쉽게 등반을 할 수 있었다. 분화구에서 유황가스가 많이 나올 때는 바람방향에 따라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군데 군데에 가스대피소를 만들어 놓았다. 대피호모양이 적의 공습에 대비해서 만들어놓은 방공호 같았다.

그동안 많은 산을 올랐지만 이러한 형태의 산은 처음이다. 아소산은 죽기 전에 꼭 한번 와봐야 할 곳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을 하는 동안 과자껍질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쓰레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산을 오르는데 중학생 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교사 인솔 하에 수학여행 겸해서 등산을 하는 것 같았다. 길이 좁아 서로 교차하기 힘들었다. 일본학생들은 우리가 모두 오를 때까지 않아서 기다리며 길을 양보해 주었다. 그들은 인사성도 밝았다. 우리들에게 먼저 “곤니찌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 아소산 분화구에서 나오는 유황가스

일반적으로 일본사람들이 친절하고 청결하며 정직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것은 학생 때부터 이러한 문화를 배우면서 습관화 되어지는 것 같았다. 일본은 교육의 중점을 창의와 인성개발에 두고 있다. 소위 “유도리 교육”이라고 하여 학습내용을 30%줄이고 자율과 도덕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동경에 있는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서클활동이 잘 되고 있는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일행이 타고 가는 차가 고등학교 앞을 지나가는데 교문 앞에 현수막이 하나 걸려있었다. 그 현수막은 서클활동이 잘 되고 있는 지방대학에 합격한 학생을 축하하는 현수막이라고 했다. 기초수학과 창의성개발에 교육의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없는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 등을 받는 과학자들이 일본에서는 많이 배출되는 것 같았다.

등산을 한 후 호텔로 와서 온천욕을 했다. 온천장 마다 노천탕이 있었다. 잘 가꾸어진 정원 속의 꽃과 아름다운 나무를 보면서 천연 온천물에 몸을 담그니 등산에서 쌓였던 피로가 저절로 확 풀리면서 천당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나님은 공평하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되었다. 일본에게 지진, 해일, 태풍 등 자연재해를 많이 준 대신에 이러한 온천장을 주고 아직도 연기가 오르는 활화산이 있기 때문에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고 보았다.

일본 온천은 밤 24시가 되면 남녀탕을 바꾸었다. 그래야 양기와 음기가 잘 조화를 이룬다고 한다. 우리는 남녀유별정신을 강조하지만 일본은 성에 대한 관념이 비교적 관대하다는 것을 느꼈다. 온천욕을 하고 탕에서 탈의실로 나오는데 아주머니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남자들이 알몸이 되어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우리일행의 여성들에게 들으니 여탕에도 남자종업원이 여탕에서 자기 할 일을 태연하게 하고 있었다고 한다. 도시지역에서는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지방에는 남녀혼탕이 존재한다고 했다.

호기심에 동네 혼탕이라고 하는 곳에 가보았더니 우리가 도착할 때는 아무도 목욕을 하고 있지 않아 실제장면을 직접 보지 못해 아쉬웠다. 다다미로 된 일본 전통여관에서 묶었는데 저녁에는 일본식 연회음식이 나왔다. 기모노와 비슷한 유카타를 입고 반주한잔과 함께 식사를 하는 우리 일행들의 얼굴에는 흥이 저절로 나왔다. 무대 위에 설치된 노래방기기에서는 한국노래도 나왔다.

가는 곳마다 한국사람들이었다. 산과 온천 그리고 백화점 등에는 한국사람 일색이었다. 한국어 설명간판은 필수적이고 가게에는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상품위주로 전시되어 있었으며 종업원들도 대부분 한국사람들이었다.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한국관광객이 많다는 것을 항상 느꼈는데 이제 일본에도 한국사람들로 붐비고 있는 것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창의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일본의 “유도리 교육”, 그리고 친절, 청결, 정직을 으뜸으로 하는 일본문화는 우리가 배워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더 좋은 분야도 많다. 일본은 효율성이 떨어지고 불편한 점이 많은 110볼트 전기를 그대로 쓰고 있다. 좌측통행 문화, 차량 세로번호판을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 카드보다 현금위주로 생활하고 있는 일본은 우리보다 보수적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가 좌우이념을 버리고 국민이 단결해서 합심한다면 일본을 능가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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