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를 가다_1 (75화)
  제10장 유유자적 여행

지중해의 바람향기가 넘치는 발칸반도를 찾아갔다. 인천공항에서 11시간 비행 후 오스트리아 비엔나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에서 13:20에 출발했는데 비엔나에 도착하니 17 : 20분 밖에 되지 않았다. 비행기와 지구가 같은 방향으로 돌았기 때문에 시간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다.

지구자전 속도가 비행기보다 빨랐다. 지구가 비행기보다 4시간 빨랐던 것이다. 같은 일행인 공군 이경환 장군이 앞으로 기술이 발달되면 지구자전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는 여객기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인구수에서 부산크기의 나라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발칸반도이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을 탐방했다. 일반적으로 유럽은 물이 나쁘다고 하지만 특히 발칸지역은 물에 석회석이 많이 섞여있어 항상 생수를 들고 다녀야 했다.

발칸반도는 게르만, 슬라브, 아랍민족들이 함께 살면서 민족 간 및 종교간 분쟁이 잦은 곳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게르만 민족과 슬라브민족 간의 갈등에서 시작되었다. 1992년 보스니아 내전 시에는 종교 간의 갈등으로 인종청소가 자행되기도 했다. 지금도 건물에는 내전시의 처참했던 전투잔해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중세와 현재의 도시가 공존하는 오스트리아 그라츠(GRAZ)를 둘러보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그라츠는 다양한 건축양식이 어우러져 독특하고 아름다웠다. 그라츠의 인구는 20만인데 대학이 6개있다. 그라츠대학 학생만 4만이라고 한다. 함께 간 이기준 전 서울대학총장에게 물으니 서울대학은 2만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라츠대학에서 배출된 노벨상수상자가 6명이라고 했다. 그라츠는 이름 그대로 교육도시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음악을 공부하기 위하여 온 학생들이 많았다. 우리일행의 가이드도 음악학도였다고 한다. 세계 콩쿠르대회가 있으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항상 1등을 한다고 한다. 클래식을 해서는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오스트리아 현지인들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음악유학을 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대학에서 교수자리 구하기가 어렵다. 세계 콩쿠르대회에서 명성을 날렸던 사람들도 시간강사 자리 하나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다.
 
보스니아 내전 건물 잔해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향기가 가득한 천년의 고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ZAGREB)로 이동했다. 자그레브는 13세기 오스만투르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으로 쌓아진 도시이다. 크로아티아의 영웅 반 젤라치크의 동상이 있는 반 젤라치크 광장은 자그레브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궁전과 카페들로 둘러싸여 있고 민속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1848년까지는 지금같이 통치자의 이름을 딴 반 젤라치크 광장으로 불렸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치하에서 공화국광장으로 불렸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연방에서 크로아티아가 독립한 후 반 젤라치크 광장으로 이름을 되찾은 것이다.

크로아티아에서 지중해의 보석이라고 하는 두브로브니크(DURROVNIK)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두브로브니크를 보지 않고 천국을 논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코발트 블루의 지중해와 붉은 지붕의 조화는 가히 절경이었다. 대리석으로 된 바닥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인해 매끄럽게 닳았다. 아름다운 길을 따라 상점과 노천카페가 늘어서 있고 항상 관광객들로 가득한 곳이다.

많은 유럽인들이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하여 이곳으로 찾아온다. 유럽 사람들은 여름휴가를 위해 1년 동안 일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는 여름휴가철이 되면 텅 비어있다. 사람들이 휴가를 떠난 후 도시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사람들이 없을 때 도로공사를 하기 위해서이다.

두브로브니크 앞 섬에는 나체해수욕장이 있었다. 누구나 해수욕장에 들어가려면 나체가 되어야 했다. 우리도 한번 들어가 보자고 남자들이 제안했는데 여성들이 반대해서 나체 해수욕장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지중해에서는 크루즈여행을 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모든 크루즈는 두브로브니크에 정박해서 관광을 한다. 바다는 물아래 모래알까지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깨끗했다. 지중해는 파도가 심하지 않았다. 코발트 빛의 아름답고 따뜻한 해변에는 부호들의 요트가 가득했다. 마침 우리일행이 점심식사를 하는데 식당 아래로 보이는 7인승 요트경주가 장관을 이루었다.

항구를 둘러쌓고 있는 성벽은 두께가 6미터, 길이가 1,925미터이다. 성벽주변에는 16개의 방어탑이 건설되어있었다. 성벽을 따라 걸으면서 한편으로는 구시가지가 다른 한편으로는 지중해가 끝없이 펼쳐지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지중해 달마시안 해안을 감상하며 아드리아 연안의 최대도시 스플릿(SPLIT)으로 이동했다. 스플릿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디오클레시안 궁전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디오클레시아누스는 로마황제 중에서 기독교를 가장 많이 탄압했다. 그는 은퇴 후에 자기 고향인 스플릿에 와서 노년을 보내기 위하여 동서 150미터, 남북 200미터의 규모로 된 거대한 궁전을 AD 295~303년에 걸쳐 대리석으로 건설했다.

궁전의 일부는 주민들이 생활터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1층은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줄지어있고, 2층부터는 가정집이었다. 집집마다 걸려있는 빨래와 TV안테나 등이 궁전의 외벽과 어우러져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내었다.

4세기에는 5,000여 명의 사람들이 궁 안에서 살았다고 한다. 수천 년 전에 지어진 로마유적과 빨간 지붕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183개의 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이르니 한눈에도 도시의 규모와 궁전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성곽내부에는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길, 대리석으로 지어진 아주 작은 호텔, 카페, 레스토랑 등 다양한 편의시설들이 있었다. 아침이면 지중해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이 시장에 가득했다. 로마시대 건축물 안에서 일상의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여행의 흥미를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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