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2월 29일!
소장 진급과 함께 제37사단장으로 부임했다. 사단장은 군대의 꽃이라고 한다. 실병력을 직접 관장하면서 마음껏 부대를 지휘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제병협동작전을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단위부대이면서 병사들과 호흡을 함께 할 수 있는 최고의 전투부대이기 때문에 누구나 사단장을 한번 해보고 싶어 한다.
제37사단은 충청북도 증평에 위치하면서 죽령, 이화령, 추풍령 등 백두대간을 수호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 전임사단장은 육사21기 박순찬 장군이었다. 박 장군이 잘 가꾸어놓은 정예사단을 내가 이어받아 더욱 영광스러웠다.
사단장 취임식에 육사 및 고교 동문들이 많이 참석했다. 대구에서 친지 가족들도 참석했다. 먼 길을 찾아와 축하해주는 선배 친지 동료들이 고맙고 감사했다. 제9군단장, 충청북도지사, 지역기관장, 인접부대 지휘관 등 많은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37사단 제25대 사단장으로 부임을 했다.
취임식이 끝나고 이어서 리셉션이 진행되었다. 외국에서는 취임하는 지휘관 위주로 행사를 하지만 우리 한국군은 떠나는 사람을 섭섭하지 않게 배려해 주기 위하여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다 같이 환송, 환영을 한다.
|
|
| ▲ 사단장 취임식 후 리셉션(왼쪽부터 오웅진 신부, 박순찬 장군, 이택형 장군, 필자, 아내) |
|
보병 제37사단은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제10대 사단장을 장인 김선규 장군이 역임했기 때문이다. 제37사단장을 하면서 사단을 최고의 부대로 육성시킨 후 육군대학 부총장을 끝으로 전역을 했다. 김선규 장군은 나의 사단장 취임식에 참석해서 옛날을 회상하며 감회에 젖어있었다.
지역주민들도 옛날 사단장이었던 장인 김선규 장군을 알아보고 대단히 반가워했다. 특별히 정이 많았던 김 장군은 충청북도 주민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베풀었던 것이다. 청풍명월의 고장인 충청도에서 2대에 걸쳐 우리 가족이 사단장을 하게 되니 전생에 충청도와 인연이 많았던 것 같았다.
세월은 흘렀지만 인심과 풍월은 변하지 않았던 것이 중원 땅 충청도이었다. 사단에는 큰 연못이 하나 있다. 연못가에 있는 정자와 공관 잔디밭에 앉아 지나간 날들을 회상하면서 정담을 나누는 장인과 장모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단장 공관에서 자라난 아내 김경아는 내가 제37사단장으로 부임한 것을 누구보다 기뻐했다. 옛날 그 집 그 건물 그 뜰로 다시 돌아오게 되니 감개가 무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
| ▲ 사단 정자에 앉아 옛날을 회상하는 아내, 장인, 장모 |
|
사단장에 부임해서 첫째로 강조한 것이 부대단결이었다. 넓은 작전지역에 산재해 있는 부대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사단 전 장병들이 부대에 대한 애착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했다. 사단을 하나로 뭉치게 하기 위하여 부대혼이 담긴 노래를 만들었다. 내가 작사를 해서 사단군악대장에게 주었다. 곡을 만들라는 명령이었다. 군악대장 정진섭 소령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나의 가사에 곡을 붙여 충용가를 만들었다.
충용가
중원벌에 진을 친 충용의 건아
강철같이 굳게 뭉친 민족의 방패
그 누가 당할소냐 불사조의 화신
그 이름도 영원할 충용부대 용사들
횃불같이 타오르는 불굴의 신념
갈고 닦아 단련된 무적의 투혼
그 누가 넘나보랴 내 조국 내 강산
그 이름도 영원할 충용부대 용사들
사단에 부임하니 참모들과 예하지휘관들이 모두 훌륭했다. 수도권에 가까운 사단이라 부사단장이 3명이나 되었다. 여길도, 최학, 이태희 대령이었다. 여길도 대령은 육사 21기로서 사관생도 때 나를 가르쳐주고 지도해준 자상한 육사선배이었다. 김현석(뒤에 육사교장이 됨)대령을 비롯한 연대장들도 사단장을 중심으로 부대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었다.
|
|
| ▲ 상황보고 청취(앞줄 왼쪽부터 여길도 부사단장, 필자) |
|
사단장은 사무실에서 앉아 지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예하부대 현장에 나가 지도를 했다. 계획 5%, 감독 95% 원칙을 몸으로 실천했던 것이다.
사단장에게 지휘용 헬기 2대가 주어졌다. 작전지역이 넓기 때문에 차량으로 모두 다닐 수 없기 때문에 헬기를 타고 예하부대를 순회하면서 지도를 했다. 병사들에게는 사단장이 직접 정신훈화를 했다. 정신전력강화야 말로 싸움에서 일길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대대급 전술훈련장에는 사단장이 나가서 실전적인 훈련이 되고 있는지를 직접 확인했다. 군인은 항상 오늘밤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으로 전투준비태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전투준비태세의 요체는 실전과 같은 훈련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